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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희 Nov 01. 2022

저 오늘 언니들이랑 여행 가요.

언니들과 추억 만들기

 하늘은 더없이 푸르고 햇살은 따뜻한 날. 행여 날씨가 궂을까 봐 며칠 전부터 했던 걱정이 무색할 만큼 덥지도 춥지도 않고 딱 좋다.

하필이면 계절에 맞춰 피는 꽃도, 단풍도 없는 철에 떠난다고 핀잔인지, 부러움인지

모를 소리를 하지만 꽃이 없으면 대순가?

그저 함께 떠난다는 것만 해도 설레고, 좋은데…    

 

 내게는 3명의 언니가 있다. 3남 5녀의 막내딸로 위로 언니가 넷이었지만 내가 서른 즈음에 둘째 언니가 병으로 떠났기 때문에 이제 언니는 셋이다. 큰 언니는 팔십이 넘었고, 나머지 두 언니도 칠십 중반을 넘었다. 큰언니와 무려 22살의 나이차가 있으니 친구들의 어머니 나이와 비슷하다. 한참이나 나이 차가 나는 할머니가 된 언니들과 이제 여행을 떠난다.

언니들이 자연을 좋아하니 포항의 비학산 휴양림에 숙소를 잡고 근처를 둘러보는

2박 3일의 일정으로 별 대단할 것도 없지만 자매들이 함께 하는 첫 여행이라 설렘 반, 걱정 반이다.     


그동안 형제자매가 함께 한 여행은 일본, 베트남, 제주도 등 여러 차례 있었지만 그때는 오빠 부부도 모두 함께 갔었고. 막내 오빠가 여행의 길잡이로 모든 주선을 했기 때문에 그저 따라만 다녔을 뿐이었다.

 

 언니들과의 여행은 퇴직 후 진작부터 별러왔지만 운전을 잘하지 못하니 마음만 있던 차에 올봄 어머니 제사에서 막내 올케에게 슬쩍 운을 띄워 보았다.

혹시 언니들이랑 여행 가면 운전을 해 줄 수 있겠느냐고 넌지시 물으니 다행히 흔쾌히 승낙해주었다. 막내 올케는 오빠의 아내이니 실상은 올케언니라고 해야 하나 우리는 나이가 한 살 차이라 서로 말을 놓고 편하게 지내는 사이이다.




 9월 말 다섯 여자는 유쾌하게 길을 나서 첫 번째 행선지인 포항 영일만의 환호공원으로 향했다.

환호공원은 스페이스 워크로 유명한 포항 최대 규모의 공원으로 전망대에 오르면 아름다운 해안과 포스코의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곳이다. 공원 내에 포항 시립미술관이 자리하고 있어 연중 조형물이 전시되고 있는 곳이다. 환호공원을 첫 번째 관광장소로 꼽은 이유는 체험형 공공미술 조형물 ‘스페이스 워크’(SPACE WALK)때문이었다.

 포항의 관광지 베스트 10에 속한다고 하여 찾았지만 ‘그림의 떡’이었다. 나이 든 언니들도, 고공 공포증이 있는 나도 그곳을 오를 수 없었다. 노약자나 장애인들에게는 체험형 조형물이 아니라 그저 볼거리에 지나지 않아 우리 모두 여행은 한 나이라도 젊어서 해야 한다고 혀를 차며 달랑 기념사진 한 장 남기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환호공원 스페이스 워커


다음 목적지는 경북 동해안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포항 죽도 시장이었다.

시장 안은 온갖 종류의 싱싱한 생선과 조개류가 넘쳐나고 있어 보기만 해도 에너지가 솟는 것 같았다.

우리 일행은 누가 할머니, 아줌마 아니랄까 봐 탄성을 지르며, 엄청나게 큰 갈치, 손바닥만 한 전복, 각종 조개류와 마른 건어물에 탐을 냈지만 남은 일정으로 눈요기만 하는 걸로 참아야 했다. 

포항 죽도시장(포항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http://www.pohang.go.kr)

포항은 대게로 유명한 곳이지만 제철이 아니라 기대를 안 하고 왔는데 웬걸 시장 입구의 노점상부터 시장 안의 가게들까지 엄청난 양의 홍게들이 손짓하고 있었다. 게다가 가격 또한 착하니 더 이상 게들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알이 찼을까 살짝 의심이 들었지만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에 직접 쪄주기까지 하는 한 가게에서 결국 홍게 한 박스를 주문했다. 게가 쪄지는 동안  주변 상가를 둘러보다 셋째 언니가 오징어회가 먹고 싶다 하여 싱싱한 오징어회와 모둠회까지 푸짐한 저녁거리를 사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도착하여 회와 밑반찬으로 푸짐한 한상을 차리고 본격적으로 홍게 박스를 개봉했다. 엄청난 양에 놀라고, 그 무게의 가벼움에 또 한 번 놀랐다. 우려했던 대로 살이 차지 않아 다소 실망했지만 워낙 많은 양에, 다리살은 제법 실하여 다섯 명이 먹기에는 충분했다. 게 다리를 잡고 관절 부위를 비틀어 살만 쏙 빠져나오도록 해야 하는데 처음엔 다들 익숙지 않아 게살이 잘 빠지지 않아 애를 먹던 언니들도 나중에는 게살 바르기의 달인이 되어 서로에게 권하기까지 했다.  먹다 보니 어마어마했던 양의 게들은 어느새 바닥을 보였고 모두 배가 불러 마지막 게를 서로 먹지 않으려고 손사래를 쳤지만 결국 게장에 밥까지 비벼 먹으며, 하하 호호 즐거운 저녁 식사를 마쳤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모두 성격이 조용하여 한데 모여도 큰 웃음소리가 나거나 떠들썩할 일이 거의 없었다. 언니들은 만나면 대부분의 대화가 건강, 운동, 병원에 대한 얘기였고 적당히 들어주던 나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기 일쑤였다. 누가 봐도 참 재미없는 우리 자매들이 홍게 한 박스를 놓고 이렇게 큰 소리로 깔깔거리며, 싱거운 농담까지 주고받는 걸 보니 내게는 참 새삼스럽고, 흐뭇한 저녁식사였다. 

