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희 Jun 19. 2023

교장 선생님 뵙고 싶습니다

 30년 넘게 교직에 있으면서 겪었던 일들을 떠 올리고 있다. 저절로 떠오른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생각한다는 말이다. 그저 직업으로만 살아낸 일상이 아니라 그 안에서 지나온 삶의 의미를 찾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 일은 마치 강의 밑바닥에서 아름답거나 서럽다거나 때로는 서늘한 비늘을 품고 있는 상념들을 뜰채로 건져 올리는 일과 같았다. 뜰채 없이도 반짝이는 비늘을 뽐내며 힘차게 수면 위로 파닥거리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기억은 우물 속에 가라앉은 나를 가만히 응시해야 하는 아픔이기도 했다.  

     

 모임이 있어 근처 지인이 운영하는 카페에 갔다. 미술 교사 부부가 이른 퇴직을 하고 운영하는 갤러리 카페다. 폭풍 수다를 한바탕 떨고 물을 가지러 일어나는 데 옆 테이블에 앉은 분이 불러 세웠다. ‘우리 아는 사이 같은데......’ 반가움과 동시에 비명을 지를 뻔했다. 강 선생이었다. 다른 사람을 통해 연락처를 알아볼까 망설이던 차에 우연찮게 만났으니 놀랄밖에. 그녀는 25년 전 A여중에 함께 근무했던 4살 연상의 선배 교사다. 그녀를 만나 반가운 이유는 정작 다른 데 있었다. 그때 함께 근무했던 교장 선생님의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 해서였다. 그녀와 교장 선생님의 사이가 가까웠으니까.      


A여중 근무 당시 나는 30대 초반이었다. 수술받을 정도는 아니지만 허리가 아파 어정쩡한 자세로 걸어 다녔다. 어느 날 교장실에서 인터폰이 울렸다. 교장 선생님은 얌전한 뒤태를 보이는 한약 상자를 가리키며 퇴근하면서 찾아가라 하셨다. 부산의 잘 아는 한의원에 주문한, 진맥 없이 먹어도 되는 허리에 좋은 약이라 하셨다. 당황스러웠다. 평소 교장 선생님과 그리 돈독한 사이는 아니었다. 비쩍 말라 비실거리는 내가 안쓰러워 막냇동생처럼 여기신 걸까. 이미 온 것이니 고마운 마음으로 받았다. 호의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후 4살 난 아들의 여름옷을 백화점까지 가셔서 사다 주셨다. 파란 바탕의 귀여운 캐릭터가 있는 민소매 티셔츠다.    

      

그해 가을 어느 토요일 오후. 교직원 야유회가 있었다. 마침 남편도 학교에 행사가 있어 아이 봐줄 사람이 없었다. 학교 측에는 불참한다고 미리 알렸다. 2교시 수업이 끝난 후 교장실에서 호출이 왔다. 불참 이유를 물으시길래 아이 볼 사람이 없다고 말씀드렸다. 교장 선생님은 ‘내가 애 봐줄게. 나 애 잘 봐’라며 단박에 아이를 데려가자 하셨다. 결국 성화에 못 이겨 아이를 데려갔고, 아이는 다정한 여선생님들 틈에 그날 하루를 어린 왕자처럼 보냈다.      


그분이 왜 나를 아껴 주었는지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분은 한 번도 말하지 않았고 나도 묻지 않았다. 나는 8남매의 막내다. 맏이인 큰 오빠와 나이 차가 24살이다. 젊을 때부터 다른 교사들이 교장, 교감 선생님을 어려워해도 내게 나이 많은 언니, 오빠가 있으니 별 거리낌 없이 말을 붙였다. 그래서인지 만나면 안부도 묻고 스스럼없이 대했던 것 같다. 그것뿐이다. 그래서 큰 언니처럼 대하던 나를 교장 선생님 역시 막내처럼 여겼던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이듬해 학교를 옮겼다. 그 시절의 나는 인생의 홍역을 치르고 있었다. 사는 일에 서투르고 마음은 피폐해져 다른 사람을 생각할 빈 공간이 없었다. 시간은 흘렀고 그사이 그녀가 내게 베푼 따스한 손길을 아니 그녀의 존재마저 잊고 지냈다.   

        

그녀에 대한 기억이 수면 위로 떠 올랐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동안 간간이 뵙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절실하지는 않았다. 교직이야기를 쓰면서 세월의 흐름 속에 잊힌 고마움이 마음속에 그리움으로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꼭 한번 뵙고 싶었다.  연락처를 알아보던 중, 그분과 가깝게 지내던 강 선생님을 만났으니 가뭄에 단비를 만난 듯했다.   

    

하지만 강 선생님에게 전해 들은 소식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일시금으로 받은 금과 그동안 모아 둔 전 재산을 사기당했다고 한다. 생활비조차 없이 곤궁하게 지내는 모습을 뵙고 왔단 소식에 가슴속에 돌덩이가 얹히는 듯했다. 가족이 없던 그분에게 부부사기꾼이 퇴직 전부터 계획적으로 접근했다고 한다. 강선생님도 지금은 연락이 끊겼다고 하니 그분의 생사조차 알기 어렵다.

     

차라리 묻지 말 걸 그랬다. 듣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온갖 생각들이 부유물처럼 떠돌아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다. 그분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간간이 했지만 그저 어딘가에서 잘 계시겠거니 여겼다. 고마움은 마음속에만 머물렀고 행동이 되지 못했다. 힘이 되어 준 다른 분들께도 그랬다. 살면서 아끼지 말아야 할 말들이 사랑한다, 고맙다, 미안하다. 보고 싶다가 아닐까. 마음을 전하는 것도 너무 늦지 않게 때가 있음을 알았어야 했다. 가슴에 아픔으로 남아 후회하는 어리석음이 반복되고 있다.  

   

마음의 빚을 갚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이제야 떠 올린 나 자신이 원망스럽다. 고마웠단 말도, 늦게 찾아봬서 죄송하단 말도 그분에게 직접 하고 싶다. 설령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두 손을 맞잡고 그때 보살펴주시고 아껴주셔서 고맙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 젊은 날 힘들었던 내게 따스한 위로가 되어 주었던 그분이 힘들게 지내시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뱀피우먼도 괜찮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