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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희 Jul 10. 2023

두랑이는 살기 위해
날 찾아 왔을까?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dhs9802/157



 늦은 아침을 먹고 설거지도 미룬 채 거실 소파에 앉았다. 빈 커피잔을 테이블에 내려놓는 소리가 '탁'하고 오늘따라 유난히 크게 들렸다. 심란한 마음은 아랑곳없이 비는 계속 퍼부었고 내 눈길은 창밖에 머물렀다. 하루 종일 비가 오는 날은 마당에 밥 먹으러 오는 녀석들이 굶어야 한다.  간밤, 며칠 만에 두랑이가 왔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녀석의 배가 홀쭉한 것이 뼈가 만져졌다. 마음이 쓰였다. 돌아온 녀석에게 기껏 할 수 있는 게 밥 주는 일인데 그것마저 제대로 못한다 싶으니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세차게 퍼붓던 장대비가 어느새 잦아들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앞산 허리에는 안개가 자욱하고 흰 새 한마리가 날개짓을 하며 지나갔다. 눈은 풍경을 좇지만 마음은 무지근했다. 삼십여분 지났을까. “ 비 그친 것 같아.” 남편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계속 창밖을 주시하던 그의 말에 튕기듯이 일어났다. 2배 빠르게 재생하는 영상같이. 남편이 뭔가를 부탁할 땐 하던 일을 마쳐야 돌아본다. 고양이들은 나를 소리에 예민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생각은 급하나 동작은 느긋하게’를 인생의 좌우명쯤으로 여기는 한 인간을, ‘야옹’이라는 특정 소리에 반응하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길들였다.


집 주변을 향해 ‘두랑아, 두리야’하고 아이들 이름부터 불렀다. 두리가 하우스에서 내려오는 동안 젖은 밥그릇을 깨끗이 닦아 밥 두 그릇을 담았다. 등 뒤와 앞쪽에서 ‘야옹’ 소리가 들렸다. 작고 귀엽게 앵앵대는 울음소리와 빨리 밥이나 내놓으라고 다그치는 듯한 소리.       


두랑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코앞으로 밥그릇을 밀어주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맛있는 간식으로 유혹해서라도 붙잡아 두고 싶었다. 새로 구입한 연어맛 츄르와 고양이용 닭가슴살을 냉장고에서 꺼내 들고나갔다. 츄르는 고양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스틱형의 짜 먹는 간식이다. 두리가 보챘다. 두랑이에게도 먹이려고 다가간 순간 나도 모르게 ‘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발을 다쳤다. 땅에 딛지 못하고 절름거리며 밥을 먹는 녀석의 왼쪽 뒷 발의 상태는 심각했다. 삼분의 일 이상이 뜯겨 나갔다.

      

녀석은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그 와중에 허겁지겁 밥그릇에 코를 박고 마시듯이 먹고 있었다. 거실에 있는 남편에게 소리쳤다. “어서 나와 봐. 큰일 났어, 애 발이...” 평소 호들갑이 심한 편이라 웬만해선 내 말에 놀라지 않는 남편이다.  워낙 다급하게 들리긴 했는지 신발을 신는 둥 마는 둥 했다. 녀석을 잡아 두기 위해 나는 다시 간식을 가지러 집안으로, 남편은 두랑을 담을 상자를 구하러 창고로 갔다. 케이지가 없으니 병원으로 데리고 가려면 입구를 막을 수 있는 뭔가가 필요했다.


남편이 지퍼 달린 장바구니를 가져왔다. 녀석은 낌새를 눈치채고 도망가려 했다. 발버둥 치는 녀석을 가방 안에 집어넣고 지퍼를 닫았다. 양쪽 틈새로 얼굴을 내미는 녀석은 고양이 액체설을 증명이라도 하듯 작은 구멍으로 얼굴을 내밀고 탈출을 시도했다. 남편이 두 손으로 양쪽 틈을 붙잡고 있는 사이 나는 큰 집게를 찾아왔다. 숨구멍만 두고 양쪽을 집게로 고정시켰다. 바구니 안에서 요동치는 녀석을 안고 차에 올랐다.     

 

잠깐동안 발버둥 치던 녀석은 의외로 곧 잠잠해졌다. 병원까지는 20분 정도 걸렸다. 그 사이 머릿속으로 여러 생각이 스쳐갔다. 수술해야 한다면 어떡하지, 입원을 해야 할까. 치료 후 집으로 데려오면 어떻게 보살펴야 하나. 두랑의 상처를 걱정하는 나와 치료비는 얼마나 들런지, 수술을 하게 되면 돈이 만만찮을 텐데. 마음 한 구석에 병원비를 걱정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반려동물의 진료비는 사람보다 훨씬 비싸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까닭이다. 반려견 두강에게 피부병이 생긴 적이 있었다. 두 번의 진료비와 콩 반쪽 만한 알약 서너 개 담긴 약 일주일 분이 십만 원이었다. 예전에 키우던 은비도 두 차례의 수술을 받았다. 치료비가 상당한 금액이었다. 반려동물을 가족이니 어쩌니 하다가 막상 병들거나 다치면 치료를 포기하고 버리는 경우가 많다. 감당할 수 없게 되면 그 아이들은 유기되고 만다.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흔들었다. 살아서 돌아온 게 다행이었다. 그거면 됐다.  

    

반려견 두강이 다니는 동물병원으로 갔다. 과잉진료를 하지 않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의사에게 상태를 설명했다. 지퍼를 살짝 열자 녀석은 거세게 반항하며 하악질을 했다. 상처를 제대로 보려면 마취를 한 후 X-레이를 찍어 봐야 한다고 했다. 의사는 나와 남편의 얼굴을 보며 어떻게 하겠는지 의사를 물었다. 길고양이인 녀석을 비용을 들여 치료할 것인지 묻는 듯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마취 동의서에 서명했다. 녀석이 마취하고 검사받는 20분 동안 병원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그제야 내 꼴에 눈이 갔다. 아침 설거지 후에 샤워와 화장실 청소를 할 생각으로 세수도 하지 않은 채였다. 헐렁한 바지와 목 늘어난 티셔츠, 머리핀이 흘러내려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얼굴 반을 가리고 있었다. 슬리퍼 사이로 삐죽 내민 흙 묻은 발가락에 눈이 갔다.


 의사의 부름에 진료실로 들어갔다. 녀석은 검사실에서 잠에 푹 빠져 있었다. X-레이를 보며 설명을 들었다. 왼쪽 뒷발의 네 번째, 다섯 번째 발가락이 완전히 잘려 나갔다. 첫 번째 발가락의 상태도 좋지 않았다. 아마 큰 개에게 물렸거나 덫에 치여 발이 잘린 것 같다고 했다. 피가 멈춘 걸로 봐선 다친 지 삼 사일 된 것 같았다. 며칠 동안 밥 먹으러 오지 않더니 그동안 변을 당했나 보았다. 죽을힘을 다해 집까지 허기를 채우러 왔으리라. 그래도 의지할 곳이라 믿고 찾아와 준 녀석이 고맙고 대견했다.     


계속


    

3월, 건강한 모습의 두랑


두리와 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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