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희 Jul 14. 2023

지구는 못 지켜도
내 고양이는 지켜야지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dhs9802/158



동물병원 의사는, 피는 멈춘 상태지만 감염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덥고 습한 날씨에 상처가 곪는다면 다리 절반을 잘라내는 수술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최악의 경우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담담하게 꺼냈다. 말문을 잊지 못하고 동공이 흔들리는 나를 보며 그는 일단 치료하고 경과를 살펴보라고 했다. 미리부터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보탰지만 시원한 에어컨 바람 밑에서도 이마에 땀이 흐르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얼마 전. 반려견 두강의 목덜미에 상처가 생겼다. 마당에서 뛰놀다가 나뭇가지에 심하게 긁힌 듯했다. 딱지가 생길 즈음 녀석은 가려움을 참지 못해 발톱으로 긁어 뜯어 버렸다. 엄지손톱만 하던 상처가 덧나 메추리알 보다 커졌다. 아침저녁 약을 바르고 항생제를 먹여 겨우 낫게 했었다. 푹푹 찌는 날씨에 털뭉치 녀석의 작은 상처에도 며칠간 신경이 곤두섰는데 하물며 두랑의 발은. 바깥으로 나다니는 녀석이라 앞일을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마취가 깬 녀석을 데리러 병원으로 다시 갔다. 두랑은 몽롱한 상태였다. 의사는 항생제와 진통제를 주사하고 붕대를 감아 주었다. 상처가 덧나지 않고 아물려면 항생제를 먹여야 하는데 걱정이었다. 다행히 주사의 약효가 2주간이라고 했다. 녀석이 집에 머물러야 약을 주든 밥을 먹이든 가능한 일이다.

“당분간 목에 줄을 매서 집에 머물게 할까요”라고 의사에게 물었다. 스트레스받아 오히려 상태가 악화될 수 있으니 그냥 두라고 했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두랑은 장바구니 안에서 발버둥 쳤다. ‘괜찮아, 괜찮아’ 다독였지만 좀처럼 진정하지 못했다. 얼마나 놀랬을까. 발이 아픈 것도 모자라 난생처음 낯선 공간, 낯선 사람에게 무방비 상태로 전신을 맡기고 있었으니. 더구나 목에 넥카라를 하고 있어 몹시 불편해하고 있었다. 장바구니를 열자 말자 도망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넥카라 때문에 달아날 수 없었다. 울타리 여기저기에 부딪히며 다칠 것 같았다. 간식을 먹이자 용케 진정되는 듯하더니 다시 난리를 쳤다. 조심스레 붙들고 넥카라를 풀자 녀석은 울타리 사이로 곤두박질쳐 버렸다. 평소 같으면 살포시 뛰어내렸겠지만 아픈 다리로는 어림없었다. 잠시 후 일어난 녀석은 절뚝거리며 수풀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두랑이 며칠째 나타나지 않자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혹시 어디서 잘못되지는 않았을까. 트라우마로 다시는 집에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루에 열 번도 넘게 마당을 나가 봤다. 어둠이 짙어지면 집안에서 cctv로 확인했다. 창문을 활짝 열어 두고 두랑이 소리가 들리는지 새벽녘까지 귀 기울였지만 기척이 없었다. 밥은 항상 두 그릇을 준비해 두었다. 아침이면 그릇이 비어있어 혹시나 하고 기대했지만 녀석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두랑의 상처가 잘 아물기를 하루에도 몇 번씩 빌었다. 두리에게 밥을 줄 때마다

‘오빠 오면 잘 달래서 집 나가지 말고 함께 살자고 해’.

‘오빠한테 전화하든지 카톡이라도 보내 봐.’라고 했다.

두리 역시 밥을 잘 먹지 않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두랑을 기다리는 듯했다.     




 어둠은 사위를 덮고 바람도 잠잠했다. 9시. 평소 같으면 방으로 들어갔을 시간이었다. 브런치 작가님들의 밀린 글을 마저 읽으려고 그날따라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희미하게 ‘야옹’ 소리가 들렸다. 남편은 못 들었다고 했다. 창문을 닫으면 옆집의 공사 소음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방음이 잘 되는 창이다. 하지만 아들이 갓난아기적,  모기 소리보다 작게 칭얼거려도 거짓말처럼 알아차리지 않았던가. 어미의 마음일까, 분명히 들렸다. 두랑이와 두리는 ‘야옹’ 소리의 굵기나 높낮이가 달랐다.


휴대폰을 팽개치고 마당으로 나갔다. 테이블 밑으로 다가가자 희끄무레한 물체가 달아났다. 손전등으로 이쪽저쪽을 비추며 ‘두랑아’하고 몇 번 불렀더니 녀석이 마치 대답이라도 하듯 ‘야옹’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이리 오라고 손짓하자 녀석은 절뚝거리며 내게로 와 안겼다. 밥그릇을 들이밀자 순식간에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5일 만이었다. 발의 붕대는 여전히 묶여 있었고 절뚝거리긴 했지만 아파하는 기색은 없었다. 간식까지 배불리 먹더니 인사까지 하고 하우스 쪽으로 사라졌다.     



녀석이 다시 나타나고 십사일째다. 밥을 두 그릇씩 먹더니 녀석의 몸이 며칠 새 좀 불은 것 같았다. 우리 집 축대 위로 이웃분이 농사짓는 하우스가 있다. 백 평짜리 하우스가 나란히 두 채. 올해는 농사를 짓지 않아 비어있다. 아침에 밥 먹으러 나오는 녀석을 보니 좌두랑 우두리. 각각 독채를 쓰고 있었다. 백 평짜리 집에 주인도 모르게 세 들어 사는 녀석들의 태도는 자못 당당했다.

     

밤에 찾아온 두랑이. 두녀석이  세들어 사는 하우스

   

밥이나 먹이자고 시작한 일이었다. 생명과 관계 맺는 일을 쉽게 생각했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푹 빠진 것 못지않게 녀석들도 나를 신뢰하고 있는 것 같다. 두랑이 발을 다치고 찾아왔을 때도, 며칠 전 다시 돌아온 것도 자기를 해코지하지 않을 거란 믿음이 있어서인 것 것 같다. 녀석은 힘들고 아플 때 죽을힘을 다해 집을 찾아왔다. 이곳에 오면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저렇게 떠돌며 치열하게 사는 삶이라니. 길냥이들의 운명이 한없이 고달프게 느껴졌다.     


이제 남은 일은 두랑의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면 중성화 수술을 시키는 것이다. 중성화를 시키면 수컷도 집을 떠나지 않는다고 한다. 저녁밥에 후식까지 야무지게 챙긴  두 냥이가 모처럼 잔디밭에서 저녁 바람을 쐬고 있다.  외계인의 침공을 물리치고 지구 평화라도 되찾은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다용도실 바깥에서 엄마 쳐다보는 두 냥이들 (봄)



창가에서 투닥거리는 두리와 두랑 (겨울)


매거진의 이전글 두랑이는 살기 위해 날 찾아 왔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