    



 둘째 날. 우리가 찾은 곳은 내연산 보경사였다. 보경사 하면 12 폭포로 유명한 곳이다.

절에서 위쪽으로 12개의 폭포가 연이어져 있어, 이 계곡을 폭포의 왕국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하지만 우리는 절 경내만 둘러보기로 했다. 가장 가까운 제1폭포인 쌍생(상생) 폭포조차 절에서 1.5km 떨어져 있으니 왕복 3km는 아무래도 무리이다. 언니들은 나이에 비해 건강관리를 철저히 하는 편이다. 하지만 팔십이 넘는 큰 언니가 평지는 잘 걸을 수 있지만 계곡을 오르는 일은 다소 무리일 듯했다. 언제나 나이보다 젊고 건강하다고 여겨왔는데 올 들어 부쩍 큰언니의 체력이 떨어진 것 같아 마음이 아파왔지만 내색할 순 없었다. 언니들의 건강이 허락할 때 자주 나들이를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목이 우거진 보경사의 이곳저곳을 살펴본 후 폭포를 구경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며 내려오는 데 마침 문화해설사가 우리를 발견하고 절의 유래와 문화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사진 촬영을 부탁했더니 친절한 해설사는 사진을 찍어 준 후 자매와 올케 되시는 분까지 함께 다니시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다며 덕담을 해준다. 


점심 식사 후 영덕 해안도로를 달리며 아름다운 해안 절경을 구경했다. 경치 좋은 곳에 내려서 바다를 둘러보다 근처 언덕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던 중 언니들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추억 보따리를 풀었다. 어릴 적 고생했던 이야기, 살았던 동네 이야기, 내가 몰랐던 언니들의 어린 시절과 부모님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전에 간간이 주워들은 이야기도 있었지만 난생처음 들어본 이야기도 있었다. 

언니들과는 워낙 나이 차가 많이 나기 때문에 내 어릴 적 기억엔 언니들과 함께 살았던 시절은 없다. 더군다나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님은 막내인 나만 데리고 고향으로 이사를 갔으니  함께 나눌 과거는 없는 셈이다. 하지만 길고 긴 이야기 끝에 우리 모두는 하나의 추억으로 만날 수 있었다. 바로 어머니의 손맛이다.

우리 4 자매는 물론 며느리인 올케도 기억하는 어머니의 음식들, 가오리무침, 돼지갈비 석쇠 구이로 우리는 대동 단결하여 어머니의 음식 솜씨를 칭찬하고 추억 여행을 마쳤다.     


마지막 날 덕동 문화 마을을 찾아 한적한 시골 마을과 정갈한 고택들을 구경했다. 언니들은 고택 구경보다는 마을 고샅길을 걸으며 익어가는 감, 석류, 담벼락에 매달린 호박 등 시골의 정겨운 풍경에 더 관심이 많은 듯했다. 햇살이 따사롭게 비추는 가을날. 바쁠 것 없이 한가롭게 마을을 거닐며 눈으로는 익어가는 가을 속에 마을의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담고, 마음속엔 추억을 하나, 둘 쌓아가며 짧은 여정의 허전함을 달랬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언니들에게 제대로 관광을 못해서 아쉽지 않냐고 물었더니 갑갑한 도심을 벗어나 바람 쐬러 나온 것만 해도 더없이 즐겁다고 했다. 그랬다. 꼭 멀리 가서 맛있는 것을 먹고, 멋진 곳을 봐서 좋았던 건 아니었다. 함께 해서 좋았고, 새로운 추억을 나눌 수 있었기에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 돌아오는 내내 우리는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떠나오던 날의 설렘은 가슴에 묻고 아쉬움을 남긴 채 다음 여행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비록 2박 3일 동안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언니들이 건강해서 이렇게라도 함께 할 수 있어 너무 기뻤고, 4명의 시누이들과 지내며 언짢은 기색 한번 없이 즐겁게 동참해주고 편안하게 운전해준 올케에게 더없이 고맙다. 

 

내 마음은 벌써 내년 봄. 가까운 경주로 김밥을 싸서 벚꽃놀이 갈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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