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라는 속담이 있다. 내가 한 일도 아닌데 마치 나와 연관된 일인 것처럼 여겨진다.
몹시 억울하다. 속담 속의 까마귀는 아마 발을 동동 구를 것 같다.
사실 까마귀를 보고 예쁘다거나 귀엽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전부터 까치는 반가운 손님을 부르는 길조로 동요에도 등장하지만, 까마귀는 온몸이 검은색으로 시체 주변에 모여드는 모습이 종종 묘사된다. 그뿐인가. 둔탁하고 굵은 울음소리 때문인지 죽음을 암시하거나 불행을 상징하는 새로 취급받았다.
나 역시 까마귀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해마다 울산을 찾는 떼까마귀를 보면서 그런 생각은 없어지고 오히려 친근감을 느낀다. 까치가 농작물과 과수재배 농가에 피해를 준다는 얘기는 심심치 않게 들었지만, 몇 만 마리의 까마귀가 찾아들어도 잠자리 근처의 주택가에 새똥으로 인한 피해 외에는 딱히 들은 바가 없다.
정말 까마귀는 재수 없는 새일까?
까마귀가 궁금해졌다. 만약 대다수의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다면 까마귀를 대신해 억울함을 풀어 주고픈 난데없는 정의감이 들었다.
역사 속에서 살펴본 까마귀는 사람들의 편견과 달리 길조로 여겨져 왔다. 고구려에는 ‘삼족오’라는 나라를 상징하는 국조가 세발 달린 까마귀였다. 신라에서도 까마귀가 소지 마립간에게 암살 시도를 미리 일러주어 그 대가로 매년 오곡으로 까마귀밥을 지었다는 설화가 있다. 견우와 직녀’의 사랑을 이어주는 오작교도 까치와 까마귀가아닌가.
반포지효 [反哺之孝]라는 말이 있다. 자식이 자라서 어버이의 은혜에 보답하는 효성을 말한다. 이는 까마귀 새끼가 자라서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 까마귀가 덜 떨어진 인간보다 낫다.
서양에서도 신화 속의 까마귀는 신들을 도와주는 심부름꾼으로 나오기도 하고 고대 수메르인들은 평화의 상징으로 여기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까마귀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지는 것 중 하나가 죽은 동물의 사체를 먹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까마귀의 주식은 작은 벌레, 나무 열매, 씨앗 등이다. 동물 사체를 먹기도 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자연의 청소부 역할로 건강한 생태계 유지에 꼭 필요한 것이다.
이쯤 하면 까마귀가 불운을 가져다주는 새가 아님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직 친근하게 여기기엔 뭔가 부족하다. 이번엔 좋은 점을 찾아보자.
우리는 깜빡깜빡 건망증이 있는 사람에게 '까마귀 고기 먹었냐?'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여태까지 까마귀가 새들 중에서도 특히 머리가 나쁜 줄 알았다.
그러나 IQ가 가장 높은 새가 '까마귀'이다. 놀라지 마시라. 까마귀의 지능은 영장류에 속하는 침팬지와 비슷한 수준으로5세~7세 어린이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는 조류뿐만 아니라 포유류를 통틀어서도 최상위권에 속한다고 한다. 까마귀는 도구를 만들어 사용할 줄 아는 놀라운 지능 수준을 갖추고 있다. 믿지 못하겠다고? 여기 명백한 증거를 제시한다.
다음 영상으로 확인 들어간다.
까마귀가 좁은 물병에 돌을 넣어 먹이가 떠오르면 먹이를 먹는 장면이다. 부피와 부력의 개념을 이해하고 있다. 놀랍지 않은가?
까마귀의 지능에 대한 또 다른 사례를 보자.
2007년 미국 뉴욕 대학생에 의해 까마귀 땅콩 자판기가 발명되었다.
자판기 투입구에 동전이 들어가면 땅콩이 나오는 모습을 까마귀에게 반복적으로 보여주면 까마귀가 자판기의 동작원리를 깨닫게 된다. 훈련된 까마귀는 동전을 물어와 자판기에 넣고 땅콩을 사 먹는다,
이러한 원리를 이용하여 네덜란드, 프랑스, 스웨덴에서는 까마귀 청소부가 투입되고 있다.
프랑스의 테마파크 ‘퓌뒤푸’에서는 특수 훈련을 받은 까마귀 6마리가 공원을 날아다니며 관람객들이 버린 담배꽁초나 작은 쓰레기를 부리로 수거한다. 쓰레기를 부리로 집어 수거 상자 안에 넣으면, 고생한 대가로 먹이를 지급받는다. 인간이 버린 쓰레기를 까마귀가 줍는다.
이제 천덕꾸러기, 재수 없는 새, 머리 나쁜 새 취급을 받아 온 까마귀에 대한 오해를 풀자.
혹여 머리 위로 날아가는 까마귀를 보기라도 한다면 그동안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눈인사라도 건네 보면 어떨까?
까마귀를 통해 타인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고 단편적인 모습만으로 평가해버린 나를 뒤돌아 보게 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