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 나만 안녕해서 될 일인가?

난방비 폭탄에 관한 뉴스를 보고

by 도희


북극발 최강 한파가 몰아닥친 울산은 25일 한파특보가 발령된 가운데 아침 최저기온 -13.6℃로 56년 만의 최강 한파를 기록했습니다. 체감온도는 –22℃까지 떨어졌습니다.


울산 남구 동굴피아 인공폭포에 거대한 고드름이 매달려 강추위를 실감케 하고 있다. 2023.01.25. bbs@newsis.com.

어제 뉴스 내용이다. 며칠 동안의 강추위가 오늘은 좀 누그러진 듯 하지만 여전히 춥다. 아침에 따뜻한 물로 갈아준 고양이 물그릇이 꽁꽁 얼었다. 썬룸 안의 수도마저 얼었다. 전에 없던 일이다. 이런 추위에 다들 별일은 없는지 여기저기 안부전화를 건다. 객지에 혼자 사는 아들과 형제자매들, 지인들에게 동파사고는 없는지, 건강은 괜찮은지 묻는다. 그들의 무사함을 확인하고 나니 마음이 놓인다.


연일 뉴스에서는 ‘난방비 폭탄’이란 말을 쏟아 내고 있다. 누구든 일정한 한 달 수입에 정해진 쓰임새가 있다. 갑자기 늘어난 난방비는 서민에겐 큰 부담이다. 나 역시 예외일 수 없다. 겨울 초입부터 내복과 기모바지를 입고 수면양말에 털 실내화를 신는다.


이곳은 시골이라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다. 개별 LPG 가스 난방이다. 도시가스보다 난방비가 훨씬 비싸다. 아파트 관리비 낸다고 생각하면 큰 차이가 없지만 이사 온 첫해 며칠 틀어 보곤 깜짝 놀랐다. 그나마 남서향 집이라 낮엔 햇빛이 잘 들어오고, 창호가 좋아 바람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잘 때 방에만 18°로 난방을 한다. 대신 침대에는 전기요를, 소파에는 전기방석을 깔아 둔다. 물론 두툼한 담요까지 장착하고. 이사 온 첫 해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전기세 부담은 덜하다. 하지만 아파트에서부터 아껴 쓰는 습관이 들어서인지 꼭 필요한 전등만 켜 둔다.


얼마 전 지인들과 함께 거제에 갔었다. 여행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쾌청하고 따뜻한 날이었다. 1월 중순에 개나리와 동백이 제법 피어 있었다. 철없는 꽃이라고 웃고 넘겼지만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마냥 좋아라 하기에는 겨울답지 않은 날씨가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게 했다. 그러더니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기록적인 한파가 닥쳐왔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북미는 폭설로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유럽은 20도까지 겨울 기온이 올랐다.


지난 2022년 세계 곳곳에서 이상 기후 현상이 나타났다.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파키스탄의 대홍수, 계절과 관계없는 미국의 토네이도, 엄청난 가뭄으로 말라버린 제주도 2배 크기의 중국 호수. 녹아가는 빙하와 만년설은 현재의 기후 위기를 상징하는 자연현상이다. 기후위기와 기후재난은 먼 미래가 아님을, 이미 우리 삶을 엄습하고 있는 무서운 현실이란 걸 적나라하게 증명하고 있다.


기상이변의 주된 이유가 지구온난화 때문이라는 얘기는 익히 알고 있다.

지역과 계절에 따른 온도차도 극심해지고 있다. 급속한 온난화가 중요한 요인이며, 최근의 한반도 기후변화 추세로 볼 때 앞으로 당분간 여름은 더욱 더워지고, 겨울은 더욱 추워지는 양극성기후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결국 겨울의 혹한을 예방하고 기후의 양극화 현상을 줄이기 위해서는 지구온난화 속도를 늦추기 위한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상기후 현상이나 자연재해에 관련된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다. 내가 특별히 기후 변화에 관심이 있거나 그 방면에 과학적 지식이 있는 사람은 더군다나 아니다. 그저 이런 일을 보며 시원한 김칫국 한 사발이라도 들이키고 싶은 속 타는

한 사람일뿐이다.


여름이면 어김없이 피해 입는 지역만 다를 뿐 태풍피해와 수재, 가뭄을 겪는다. 겨울이면 한파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피해를 많이 입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극히 평범하거나 어려운 사람들이다. 물난리를 겪어 몇 십 년 생업의 터전인 가게의 물건을 온통 못 쓰게 된 상인들. 수재나 가뭄으로 한 해 농사를 망친 농민들. 쪽방에서 선풍기 한 대로 여름을 견디다 질식사 한 노인. 난방기 하나 없이 몇 겹의 옷과 양말로 홀로 버티다 결국 목숨을 빼앗긴 그들. 이들이 지구 온난화의 주범들인가?

지구를 뒤덮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에너지를 펑펑 써대는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피해를 입는 것은 정작 엉뚱한 사람들이다. 120㎏. 소 한 마리가 1년에 내뿜는 메탄가스 양이다.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23배 큰 혼실효과를 낸다고 한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정작 1년에 한두 번도 소고기를 먹을 수 없다.


지구상 곳곳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심지어 그들의 고통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북극의 곰들이, 펭귄이, 미래를 살아갈 우리의 후손들이 그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지구 평균 온도상승에 따른 시나리오가 점점 현실로 다가오는 것이 두려울 뿐이다.



작은 실천이 모여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글을 쓰는 나조차도 할 말은 없다. 겨우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거나 분리수거 정도 할 뿐이다. 내 돈 나가는 것 무서워 에너지 절약하는 주제밖엔 못 된다. 그래서 미안하고 부끄럽다. 이제 환경 보호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나로 인해 이웃이, 죄 없는 동식물이, 우리의 미래가 참혹하게 망가지는 걸 방관하기엔 내게도 쥐꼬리만 한 양심이 있다.

겨울이 가려면 아직 한 달이 남았다. 사람들의 시름소리가 내 어깨에 짐을 얹은 것 마냥 무겁게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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