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희 Oct 05. 2022

초록 신호등이 내겐 너무 짧아요

  한 달에 한 번 B 대학병원에 간다. 진료를 마치고 처방전을 받으면 병원 외부에 있는 약국에 가서 약을 받아야 한다. 약국으로 가기 위해선 8차선 도로를 건넌다. 내 걸음은 빠른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다. 정상적인 보행속도로 건널 때 1~2초 정도가 남는다. 나는 횡단보도를 건너며 보행자 신호가 너무 짧은 게 아닌가 생각했다. 다음 달도 그다음 달도 그렇게 느꼈다. 그래서 이번에 갔을 땐 보행자 신호 시간이 얼마나 되나 봤더니 35초였다. '왜 이렇게 짧지?' 횡단보도 신호등이 빨간 불로 바뀌어도 채 건너지 못한 어르신을 위해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 별 관심 없이 건너는 횡단보도의 보행자 신호 시간이 어떻게 정해지는지 궁금해졌다.     

 



 횡단보도 신호등에서 초록색 불이 켜지는 시간, 즉 보행 시간은 도로의 폭에 따라 정해진다. 기본적인 공식은 횡단보도의 길이를 보행 속도로 나눈 값에 횡단보도에 발을 들여놓기까지의 여유 시간 7초를 추가한다. 여기서 보행 속도는 일반적인 성인이 걷는 속도인 1미터당 1초를 기준으로 삼는다. 예를 들어 횡단보도의 길이가 15미터라면, 15미터를 보행 속도 1로 나눈 값에 여유 시간 7초를 더한 22초가 보행 시간이 된다.


그러나 어린이나 노인, 장애인 등 교통약자들이 성인의 보행 속도에 맞춰 가기엔 무리가 따른다. 이런 점을 고려해 어린이, 노인, 장애인 보호구역처럼 교통약자 보호구역에서는 보행 속도를 1초에 0.8미터로 산정하고 있다. 그래서 같은 15미터라도 0.8로 나누고, 여유 시간 7초를 더한 값인 약 26초가 신호등에 초록불이 켜지는 시간이 된다.


 하지만 보호구역으로 정해져 있지 않은 대부분의 횡단보도에는 일반적인 성인 외에도 어르신, 다리가 불편한 사람, 어린이 등 다양한 사람들이 길은 건넌다. 지팡이나 휠체어 같은 보행보조장치를 사용하거나 유모차를 끌고 가야 하는 사람도 있다. 이 분들에게 초록불의 신호시간은 너무 짧게 느껴진다.   





  


 광주의 한 고등학교 남학생이 8차선 도로에서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의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모습이 담긴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보행자 신호가 켜졌음에도 한 할머니가 제대로 걷지 못하자 사진 속 학생은 할머니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고, 할머니의 눈높이에 맞춰 자신의 무릎을 굽힌 채 무사히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도록 했다. 이 기사는 학생의 친절한 행동에 대해 칭찬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던 것 같다.


사실 이런 일들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걸음이 자유롭지 못한 노인분들이 미처 다 건너지 못했는데도 빨간 불로 바뀌는 것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나 역시 그런 분들을 부축한 적도 있다.


도로는 차와 사람 둘다를 위한 공간이다. 신호에 따라 차가 우선이 되어 달리지만 횡단보도에 초록 불이 오는 순간만이라도 보행자 위주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 사회 곳곳에는 아직도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섬세함이 부족하다.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는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불편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한 시스템이 부족한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소수자, 약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유튜브 채널 '한문철 TV' 영상 캡처




 B 대학병원 앞 도로는 8차선의 대로이다. 도로 맞은편 안쪽으로는 주택가와 아파트 단지도 보인다. 그래서 병원을 찾는 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넌다. 나는 약을 타기 위해 8차선 도로를 건널 수밖에 없다. 이유는 모르나  B 병원 쪽 도로변에는 약국이 없고, 도로 건너편에는 즐비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타기 위해서는 반드시 횡단보도를 건널 수밖에 없다, 횡단보도 신호등에 초록불이 오면 건너는 사람의 절반 이상이 손에 처방전을 들고 있다. 병명도 연령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끊임없이 건넌다. 어르신들이 많은 건 물론이고 유모차를 밀고 가거나 아기의 손을 잡고 건너는 분들도 있다.


 공공정책을 만들 때 법을 기준으로, 다수의 이익을 우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안다. 횡단보도의 보행자 신호시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은 대부분 큰 도로를 끼고 있다. 이 도로를 건너는 횡단보도는 아픈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 그러니 도로 폭에 따라 보행자 신호시간을 일괄적으로 적용할 것이 아니라, 현장에 나와 상황을 살펴보고 정해야 할 것 같다. 내가 건너는 이 횡단보도 역시 교통약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신호시간이 길어져야 할 것 같다.


 도로교통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과 관련 종사자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서 정책을 만들고 시행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일 것이다. 사소한 것 같지만 이런 배려야 말로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드는 길이 아닐까 한다.


 ‘왜’라고 의문을 가지다 보니 생각이 여기에 미치게 된다.               

작가의 이전글 철없는 엄마 땜에 힘들다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