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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희 Jul 01. 2023

고양이가 싫다 2

죽음마저 고독한 두식이

 마음이 소란하다. 방금도 하릴없이 마당을 서성이다가 들어왔다. 두랑이 그렇게 가 버린 뒤로 불안함이 옥죄여 왔다. 아픈 것도 힘든데 난생처음 붙잡혀 병원까지 다녀온 녀석. 목에는 넥 카라까지 했으니 두려움과 공포심이 얼마나 컸을까. 넥카라를 풀어 주자마자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트라우마가 생겨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몰랐다. 수시로 마당을 쳐다보며 신경을 곤두세웠다. 두랑이마저 잘못될까 봐 마음은 촛농처럼 타들어 갔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무사하길 비는 일과 기다리는 것 밖에 없었다.

      



 두식이의 죽음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녀석은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상태가 좋지 않았다. 눈에는 피눈물이 고여 있었고 밥 먹다가 자주 구역질을 했다. 그러다가 올봄부터는 피를 토했다. 하지만 두랑이나 두리와 달리 워낙 경계가 심해 붙잡기는커녕 만져 볼 수도 없었다. 두 번 정도 눈을 닦아주고 등을 한번 건드려 본 게 다였다.      


여섯 살 정도로 추정되는 두식이의 잠자리는 100m 아래쪽에 있는 민여사네 데크나 창고 근처였다. 녀석이 어릴 때부터 제 에미와 살던 곳이다. 그곳에도 마당에 사는 고양이가 있어 재혁(가명)씨가 녀석들의 밥을 챙겼다. 그러던 녀석이 우리 집을 드나들고부터는 비 오는 날을 제외하곤 우리 마당에서 끼니를 해결했다. 녀석은 세상 바쁜 일 없다는 듯 느릿느릿 계단을 올라 꼭 대문으로 드나들었다. 거실 앞을 지나 인사라도 하는 듯 잠깐 멈칫했다가 뒷마당의 밥그릇 놓인 곳으로 발을 옮겼다. 어쩌다 길에서 만나 ‘두식아, 밥 먹으러 가자’ 하면 눈을 끔벅이며 알아들었다는 듯 집으로 향했다.      


 봄이 되자 두식은 전보다 밥을 잘 먹었다. 두리가 남긴 밥까지 먹었다. 기특했다. 아무래도 잘 먹으면 낫겠지 싶어 고양이용 닭가슴살이나 츄르를 다른 아이들 몰래 먹이기도 했다. 그러던 녀석이 어느 날, 털은 군데군데 뜯기고 다리는 몹시 절면서 왔다. 가끔 싸워서 얼굴에 생채기가 나거나 물린 자국이 있긴 했지만 이런 적은 없었다. 겉으론 상처가 보이지 않았다. 안쓰러운 마음과는 달리 먹을 것을 챙겨주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다. 만지려고 하면 무섭게 하악질을 해대며 할퀴었다. 녀석은 밥을 다 먹고 이내 다친 다리를 질질 끌며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느릿느릿 멀어져 가는 녀석의 뒷모습이 내가 본 두식의 마지막이었다.     


 두식이 일주일이나 오지 않았다. 비가 개었는데도 나타나지 않는 녀석이 궁금했다. 다친 다리가 심해졌나 싶어 재혁 씨에게 물었다. 두식이 또 다시 많이 다쳐서 돌아왔고 머무르던 박스 안은 온통 피가 묻어 있었다고 했다. 상처에서 나온 피인지, 토한 건지 알 수 없었다. 박스안에서 꼼짝 않던 녀석이 삼 일째 안 보인다고 했다. 불길했다. 혹시라도 보게 되면 연락 달라고 했다.


 녀석은 어디에도 없었다. 우리 누구도 죽음을 확인하진 못했다. 하지만 두식은 외출했다가도 늘 돌아왔다. 한 번도 살고 있는 집을 멀리 떠난 적이 없었다. 동네 안에서 누군가의 눈에 뜨였다면 묻어 주기라도 했을 텐데. 가엾은 녀석은 제 죽음을 알리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년 가까이 내 집 마당을 드나들던 아이가 어디서 죽었는지도 모르게 잘못됐다고 생각하니 속이 헛헛했다. 살아생전 못생겼다고 사람에게도, 고양이들에게도 외면당하던 두식이. 죽음마저도 고독하고 서글펐다. 어스름한 저녁. 작고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나뭇가지에 내려앉았다.   

  

 예전엔 동물 사랑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잘못이었다. 반려동물 키우는 사람 중에도 다른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거나 심지어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이들이 있다. 그런 자들도 자기 반려견이나 반려묘는 끔찍이 아꼈다. 길냥이에게 정을 주면서 깨달았다. 나야 마당에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고작 밥 주는 일이 전부다. 유기견을 위한 봉사활동이나 길고양이들을 보살피는 이들은 다르다. 생명에 대한 감수성과 진정성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분들은 자신이 돌보는 길냥이가 고양이별로 떠나는 일도 경험했을 것이다. 그들의 마음을 감히 짐작하기 어렵다.


          



 밖은 이미 어두웠다. 고등어구이의 살점과 뼈를 잘게 부숴 마당으로 들고나갔다. 두랑이가 저녁밥을 먹지 않아 밤새 다녀갈 것 같았다. 밥그릇 하나에 사료가 그대로 있었다. 두리가 야외 테이블 밑에 웅크리고 있다가 머리를 비비며 애교를 떨었다. 두리와 장난치고 있는 데 풀밭에서 ‘야옹’ 소리가 들렸다. 희미하게 비추는 태양광 전등 아래 두랑이가 보였다. 축대 위에 있는 녀석을 덥석 안아 밥그릇 앞에 내려놓았다. 허겁지겁 주린 배를 채우는 녀석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모기 때문에 쫓기듯 들어왔다. 두랑을 안아 내리는 바람에 녀석이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다는 걸 그 밤엔 알아채지 못했다.     



계속 ~


왼쪽 부터 두랑, 두리, 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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