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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희 Jul 17. 2023

그녀에게 카톡이 왔습니다

‘띵띠딩띵’ 카톡 알림음이 울렸다. 현이다. 집 지은 해에 구경 삼아 다녀간 후 일 년 넘게 소식이 없었다. 걱정되는 마음을 애써 누르고 연락이 오기만 기다렸다. 나이가 들긴 했나 보다. 요즘은 가까운 사람의 사정이 안 좋다 싶으면 마음을 졸이게 된다. 세상이 험한 탓인지, 마음이 약해져 그런지 부쩍 걱정이 많아졌다. 생각의 파도를 타고 넘다 번번이 잠을 설치기도 한다. 그렇다고 먼저 전화하기란 쉽지 않다. 나 역시 마음이 어지러울 땐 누구와도 얘기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저 기다릴밖에. 반가웠지만 순간  조마조마함이 교차했다. 다행이다. 기쁜 소식이었다. 삼일 후 현과 점심 약속을 했다.      


5년 전. “선생님~”. 하고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아침부터 공문이며, 학급 일로 노트북에 정신없이 코를 박고 있었다.     

“네가 어쩐 일이야?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잊지 못할 스승 찾아 산 넘고 물 건너 찾아왔나 했더니 그건 내 생각이고.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게 됐단다. 우리 반 수업에 들어오던 영어과 박 선생이 병 휴직을 낸다고 하더니 대신할 기간제교사가 현이었다.  


현은 2000년. H 중에 근무할 때 우리 반 학생이었다. 현과는 그동안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았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잊을만하면 한 번씩 내가 근무하는 학교로 불쑥 찾아왔다.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갔을 때도 런던탑이 그려진 예쁜 엽서를 보내주었다.     


영어학원에 근무하다 학교로 일터를 옮긴 현이 기간제 근무지로 택한 곳이 내가 근무하던 D 고였다. 우리는 같은 교무실에 있게 됐다. 함께 있어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염려스러웠다. 어릴 적 봐왔던 담임과 동료 교사로 같이 근무한다는 건 현에게 부담을 줄 수 있으니까. 그래도 속마음은 못난 선생이지만 비빌 언덕이 돼 줄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라 여겼다.       


현과 나는 수업 들어가는 반이 겹쳤다. 나는 현을 위해 “너거들, 내 제자 괴롭히면 그냥 안 둔다.”하고 아이들에게 먹히지도 않을 으름장을 놨다. 우리는 종종 내가 내린 커피와 현이 사 온 빵으로 다른 사람들이 출근하기 전의 이른 아침 시간을 함께 했다. 낮에는 서로가 바빠 얼굴을 마주할 틈조차 없으니 이렇게 서로의 안부를 챙겼다.


현은 다음 해. 2학년 담임을 맡았다. 마침 나도 2학년 수업을 담당하게 되어 현의 반 부담임을 신청했다. 전세가 역전되어 현이 아이들에게 “너거들 우리 선생님 힘들게 하지 마라.”라고 엄포를 놓았다. 아이들은 과도하게 친밀감을 드러내는 우리 둘을 보고 “둘이 사귀어요?”라고 놀리기도 했다. 내 입장에선 현이 있다고 해서 특별히 신경 쓰일 일은 없었다. 하지만 현은 달랐을 것이다. 그녀는 고맙게도 불편한 기색 없이 잘 어울렸다. 같은 교무실의 선생님들이 현의 싹싹한 성격과 부지런함을 칭찬했다. 나 들어라고 하는 소릴 수도 있지만 어깨가 으쓱할 만큼 듣기 좋았다.    


가끔 현과 나는 둘만의 오붓한 데이트를 즐겼다. 점심시간이나 일찍 마치는 날 맛집을 찾거나 새로 생긴 카페에 들렀다. 현 덕분에 젊은 감성을 누려볼 수 있었다. 밥 먹고 차를 마시며 속마음을 터놓았다. 스승과 제자기도 했지만 함께 근무하는 동료기도 했으니까. 현은 정규 교사가 아니라서 겪는 설움을 얘기했다. 어떤 때는 은근슬쩍 교묘하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무시당하는 경우가 있었다. 사회 어느 곳을 가나 좋은 사람만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오롯이 현이 감내해야 할 몫이었다. 나는 그저 현의 말을 들어주는 것밖엔 할 수 없었다.           

 다음 해. 내가 학교를 그만둔다는 얘기를 듣고 현은 눈시울이 벌게지도록 울었다. 현을 두고 오는 내 맘 역시 편치 않았다. 내가 퇴직한 다음 해 일 년이 현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시기였다. 그녀는 불합리한 것을 참지 못했다. 기간제 교사가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그녀를 힘들게 한 사람이 있었다고 동료 교사에게 들었다. 일 년을 더 연장할 수 있었지만  현은 쉬고 싶어 했다.


현은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도 독립했다. 30대 후반의 나이에 직장까진 관두고 부모님과 한 집에서 지내기가 불편하고 죄송했을 것이다. 당분간 쉬면서 배우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고 가서는 일 년이 넘도록 연락이 없었으니 불안할 수밖에. 부담을 줄까 봐 애만 태우고 있었다. 그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식을 딱 끊고 지내더니 일 년 만에 연락이 왔다.   




현의 안색은 밝고 미소는 화사했다. 심지어 예뻐지기까지 했다. 현의 얼굴이 이렇게 빛나는 걸 본 게 언제였던가 싶었다. 식당으로 가는 차 안에서 교육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늦깎이로 시작한 공부지만 한 번만에 합격했다니 대견했다. 안정된 직장이 생겨서 마음이 놓이는 건 부모 같은 마음인가 싶었다. 그녀는 점심을 먹으며 고백이 더 남았다고 했다. ‘설마?’ 설마가 사람 잡았다. 그녀가 결혼할 상대를 잡았다. ‘알고 봤더니 네가 능력자’라며 현을 놀렸다. 같은 해에 공무원 시험도 합격하고 연애도 한 그녀가 기특했다. 현에게 혹독한 시련을 안겨 준 괴롭힘의 당사자가 일등 공신인 것 같아 잠시 마음이 약해져 용서할까 했지만 아닌 건 아니었다.  


 신부 현은 고왔다. 인생에 가장 아름다운 날이 아니던가. 신랑은 눈매가 선해 보이는, 믿음이 가는 얼굴이었다. 옛말에 부부가 닮으면 잘 산다고 했는데 둘의 분위기와 웃는 모습이 닮았다.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 맞춤한 직장을 찾고 자기 길을 걷게 된 현. 든든한 짝도 생겼으니 마음 한 곳에 늘 짠하게 남아 있던 걱정이 눈 녹듯 스러졌다. 사는 일이 생각과 달라 꽃길만 걸을 수는 없다. 그래도 기댈 수 있는 어깨가 있고 함께 비를 피할 수 있는 우산이 있으면 견딜 수 있으리라. 계단을 내려오는 머리 위로 햇살 한 줌이 눈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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