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에 대한 두 가지 생각

정자 해변 카페에서

by 도희

“야~옹”느릿하며 목쉰 듯한 소리의 주인공은 두식이다.

평소보다 서둘러 마당냥이들 밥을 챙겨주러 나가니 놈이 나를 보자마자 기지개를 켜며 달려온다. 내 기척을 알아챈 두 녀석도 마치 기다렸다 듯 위쪽 비닐하우스에서 나오며 연신 야옹거린다.


두리의 오른쪽 앞발 상태가 어제 보다 훨씬 좋아져서 안심이다. 무리해서 뛰어내리지 못하게 살며시 녀석을 안아 내렸다. 며칠을 절룩거리며 다니기에 혹시나 뼈를 상한 것 아닌가, 병원을 데려가야 되나 고민했는데 동물들에겐 역시 자연 치유 능력이 있나 보다.


고양이들을 돌보면서 비, 바람, 기온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 요즘처럼 기온이 내려가니 아이들의 사소한 변화에도 민감하다. 그런 날 보고 남편은 과잉보호라고 놀려대지만 아이들은 말을 못 하니 내가 그들을 들여다볼 도리밖에 없다.

12월 초. 건강검진을 했다. 방학이 끝나기 전 부랴부랴 해치우던 숙제마냥 미뤄 두었던 건강검진을 마쳤다. 수면 내시경으로 대장과 위를 검사했고 용종 하나를 제거했다.

일주일 뒤 검진 결과를 보러 가니 우려했던 당뇨나 혈압은 다행히 정상이었다.


골다공증은 이미 알고 있던 터라 계속 약을 처방받으면 될 일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 쉬려는 찰나 복부 초음파로 검사한 특정 부위가 약간 의심되니 전문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으라 한다. 미적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이유는 회피본능 이었을까? 해를 넘기기 전에 예약이라도 해 두려고 소개받은 병원에 연락하니 마침 검진 취소된 자리가 있어 운 좋게 진료를 받게 되었고 그날이 오늘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살짝 걱정은 됐지만 불안까지는 아니었다. 서둘러 채비를 하는 와중에 내 마음은 흰 도화지에 불안을 채색하듯 먹빛으로 물들어갔다. 혹시나?

짧은 시간 동안 생각의 곁가지들이 덩굴처럼 뻗어 나갔다.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불길한 속마음을 꾹꾹 눌렀다.


병원까지 걸리는 40여분 동안 운전하는 남편 옆에서 쓸데없는 생각을 떨쳐내려고 수다를 떨었다, 두리 발이 나아서 다행이라는 둥, 이 길 가로수가 벚꽃이었지. 봄이면 벚꽃 터널을 이루는 길인데 나무 굵기를 보니 나이가 꽤 된 것 같아. 누가 심었을까. 뭐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병원 문 앞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아직은 혹의 크기가 작으니 6개월 뒤에 다시 검사해서 크기 변화를 보자 하신다. 내 설명을 들은 남편의 긴장된 얼굴이 그제야 평온을 찾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활짝 웃으며 남편에게 악수를 청했다.

“잘 됐어. 다행이야.”

우리는 기분 전환 겸 오랜만에 바닷가 경치 좋은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으며, 뜨거운 커피 한 모금에 하루치의 긴장을 누그러뜨렸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침부터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혹시나에 대한 생각을 남편에게 말했다.

혹시나 (그럴 리가 없겠지만 만의 하나라도)는 양면적 단어다.

복권을 사고 혹시나 당첨되길 바라는 마음처럼 요행을 기대하는 마음과 우려하는 마음을 둘 다 가지고 있다.


“난 여태까지 혹시나라는 말을 늘 어떤 기대를 품을 때 썼던 것 같아. 주로 긍정적으로 생각할 때지.” 하지만 오늘 아침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던 혹시나는 불길한 쪽이었다. 살면서 여태껏 걱정하는 쪽의 혹시나를 생각해본 기억이 별로 없었다는 게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그건 아마 너무 급박한 상황에서는 혹시나를 염두에 둘 겨를조차 없었을 것이고, 그 외는 걱정되는 일이 생겼다 해도 감당할 수 있는 사소한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당신은 어때?”

남편은 나와 정 반대였다.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해 잘못될 경우를 먼저 생각한다고 했다. 일종의 부적처럼 그렇게 먼저 생각하면 결과가 좋은 쪽으로 나타났고 어쩌다 별일 없겠지라고 방심할 때 나쁜 일이 일어난 경우를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어젯밤도 혼자 불길한 혹시나를 붙잡고 인터넷 검색과 다음에 벌어질 결과에 대한 순서도를 세우고 있었다 한다.


“그럼 당신은 당신 방식대로 혹시나를 생각하고, 난 계속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되겠네.”라며 말 마무리를 하고 무심한 듯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코끝이 찡해 온다.


30년을 산 부부라 할지라도 말 안 하면 그 속을 어떻게 알겠는가?

정밀검사를 받으라는 말을 들은 후부터 관련 자료를 검색하고, 서울의 큰 병원을 예약하면 한참 걸릴 텐데 하는 걱정까지 끙끙거리며 불면의 밤을 보낸 남편.


아! 당신은 나보다 더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이었군요.

쑥스러워 못한 고맙다는 말을 이 글로 슬쩍 퉁치고 넘어간다.

물론 내일 아침이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웅다웅하겠지만.

藿巖 곽암: 미역이 붙어서 자라는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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