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번 정도 창고형 할인 매장으로 장을 보러 간다. 승용차로 약 40분 이상 걸리는 거리이므로 자주 갈 수 없어 살 것을 미리 적어 두었다가 한꺼번에 구매를 한다. 대부분 대용량이라 한 번 장을 보면 엄청난 양이다. ‘두 식구 살림살이에 굳이 그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싶지만 시골 살이에, 운전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꼭 해야 하는 중요한 월중행사이다.
구매하는 주요 물품은 육류, 주류, 치즈 등인데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식빵이다. 아침 식사에 식빵, 치즈, 계란 등을 사용하는데 이곳에서 구입하는 식빵에 통밀이 들어 있고, 가성비가 좋아 늘 구입하고 있다. 식빵은 큰 봉지 안에 다시 3개의 작은 봉지로 나누어져 있는 제품으로, 한 달 분을 구입하여 냉동실에 넣어 두고 있다.
마침 일주일 전 식빵이 다 떨어져 인근 마트에서 구매한 다른 빵을 먹고 있으니 오늘 꼭 사야 하는 품목이다. 평소처럼 식빵을 집어 들어 카트에 담으려다 혹시 싶어 겉봉지를 확인하였다. 최근 물의를 일으킨 SPC사의 제품이었다. 이전엔 식빵을 구입하면 겉봉지는 바로 버리고 속에 있는 작은 봉지째로 보관을 했기 때문에 이 회사 제품인지 전혀 몰랐다. 작은 봉지에는 아무것도 표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식빵을 제자리에 놓고 다른 회사의 제품을 골라 들었다. 진열대에는 이전에 간식으로 구입했던 다른 종류의 빵들도 있었다. 역시 SPC사의 제품이다.
물론 몰랐을 때의 일이긴 하지만 하필이면 이 회사 제품이었다고 생각하니 씁쓸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노동 현장에서 안전사고는 종종 일어나고 있다. 물론 단 한 건도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은 있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라 없을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사고 노동자에 대한 신속한 조치와 배려, 사고 처리 과정과 사후 대응책, 재발 방지 대책 등이다.
그러나 이번 SPC사의 평택 제빵공장 사망사고는 2인 1조가 지켜지지 않았다거나, 기계 안전장치 미흡 따위는 차치하고라도 나로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점이 3가지 있다.
사고가 난 공장은 SPC 제과점 프랜차이즈인 파리바게뜨에 빵 반죽과 재료를 납품하는 곳이다. 사고 당일 직원(23세)은 ‘12시간 맞교대’ 야간작업을 하다 새벽 6시 15분쯤 샌드위치 소스를 혼합하던 중 상반신이 교반기에 끼여 숨졌다.
이후 공장은 사고가 난 기계에 흰 천을 씌워두고 다음 날 곧장 기계 가동을 시작하고, 사고 현장을 목격한 노동자조차 출근시켰고 일부 직원에게는 재료를 폐기하도록 지시하였다.
생각해보라. 어제까지 내 옆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가 다른 곳도 아닌 바로 이곳에서 사고로 죽었는데 동료의 죽음에 대해 애도할 시간은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 옆에서 다시 일을 시킨다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 짓인가? 동료들이 겪어야 할 죄책감이나 트라우마에 대한 고려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사업주에게 노동자는 인간이 아닌 기계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았다.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예의가 그 곳에는 없었다.
두 번째, SPC 측은 숨진 직원의 장례식장에 파리바게뜨 빵 두 박스를 두고 갔다. 상자 안에는 땅콩크림빵과 단팥빵이 들어있었다. 회사 측에서는 통상적인 장례지원이라고 말했다. 숨진 직원과 유가족을 조금만이라도 배려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너무나 비상식적이고 비인간적인 태도에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린다.
글이 자칫 너무 감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이렇게 표현하는 것도 나로서는 최대한 자제하는 셈이다.
세 번째는 사측의 안전불감증과 부적절한 태도이다.
지난 5년 9개월 동안 15건의 끼임 사고가 발생했지만 여전히 2인 1조가 해야 할 작업을 홀로 하게 하고 제대로 된 안전장치조차 마련하지 않았다.
지난 10월 7일 SPC 계열사인 SPL에서 손끼임 사고가 발생했다. 평택에 있는 공장에서 한 기간제 직원이 업무에 대한 설명도 듣지 못한 채 기계를 청소하다 손이 빨려 들어가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런데 공장에서는 직원을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사내에 있는 보건실로 데려갔다고 한다. 거기서 직원은 ‘기간제네, 기간제는 알아서 해, 파견업체에 연락은 해 드릴게요. 병원은 알아서 가세요’라는 말을 했고 다친 직원은 직접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갔다고 한다.
참, 기가 찰 노릇이다.
이번 사고 후에도 SPC사측에서는 처음에 ‘법적으로 안전장치를 설치할 의무가 없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다가 여론이 악화되자 사고가 발생한 지 이틀이 지나서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재발방지책을 내놓았다.
사망 직원의 어머니는 어디서도 사망 경위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고 회사 측의 사과는 의례적이었다고 말했다.
자본가가 아무리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목적이라 해도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엄은 지켜져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고작 내게 주어진 일과, 가족, 지인이나 돌아보는 정도의 평범한 소시민이다.
그러니 사회정의를 위한 대단한 신념이나 용기도 없다. 뉴스를 보면 그저 혼자 울분을 토하는 딱 그 정도이다. 하지만 내게도 손바닥만 한 양심은 있어 이번 일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름다운 청춘을 꽃피워 보지도 못한 노동자의 죽음을 애도하는 마음을 그저 몇 글자로 대신한다. 그녀의 죽음이 밑거름이 되고, 불씨가 되어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