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를 키운다. 15Kg의 골든두들 두강이를 마당에서 키우고 있다. 어른이 되어 키우는 두 번째 개다.
첫 번째는 아들의 성화로 키우게 된 조그맣고 하얀 몰티즈 은비였다.
은비는 깜장 콩알 세 개를 박아 놓은 듯 귀여운 아이였다. 외모와는 다르게 성격은 시크하고 도도했다. 마치 지가 공주인 듯 관종끼가 다분했다. 은비는 바쁘다는 핑계로 못다 준 사랑만을 애달프게 남기고 4년 전 무지개다리를 건너 별이 되었다. 14년을 아들보다 더 가까이 지내다 보니 헤어짐이 쉽지가 않았다. 다시는 정주고 이별하는 아픔을 겪지 않으려 내 인생에 더 이상의 개는 없다 여겼다. 그럼에도 지금 내 곁엔 두강이 있다.
시골집엔 늘 개를 키웠다. 이웃집 개가 낳은 새끼를 얻어 온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 무렵 시골 개는 대부분 시고르자브종이었다. 우리 집도 다를 바 없었다. 아버지는 참말 단순하게 강아지의 색깔을 보고 이름을 지으셨다. 검은색은 무조건 검둥이, 하얀 강아지는 백구, 시골에서 제일 흔한 누런 빛을 띤 놈들은 그나마 번차례로 황구와 황술이로 불리었다.
당시의 시골 동네 개 이름은 보통 메리, 워리, 쫑, 도꾸였다. 글쎄, 그 시절 어른들이 영어 이름이라서 있어 보이려고 메리나 쫑을 갖다 붙였는지는 모르겠다. 허나 어쨌든 서양 남녀 이름 중 가장 흔한 메리나 존을 우리네 개에게 붙였다는 것이 난 좀 통쾌한 기분도 들었다.
나는 콩이나 행복이같은 좀 더 귀여운 이름을 짓고 싶었다. 하지만 흔하고 쉬운 이름을 붙여야 건강하고 오래 산다는 아버지의 생각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난생처음 강아지를 키워 보는 나는 이름 따위야 어쨌든 좋았다. 강아지가 생겼단 사실에 들떠 곧 아버지가 지은 이름에 익숙해졌다.
둘째 오빠가 군대를 간 후 사랑채는 내 차지가 되었다. 겨울 찬 바람은 도시보다 시골이 훨씬 매웠다. 바람소리가 문풍지를 긁어대면 쉬이 잠들 수 없었다. 마루 밑에 잠자리를 두고 있는 황구가 마음이 쓰였다. 이부자리에서 뒤척이다 결국 문을 열고 안채의 기척을 살폈다. 불은 꺼져 있고 부모님은 잠드신 것 같았다. 나는 살그머니 황구를 불러냈다.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이 마루 위로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춥지, 이리 와 누나랑 방에 가자.”
밖에서 뒹굴던 녀석의 발을 대충 닦이고 이부자리로 끌어들였다. 그 뒤로 아주 추운 겨울밤이면 가끔 황구와 동침을 했다. 몰래한 사랑처럼 들키지 않으려고 아침 일찍 서둘러 내 보냈다. 그러다가 타이밍을 놓쳐 들킨 적도 있었지만 아버지는 몇 마디 하시곤 별 혼내지 않으셨다.
시골의 개들은 수명이 짧았다. 그때는 사료가 아니라 사람이 먹다 남긴 음식이 그들의 주식이었다. 예방주사나 심장사상충약을 먹인다든가 하는 일은 생각도 못했다. 목줄을 하던 시절이 아니니 동네를 돌아다니다 쥐약을 먹고 죽는 일도 흔했었다. 알 수 없는 죽음으로 여러 차례 바뀌는 개들을 지켜보는 일은 내게 큰 슬픔이었다. 하지만 개를 잃은 슬픔은 또 다른 개를 키우면서 자연스레 치유되었다.
