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피우먼도 괜찮아?
내가 바퀴벌레가 된다면 짝퉁 버전
오빠에게 악다구니를 퍼붓다 눈을 떴다. 허리가 아파 찜질기 위에 누우니 몸이 노글노글해 왔다. 그러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꿈을 꾸었다. 이상한 꿈이었다. 과거와 현재가 뒤죽박죽이 된 꿈. 꿈속의 나는 20~30대로 보였다. 부모님은 꿈속에서 살아 계셨지만 등장인물이 돼 주지는 않았다. 출연료가 꽤 비싼지 좀체 나타나 주시지 않는다. 꿈이라기엔 너무 선명했고 내용도 제법 그럴싸했다. 이건 잘만 엮으면 단편 소설감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소설은 무슨 얼어 죽을 소설. 쓸 주제가 못되니 천장만 말똥말똥 쳐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쌈닭처럼 악을 쓰다 깨서 그런지 얼굴이 온통 땀에 젖었다. 부스스 이불을 들추고 일어나는 데 오른쪽 손과 팔이 눈에 들어온다. 우둘투둘. 여름 이부자리가 올록볼록하다. 그래서 이불 무늬가 팔에 문신처럼 새겨졌다. 흡사 갈라진 논바닥 같다. 아니 자세히 보니 오히려 뱀 껍질을 닮았다. 징그럽다. 뱀파이어는 아니고 뱀피우먼인가.
바퀴벌레 챌린지가 유행이라고 한다. 어디 나도 한번 짝퉁 버전으로 가 보자. 손등에 난 뱀피 무늬가 사라지기 전에 얼른 거실로 나가 남편에게 팔뚝을 내보였다.
“징그럽지?”
“징그럽네.”
“당신 내가 이런 피부를 가진 사람이었데도 나랑 결혼했을 건가?”
돌아온 그의 대답은 의외로 긍정적이다. “이 정도쯤이야. 온몸이 그런 것도 아닌데.”였다. 평소 실없는 농담을 잘하는 편이라 나도 별 생각 없이 툭 던져 본 건데. 막상 이런 대답을 들으니 살짝 감동 먹었다. 만약 그의 입에서 엉뚱한 유머나 부정적인 답이 돌아왔다면 겉으론 대수롭잖게 여겨도 기분 나빴을지 모른다.
요즘 젊은이들이 ‘내가 바퀴벌레가 된다면’이란 질문을 부모에게 하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 이 질문은 한 SNS 이용자가 올린 게시글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을 읽고 자신의 어머니에게 이 질문을 던졌다. 그녀의 어머니가 ‘바퀴벌레가 딸인 걸 알면 사랑하겠지’라는 답변을 하자 그 내용을 올린 것이다. 이후 많은 공유와 댓글이 달리며 바퀴벌레 챌린지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이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는 잠자다가 하루아침에 벌레로 변한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 온 그는 자신이 벌레가 된 순간에도 직장과 가족을 걱정한다. 하지만 가족들은 벌레가 된 그를 무시하고 경멸하며 심지어 그의 아버지는 사과를 던져 결국 그레고르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레고르는 방 안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지만 가족들은 그의 죽음에 오히려 해방감을 느낀다.
어린이들이 재미로 시작한 질문도 아니고 청년들에게 바퀴벌레 질문이 유행하는 이유는 뭘까? 바퀴벌레는 해충이다. 누구든 보면 죽이고 싶거나 죽여야만 하는 대상의 상징이다. 그런데 왜 그들은 자신과 바퀴벌레를 동일시하는 질문을 하는 걸까?
그 질문에 대해 부모들은 우스개로 치부하고
“때려잡아야지. 그럼 키울까?ㅋㅋ”
“나 바퀴벌레 제일 싫어하는데 어쩌지.”하는 섭섭한 답변을 내놓기도 한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자라!”는 고지식한 반응도 있다.
하지만
“예쁘게 키워주마.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는데, 바퀴벌레라고 안 예쁠까?”
“나는 엄마 바퀴벌레가 될 거야. 같이 바퀴벌레로 살자. 네가 무엇으로 태어나든 내 영혼을 다해 사랑하거든.”이라는 답을 주기도 한다. 바퀴벌레가 돼도 변함없이 사랑해 줄 거라는 부모의 답을 본 청년들은 “너무 감동적”이라며 눈시울을 붉힌다.
청년들은 이 질문으로 대학 진학과 취업이 잘되지 않더라도 부모로부터 외면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있다. 설령 자신이 바퀴벌레 같은 해충이 된다 해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외로움이 느껴진다. 가장 가까운 부모로부터 무엇이 됐든 온전히 자식으로 이해받고 위로받고자 하는 그들의 마음이 보인다. 놀이와 같은 하찮은 질문을 통해서라도 자신감을 심어주고 자존감을 높여 주는 사랑과 용기를 담은 긍정적인 답변을 듣고 싶은 것이리라.
학업과 취업에 대한 고민으로 심리적 부담을 가지고 있을 나의 아들도 어쩌면 속으로 내게 이 질문을 할지 모른다. 이참에 은근슬쩍 아들에게 사랑 고백을 해야겠다.
'아들 걱정 마. 네가 바퀴벌레든 지렁이든, 지네라 하더라도 나는 이미 너를 사랑하고 있고 내 사랑은 변함이 없어. 그런데 바퀴벌레보단 아무래도 작고 귀여운 무당벌레는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