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은사지 기행
L
감은사지에 도착했을 때,
까마귀 저녁 길을 울어 넘고 있었습니다.
석공은 휘적휘적 일어나 서글픈 무늬 되어 사라지고
붉은 강은 꼬리 치며 휘돌았습니다.
헐거워진 바람이 열고나는 터
질그릇 같은 무덤 안을 서성였을 때
물길 따라 황룡이 돌아오는 듯
소리 없는 예불 붉게 붉게 펄럭였습니다.
L
상상해 보세요
세월의 흔적을
내가 당신의 흔적을 찾는 이유입니다.
나는 누구의 발걸음으로 여기 왔는지
나는 누구의 얼굴로 여기까지 걸어왔는지
당신은 여기와 거기 어디쯤에 존재하는지
산그늘 경계를 넘어서고 난 뒤부터 나는 속병이 도져
쓰러질 듯 어지러웠고 헛구역질이 심하였습니다.
-등 좀 두드려 주세요. 대왕님.
해풍에 뭉개진 어깨를 주물러 드릴게요.-
빈터에 주저앉아 중얼거렸습니다.
살아남은 탑 둘,
물풀 같은 바람이 나의 등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