중학교 다닐 적 키우던 개의 이름은 황술이였다. 누런색으로 암컷이었다. 요즘 ‘우리 개는 착해요. 우리 개는 안 물어요.’라는 말을 하면 욕 듣기 십상이다. 그런데 내 기억 속의 우리 개들은 하나같이 순둥이고 잘 짖지도 않았다. 황술이도 그랬다. 황술이는 새끼를 낳아 마을 안 여러 집으로 살러 보냈다. 새끼가 보고 싶으면 무시로 가서 보고 왔다. 새끼들도 어미를 보러 왔다. 그 새끼가 어미보다 덩치가 커져도 그들은 한데 어울려 놀았다.
중 2 때인 것 같다. 설 전날이라 모두가 정신없이 바빴다. 이것저것 심부름에 정신이 없던 차에도 황술이 딸이 마당을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눈에 뜨였다. 배가 한참 불러오고 부터는 통 발걸음이 없던 터였다. 하지만
개도 내일이 설날이라 지어미에게 세배하러 왔나 싶어 기특하게만 여겼다.
동네 사람 대부분 친인척인 마을에서 아버지는 항렬이 아주 높은 편이었다. 설날 아침이면 차례를 지내기 전 집집마다 세배를 왔다. 외지에 나가 있던 자식들까지 데리고 오다 보니 100명 정도의 세배객은 보통이었다. 세배객이 바뀔 때마다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다과상을 새로 차리는 일은 내 몫이었다.어머니는 첫새벽부터 손님 맞을 준비를 하셨다. 떡국 끓일 솥에 불을 지피고 다과상에 올릴 강정과 떡, 전을 큰 쟁반에 수북이 썰어 담아야 했다.
그날도 어머니는 컴컴한 새벽 기운 속에 아궁이에 막 불을 지피려던 참이었다. 황술이가 평소 답지 않게 부엌문 밖에서 계속 서성이며 낑낑댔다. 어머니는 이상하게 여기고 황술이에게 다가갔다. 개는 마치 안내라도 하듯 사랑채로 어머니를 이끌었다. 사랑채 마루 밑에서 끙끙 앓는 소리와 함께 아주 여린 강아지 소리가 들렸다. 놀란 어머니는 살그머니 플래시를 비춰보았다.
우리 집을 들락거리던 황술이 딸이 새끼를 낳고 있었다. 어머니의 부름에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나온 나와 아버지는 긴급 대책반을 꾸렸다. 어머니는 미역국을 끓이고 아버지와 나는 헌 옷가지와 수건을 준비했다. 그것만으론 어린것들이 추위를 이겨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버지는 겨울에 돼지가 출산할 때 해주던 방식대로 콘센트를 연결하여 30촉 전구 2개를 켜 주었다. 설날 아침 세배객을 맞기도 전에 새 생명이 탄생했다. 무사히 첫 출산을 마친 황술이 딸은 따끈한 첫국밥을 먹고 고단한 잠에 빠졌다.
부산스러운 설날 아침이 지나고 황술이 딸의 집에 기별을 넣었다. 깜짝 놀란 주인이 달려왔다. 그렇지 않아도 몸 풀 때가 된 녀석이 보이지 않아 걱정하던 참이었단다. 도시 살던 그 집 아들이 고향 집 대청소를 하면서 헛간에 쌓인 짚더미를 말끔히 정리해 버린 게 사단이었다. 몸 풀 곳이 없어지자 낮부터 우리 집을 서성인 것이었다. 친정에 몸 풀러 온 황술이 딸 이야기는 한동안 마을의 얘깃거리가 되었다.
설날 반려견 두강에게 떡국을 먹이지 못했다. 떡국이라도 먹여서 억지춘향으로 철들게 했어야 하나 싶다.
다른 건 고사하고 아직도 꽃샘 추위가 남았는데 옷이나 그만 물어 뜯었으면 좋겠다. 더이상 입힐 옷이 없다.
귀여운 놈 떡하나 더 준다는 생각으로 국밥을 끓이다 옛 생각이 났다. 아무래도 개와 나의 인연을 끊기는 쉽지가 않을 것 같다. 추억 속의 개들마저 이처럼 떡하니 내 머릿속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