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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당의 차가운 바닥에 맨발로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새벽마다 찾아가는 곳입니다.
새벽 성당의 싸늘한 기운을 좋아합니다.
창으로 들어오는 아침햇살을 좋아합니다.
무엇보다 고요함을 좋아합니다.
하느님을 뵌 적은 없습니다.
하느님도 나 혼자 놀게 그냥 둡니다.
가끔 빛이 들어오면
그 빛에 얹어 하느님이 말씀하실 때도 있습니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래도 나는 그 소리들이 좋습니다.
그 빛을 따라 기억이 없는 세계로 들어갑니다.
가끔 기도라는 것도 합니다.
당신의 길을 가는 당신이 측은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상처와 결별하는 꽃잎을 위해 기도합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내일은
내일의 기도가 생기기를 기도합니다.
L
성당을 다녀와서 목련꽃 봉오리를 땄습니다.
나는 목련차를 참 좋아합니다.
차를 마시며 세월 빠르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내가 자꾸 세월의 손을 잡고 앞으로 내달린 것은 아닐까 돌아봅니다.
무엇이 그리 바빴을까요.
그냥 있어도 좋았을 것을
바위처럼 가만히 있어도 좋았을 것을
그래도 목련을 따고 말려서 차를 마실 수 있었는데
바삐 가야만 차 한 잔 마실 수 있는 줄 알았습니다.
기어이 그토록 원하던 봄이 왔는데
L, 왜 내 마음이 이리 텅 빈 것 같은가요
따뜻한 차 한잔을 하면서
봄에는 더 많은 것들과 눈을 맞추며 웃어보자고 생각합니다.
지난겨울에 감사하면서
당신에게 차 한 잔 건넬 수 있는 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나는 길이라면 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