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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희 Nov 19. 2024

등 뒤의 사랑 1

 **** '등 뒤의 사랑'은 저의 첫 소설로 등단작입니다. 7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입니다. 브런치 독자님들께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선보입니다.


                                                                                 *


 분홍색의 타원형 알약 하나를 삼켰다. 통증은 줄어들 기미가 없었다. 의사는 내성 때문에 한 달에 여섯 알 이상의 복용을 금했다. 정수리부터 눈, 턱, 이 할 것 없이 얼굴 반쪽이 짐승의 날카로운 이에 잘근잘근 씹히는 듯한 고통을 겪을 때마다 차라리 어디 한 군데 부러지던지 피라도 흘렸으면 했다. 드러난 상처는 누구라도 알아챌 테니까. 노트북의 전원을 연결하고 화면이 켜지는 동안 양손 검지로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오늘 안으로 보고서 작성을 끝내려면 서둘러야 했다. 이번처럼 급하게 일을 처리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었다. K 선생이 기한 내에 자료를 넘겨주었다면 진작 끝났을 일이다.


커피 생각이 간절했던 연수가 보고서의 마지막 부분 손질을 남겨두고 고개를 들었을 때, 칸막이 앞에 세정이 서 있었다.

“깜짝이야, 언제부터 거기 있었니?”

“좀 전이요.”

기척을 하지 그랬냐는 말에 잔뜩 인상을 쓰고 있어 말 걸기가 어려웠다며 세정이 싱긋 웃었다.

“머리가 아파서. 근데 왜 아직 안 갔어?”

“바쁘신가 봐요?”

할 말이 있는 듯 머뭇거리던 세정이 뜬금없이 그동안 고마웠다는 인사를 건넸다.

“아직 남았는데.”

종업식은 이틀이나 남았다. 연수는 싱긋 웃으며 의자에서 일어나 돌아서는 세정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잠을 못 잔 듯 부스스한 얼굴에 그늘진 표정이 마음에 걸렸지만 하던 일을 끝내고 싶어 잡지 않았다.



밤 열 시가 넘어서야 집에 도착한 연수는 코트를 벗어 식탁 의자에 걸쳐두고 실내 온도를 이십 사도에 맞춘 후 소파에 기대앉았다. 거실 등 하나가 깜빡거렸다. 관리실? 경비실? 누구에게 부탁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 생각을 접었다. 만사가 귀찮았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욱신거리고 왼쪽 눈 위의 핏줄이 불쑥 솟아올라 도드라졌다. 차가운 손을 이마에 얹으니 좀 가라앉는 것 같았다.


눈이 스르르 감긴다 싶은 순간 문자 알림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머리를 몇 번 흔든 후 주방으로 갔다. 싱크대 서랍의 약상자에서 몸살약과 편두통약을 찾았다. 물을 꺼내려고 냉장고 문을 열자, 비린내가 왈칵 덮쳤다. 아! 빌어먹을 간장게장, 인상을 찌푸리며 음식물 쓰레기통에 털어 부었지만, 역한 냄새는 순식간에 온 집안에 퍼졌다. 연수는 한참 동안 개수대에 물을 흘려보냈다. 냄새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침대에 누우니 약기운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얼마나 잤을까?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어둠 속으로 손을 뻗어 머리맡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어 발신자를 확인했다. 010-307*-8***. 이름이 없었다. 평소 입력되지 않은 번호는 잘 받지 않던 연수는 전화를 끄고 시간을 확인했다. 여섯 시, 아직 한 시간은 더 잘 수 있다.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쓰는데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끈질기게 울려 대는 벨 소리에 신경이 곤두섰다.

“여보세요?”

“저, 세정이 엄마예요.”

“네, 무슨 일이라도…”

불길한 예감에 전화기를 잡은 손이 떨렸다. 세정의 엄마는 세정이 며칠 입원해야 한다고 건조하게 말했다. 연수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결석은 이틀만 하면 됩니다. 모레가 봄방학이거든요. 저, 근데 어디가 얼마나 …….”


그녀는 제 할 말만 하고 통화를 끝냈다. 느낌이 싸했다. 어제 오후만 해도 괜찮았는데 며칠씩이나 입원할 정도라면… 정신을 차리려고 침대 뒤편 커튼을 젖혔다. 어둠 속에 맞은편 아파트의 불빛이 듬성듬성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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