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로 이사 온 후 가장 불편한 점이 교통이다. 특히 저녁 술자리 모임이 있을 때가 곤란하다. 대리운전이 힘든 곳이니 남편의 외출 시 대부분 내가 같이 따라 나가서 남편을 내려주고 돌아온다. 운전하기를 싫어하는 나로선 달갑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남편은 내가 어디를 가나 기사 노릇을 해주니 평소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지 않으면 후환(?)이 두렵다.
우리 집은 주차장을 반려견 두강이 방으로 쓰고, 차는 집 앞에 세워 둔다.
어둑한 주차장 안에서 두강이가 서성대다가 내가 차에서 내리자 꼬리 콥터를 가동 중이다.저녁밥 시간이 평소보다 늦어
몹시 기다린 눈치다.
서둘러 밥과 간식을 챙겨주고 ‘잘 자라’고
머리를 쓰다듬은 후 마당으로 올라왔다.
앞마당 쪽으로는 잘 나오지 않던 고양이 3마리가 발밑까지 쫓아왔다. 배가 무척 고팠나 보다. 밥그릇 3개를 나란히 놓고 사료를 담고 있는데 그 와중에 두랑이가 머리를 들이민다. 뚱뚱하다고 구박하면서도 제일 많이 담긴 밥그릇을 먹성 좋은 두랑이 앞으로 밀어 놓게 된다.
아이들을 건사하고 들어오니 벌써 7시.
떡 한 조각의 에너지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라 허기가 몰려온다.
일단 냉장고에 들어 있는 1인용 밥을 꺼내서 전자레인지에 데운다. 냉장고 안을 쓰윽 훑어 보니 반찬이 많다. 장어국, 미역국, 시래깃국, 멸치볶음, 일미 무침, 생선, 그 외 밑반찬들.
먹을 건 많지만 이것저것 꺼내기가 귀찮다. 시래깃국만 데울까 하다가 그마저도
‘에이, 뭘’하며 관둔다.
먹다 남은 나물 그릇과 역시 먹다 남은 김치통, 그리고 오랜만에 조미 김.
남편은 생김을 구워 먹는 걸 좋아해서 조미김은 잘 먹지 않는다. 하지만 난 가끔 조미 김이 먹고 싶을 때가 있어 사다 둔다. 다행히 남아 있다.
식탁 위에는 반찬 통째로 올라온 나물과
김치 그릇, 그리고 달랑 조미 김 하나.
생활비가 똑 떨어진 가난한 자취생의 밥상같이 볼품없다.
근데 처량하긴커녕 왜 이리 맛있는 거야.
처음엔 밥양이 좀 많아 보여 덜어 놓을까 했는데 어느새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시골에 이사 와서 또 하나 크게 불편한 것이 외식과 배달 음식이 안 된다는 점이다.
둘이 살면서 부터는 시내 아파트 살 때도 외식을 거의 하지 않았다.
아들이 고등학생일 때만 해도 토요일마다 외식을 했었다.
남편은 찜 종류, 나는 회, 아들은 고기를 좋아한다. 좀처럼 의견 일치가 어려울 땐 가위. 바위. 보로 정했다. 그것도 남편이 자주 이기는 바람에 나중에는 남편, 나, 아들의 순번을 정해 각자 자기 차례가 되면 원하는 메뉴를 고르고 나머지 가족은 무조건 따르기로 했었다.
아들이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난 후로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걸어서 가는 곳으로 외식을 했다. 반주를 즐겨하는 우리 부부는 차를 가지고 외식하러 가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색다른 음식이 먹고 싶으면 배달 음식으로 그 욕구를 채웠다.
시골로 이사 온 후 저녁 외식은 더어려워졌다. 대리운전도 어려운 곳이라 아예 나갈 엄두를 내지 않는다.
거기다가 이곳은 배세권이 아니다.
(역세권처럼 배달받기 쉬운 지역을 뜻하는 신조어)
치킨도 피자도 그 어느 것도 배달되지 않는 작은 시골 마을.
퇴직을 하고 시골로 이사 온 후 우리의 식생활도 바뀌었다. 아침이 되면 각자 산책과 운동, 두강이 돌보기, 텃밭 가꾸기 등의 일을 어느 정도 한 다음 9시가 넘어서야 느긋하게 아침 식사를 한다.
아침 식사는 거의 매일 같은 메뉴이다. 곡물식빵 한 조각에 계란과 치즈를 얹고, 각종 야채를 넣은 샐러드, 견과류와 블루베리를 얹은 수제요구르트.
간단해 보이지만 들어가는 재료는 무려 15가지가 넘는다. 나름 영양성분을 고려한 건강식인 셈이다. 점심은 떡이나 고구마와 과일, 주스 등으로 가볍게 때운다.
이제 남은 것은 저녁 식사.
메뉴 정하기가 늘 난제이다. 실제 요리를 하는 것은 저녁 한 끼이니 주부 입장에선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장을 보는 것도 20분 정도 차를 타고 가야 하니, 언제나 냉동실은 꽉 차 있다. 고기, 생선, 새우에 각종
밀 키트까지. 일주일 안에 중복되는 메뉴가 되지 않도록 휴대전화 달력에 매일 먹은 음식을 적어 놓는다.
오후 2시가 되면
‘오늘은 뭐 먹지’가 반복된다.
그렇게 매일 저녁 식사에 신경을 쓰다 보니 부담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다.
평소에 잘하다가도 어떨 땐 내가 밥하려고 퇴직했나 싶어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평소 요리하기를 싫어하지는 않는 편이다. 음식을 하고, 정성껏 세팅까지 하는 일은 보통은 즐겁게 하지만 그 일이 귀찮아질 때도 있다. 가끔은 설거지가 번거로워 접시에 덜지 않고 반찬통 그대로 먹고 싶을 때도 있다. 용기에 반찬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는 그냥 올릴까 하다가도 괜히 남편에게 미안해 접시에 담게 된다.
이전에도 남편이 저녁 모임을 갔을 때 간단히 차려 먹거나, 라면을 끓여 먹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유독 오늘따라 더 자유롭다고 느끼는 건 기분 탓인가?
아무튼 식사 준비를 안 해서 좋고, 접시에 덜지 않아도 되니 설거지 할 것도 별 없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