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1열은 싫어요
당당한 그녀들을 닮고 싶어요
줌바댄스 2분기 등록을 하러 갔다. 여태까지는 간 보기였다고 할까. 등록부터 하고 시작하려 하자 동네 주민 M과 K는 만류했다. 일단 몇 번 해보고 나서 결정하라고. 덜렁 등록부터 해 놓고 본인과 맞지 않아 그만두는 경우가 있다 했다.(강사님 허락하에 ㅎㅎ)생각보다 재밌었고, 운동량도 많았다. 안 하던 운동 끝에 몸살이라도 나려나 생각했지만 괜찮았다. 적당한 피로감은 오히려 생활의 활력을 주니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자칭 올록볼록 귀여운 엠보싱을 자랑하고 있지만 더 이상 방치하면 여름 피서철 돈 주고도 사기 힘든 귀한 오겹살이 될 판이다.
입회신청서를 작성하고 강습비를 카드로 지불하려는데 행정직원은 현금만 받는다고 했다. K에게 돈을 빌렸다. 석 달에 사만 오천 원. 한 달에 8번 정도 수업하니 회당 이천 원도 되지 않는다. 주민자치센터에서 하는 강습이라 그렇다. 내가 다니는 곳의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은 줌바 외에도 요가, 색소폰, 문인화 등 11개의 프로그램이 있다. 근처의 울주 문화센터에서는 민요, 장구, 목공, 도예 강습이 있는데 재료비만 내면 수강료는 무료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마음만 먹으면 문화센터에서 취미생활이나 운동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퇴근하면 파김치가 되어 소파에 널브러지거나, 저녁식사 준비를 하다 보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제 시간에 쫓기지 않고 원하는 강좌를 마음만 먹으면 수강할 수 있으니 여유롭다. 내가 줌바 강습을 다니는 곳은 면소재지이다. 이곳은 강좌 수가 몇 개 되지 않지만 도시는 강의 종류가 다양하다. 시에서 운영하는 가족문화센터는 강좌 수가 무려 152개나 된다. 과목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략 월 이만 원 안팎이면 수강할 수 있다. 복지제도의 혜택을 톡톡히 실감한다.
줌바회원 중에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을 두 개 수강하시는 분이 여럿 있다. 그 외 분들도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기고 있다. 나이 들었다고, 시골에 산다고 방구석 1열에서 텔레비전만 끼고 산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건강이 허락하고 마음만 있으면 저렴한 비용에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다. ‘직장 그만두고 뭘 하지’ 걱정하는 동료들에게 그 걱정 서랍 속에 넣어 두라 하고 싶다. 백수 과로사한다는 말이 왜 있는지 나와 보면 금방 알게 된다.
며칠 전 저녁 8시쯤 카톡 알림음이 울렸다. 화요일 줌바 강습 마치고 반장님이 점심을 산다는 내용이었다. 가끔 회식이 있다는 얘긴 들었지만 개인적으로 밥을 산다는 말은 처음이었다. 화요일, 반장 언니는 강습을 시작하기 전 참석 인원을 파악하고 식당에 미리 예약을 했다. 참석 인원은 모두 14명. 식당에 도착하니 진짜 물주가 따로 있었다. 반장님의 남편분이다. 남편분이 수강하는 민요반이 휴강이라는 말에 반장님이 줌바 회원을 위해 한턱내라는 사랑의 압력을 넣었다고 했다.
70대 중반을 훌쩍 넘은,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신사분이 식당에 먼저 도착하여 우리를 맞았다. 흰 바지에 주황색 셔츠를 깔끔하게 차려입은, 반장님 못지않은 멋쟁이셨다. 돈이나 카드를 주고 알아서 먹어라 해도 그만일 것을 일부러 식당까지 오셔서 함께 해 주시니 고맙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메뉴는 코다리찜. 무와 감자를 넣고 조린 코다리는 살집이 많고 간도 잘 배어 있었다. 운동하고 난 후라 그런지 꿀맛이었다. 조림국물에 비벼 밥 한 공기를 싹싹 비웠다. 게다가 얼음물처럼 시원한 맥주까지 한잔 곁들이니 분위기는 한결 훈훈했다.
다음 강습 날은 이**회원이 점심으로 오리불고기를 샀다. 그동안 회식에 참석 못해 미안하다면서. 사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할 수도 있지 그렇다고 열다섯 명이 넘는 사람들의 밥을 사는 일은 흔하지도, 쉽지도 않은 일이다. 또 다른 날은 누군가가 감자를 삶아왔고, 어느 날은 마당의 잘 익은 살구를 따 왔다. 반장님은 커다란 통에 직접 쑨 도토리 묵으로 갖은 야채를 넣어 묵무침을 해왔다. 살 빼려고 온 건 아니지만 이런 식이면 아무래도 줌바해서 날씬해지기는 틀린 것 같다. 정이 담뿍 담긴 간식거리에 웃음까지 덤으로 얹어주는 못 말리는 그녀들이다.
운동할 때 가벼운 면 티셔츠와 치마 레깅스를 입고 간다. 집에서도 곧잘 그렇게 입는다. 운동하러 나온 분들 중에는 줌바용 옷과 운동화를 구입하여 예쁘게 차려입은 분들도 있다. 뭔가를 시작하면 장비빨을 믿고 이것저것 사두는 버릇이 있다. 이번만은 참기로 한다. 족저근막염이 있으니 두툼한 양말은 서너 켤레 샀다. 줌바 언니들은 60대 중후반이라도 나보다 건강하고 활기차다. 언니들은 대부분 자녀들을 결혼시켰고 손주도 있다. 어린 손주를 둔 경*언니는 손자가 할머니 폼 웃긴다고 놀린단다. 내 보기엔 귀엽고 섹시하구먼.
내게 언니가 셋 있다. 70대 둘, 큰 언니는 팔십이 넘었다. 셋 다 매일 걷기를 비롯해 지역 문화센터에 운동이나 취미생활을 하러 다닌다. 언니들은 각자 다른 곳에 살지만 번갈아 가며 누군가의 집에 모여 놀러도 다니고 영화도 보러 간다. 셋 다 종교활동도 열심히 하고 봉사활동도 하면서 보내고 있다. 넉넉하진 않지만 자식들한테 기대지 않을 만큼의 생활력이 있고 건강이 허락하는 노년의 삶이 좋아 보인다. 나이 들어서도 생계의 어려움을 겪는 분들, 건강하지 못한 분들에 비해서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은퇴 후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도 포함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활기찬 생을 보내는 세련된 할머니들이라니. 자신감 있고 당당한 그녀들이 멋져 보인다. 나도 저렇게 잘 늙어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