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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희 Oct 21. 2022

시금치는 고양이를  
용서할 수 있을까?

 길고양이에서 마당 고양이가 된 아이들은 이제 웬만하면 뒷마당을 떠나지 않는다.

가을이라 잘 자란 잔디 위에 메뚜기와 사마귀 등 여러 종류의 풀벌레가 보인다.

햇살 좋은 날 마당에서 낮잠을 자던 고양이들은 심심하면 나비를 따라 폴짝폴짝 뛰어다니거나, 낮은 포복 자세로 웅크리고 있다가 기어코 도망가려는 메뚜기 한 마리를 잡아 나 보란 듯이 의기양양하다.


아침 식사 준비를 하는 내 귀에 남편의 투덜대는 목소리가 들렸다.

‘뭐지’ 마당에 나가보니 남편이 이것 보라며 텃밭을 가리킨다.

얼마 전 부추, 상추, 오이, 고추 등의 여름작물을 뽑았다. 봄부터 초가을까지 밥상을 풍성하게 해 주던 텃밭 채소들은 내년을 기약하며 이제 그 소명을 다하고 물러갔다.

남편은 텃밭을 말끔하게 정리하고 거름과 비료를 준 다음 가을 작물을 심을 준비를 정성스레 했다.

동초, 시금치, 춘 채와 무씨를 뿌리고, 배추는 모종을 심었다.

엊그제부터 예쁜 싹이 고개를 한 둘씩 내밀고 있는 참이었다.

남편이 가르친 곳은 시금치 씨앗을 뿌린 제일 왼쪽 밭두둑이다. 얼핏 봐도 파헤쳐진 흔적이 있었다. 범인이 누군지 알 것 같다.

고양이들이 똥을 누고 덮기 위해 흙을 파헤친 흔적이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오히려 시금치 씨앗을 다 파헤쳐 버린 것이다. 이제 막 싹이 움트고 있는 어린잎들은 고양이의 발아래 무참히 짓밟히거나, 채 싹을 피워 보기도 전에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우리는 아침을 먹으며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했다. 고양이들을 잘 타일러 보겠다고 우스개로 말했지만 정말 한시바삐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이미 내 집 식구가 된 고양이를 쫓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텃밭을 망치게 둘 수도 없다,

집안에 사는 아이들이 아닌 이상 그들의 배변 시간을 알 수도 없고 설령 안다고 해도

지키고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어린 새싹들이 어느 정도 자라면 고양이는

더 이상 밭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때까지 무슨 방법이 없을까.

고양이와 시금치가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오후에 텃밭을 보며 다시 머리를 싸매고 있던 차에 마침 이웃집에서 우리 배추가 얼마나 자랐는지 보러 왔다. 나는 고양이의 대형 화장실로 변해가는 시금치 씨앗 뿌린 곳을 가리키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얘기했다. 이웃집에선 아주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 그 집에서도 길고양이들이 말썽을 피워 애지중지 가꾸는 다육 식물들이 곤욕을 치렀던 모양이다. 그래서 초록 그물망을 이용해 고양이들의 접근을 막고 있단다.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이웃집으로선 침입자들의 존재가 여간 곤혹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이웃집은 고맙게도 그물망을 직접 가져다주었다.

우리 부부는 초록 그물망으로 울타리를 치기로 했다. 텃밭 가장자리를 따라 막대를 꽂고 그물망을 빙 둘러 울타리를 쳤다. 물론 고양이들이 마음만 먹으면 그물망을 뛰어넘을 수는 있겠지만 응가하겠다고 굳이 그 귀찮은 짓을 할 것 같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세 마리의 고양이 중 특히 범인으로 지목되는 두리가 그물망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는 쾌재를 불렀다. 성공이다.


며칠 후 시금치는 고양이를 용서하고 굳세게 살아남아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고양이와 어린 채소들은 앞으로 누구 하나 다치지 않고 서로의 영역을 고수하며 지낼 것 같다.


오늘 나는 서로 다른 살아있는 생명들이 함께 살아가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님을 깨우친다.


사람도 서로를 이해하고 더불어 살기 위해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고양이와 시금치를 통해 한 수 배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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