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식사를 준비하며 저녁에 동지 팥죽을 끓여야 하나 잠시 생각해 본다. 괜스레 일거리를 만든다 싶어 이내 머리를 가로저었다. 팥죽을 쑤려면 팥도 미리 삶고, 쌀도 불려야 한다. 게다가 새알심도 빚어야 하니 손이 더딘 내가 하기엔 시간도 부족하다. 작년에 내 손으로 한번 끓여 본 걸로 만족하자. 정 생각나면 한 그릇 사 오지 뭐. 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데 전화벨이 울린다.
“ㅇㅇ씨, 뭐 하노, 그릇 가지고 내려 온나. 팥죽 쒀 낳다.”
얼떨결에 대답하고 전화를 끊으니 남편이 말한다.
“두강이랑 밑에 내려갔을 때 민여사가 바깥 마당에서 큰 솥에 불을 때고 있더라”라고 한다.
울산에선 보기 드문 맹추위에 눈발까지 날리는데 아침부터 팥죽을 쑨다고 고생했을 생각을 하면 염치가 없다. 하지만 따끈한 팥죽 한 그릇으로 저녁 준비의 수고까지 덜 생각을 하니 입꼬리가 올라간다. 사과와 귤 몇 알을 챙겨, 냄비 하나를 들고 나섰다. 나보다 앞선 걸음에 앞집과 옆집도 팥죽을 받아 간다.
꼭 배급받는 것 같다.
전에 살던 아파트에선 몇 년 동안 부녀회에서 동지에 팥죽을 끓여 판매한 적이 있었다. 동지 며칠 전부터 엘리베이터 앞에 전단지를 붙여 두고 신청을 받았다,
동지 팥죽은 그냥 넘기기엔 섭섭하고 끓일 엄두는 내지 못해 부식 가게에서 더러 사 먹기도 하던 터라 부녀회에서 팥죽을 쑨다 하니 얼씨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믿음이 가는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고, 판매 대금은 불우이웃 돕기로 기부되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퇴근하고 팥죽을 가지러 가면 큰 솥 몇 개와 설거지 거리가 잔뜩 쌓여 있었다. 그 옆에 하루 종일 팥죽을 쑤느라 파김치가 되어 지치신 몇 분이 기다리고 계신다. 팥죽뿐만 아니라 죽 끓이는 일은 정성이 절반이다.
불 앞에 지키고 서서 계속 저어야 하는데 조그만 냄비도 아니고 큰 솥을 저으려면 하루 종일 얼마나 팔이 아팠을까 싶다. 힘든 일을 사서 하시는 그분들의 노고가 눈에 밟혀 몇 번이고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었다.
새알을 얹어 한 입가득 팥죽을 넘긴다. 간이 맞다. 나는 달콤한 단팥죽보다 소금 간을 한 새알심이 많은 팥죽을 좋아한다. 아마 어렸을 적부터 먹던 팥죽이 입에 익은 탓이겠지. 따끈한 팥죽 한 술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니 어머니가 생각난다.
대학생 시절 겨울방학 때 집에 다니러 오면 어머니는 동지가 지났는데도 뚜껑이 달린 노오란 양은통에 항상 내 팥죽을 담아 시렁 위에 얹어 놓았다. 나는 팥죽을 보자마자 죽그릇을 미처 데우기도 전 새알부터 건져 먹었다. 어머니는 체한다고 먹지 못하게 했지만 차가운 팥죽은 나름 별미였다. 어머니의 팥죽에 들어 있는 새알은 요즘 판매하는 새알심보다 넉넉한 크기였다. 나이대로 먹어야 한다고 새알심을 가득 넣어 주신 따뜻한 팥죽을 먹었던 기억은 왜 사 십 년이 되어가도 마냥 또렷한 것인지? 아마 다 큰 나이임에도 어머니의 사랑이 고팠던 건 아닐까?
함께 살면서는 어리기도 했고, 으레 껏 먹는다고 생각했던 팥죽이, 집을 떠나고 성인이 되어서야 어머니의 귀한 노동으로 당연 치 않게 주어지는 것임을 깨달은 탓이리라.
유난스레 손발이 찬 내가 한겨울 꽁꽁 얼어붙은 손을 하고 들어서면 두 손을 꼭 잡고 엉덩이 밑에 넣어 녹여 주시던 따스함이 그립다. 고등학교 다닐 적 혼자 먹는 늦은 저녁 시간. 아랫목에 묻어 둔 밥그릇을 꺼내 주시며 옆에 앉아 반찬을 집어 주시던 어머니의 주름진 손도 눈에 선하다. 그리고 시렁 위에 얹어 두었던 노오란 양은 팥죽 그릇도.
동지 팥죽을 끓이는 일은 다른 사람을 염두에 두고 하는 일이다. 두 세 사람이 먹자고 하기에는 너무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큰 가마솥에 끓인 어머니의 팥죽은 사촌 오빠네를 비롯한 이웃집들에게 한 해를 무사히 넘겼다는 안도의 마음을 담아 전해졌다. 아파트 부녀회의 팥죽은 주민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넉넉한 이웃사랑과 기부금을 전해줄 또 다른 이들을 위한 정성으로 마련되었다. 오늘 민여사가 끓인 팥죽도 그런 마음을 담아 건네는 것이리라.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 는 말이 있다.
그래서 팥죽에 먹는 사람 나이만큼 새알심을 넣는다고 한다.
이제 내 나이만큼의 새알을 넣을 수도 없을 정도의 세월이 지나갔다. 오늘 저녁 팥죽 한 그릇을 먹었으니
또 한 살어치의 생각은 깊어지고 마음은 넉넉해졌을까?
세찬 바람의 기세에 나무들도 놀래고, 이웃집 비닐하우스 펄럭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이 밤.
한 겨울 추위 속에 내 몰린 사람들은 없는지, 난방비가 무서워 몇 겹의 옷과 이불속 체온으로 버티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 산 짐승도 길에 사는 동물들도 일 년 중 밤이 제일 길다는
오늘 동지의 밤을 무사히 넘기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