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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엘에게 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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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등 Mar 16. 2024

껍데기와 알맹이

 


L


 창 밖에 바람이 부는군요.

오늘 저는 아이들과 재미있는 수업을 하나 했습니다.

신동엽의 詩 <껍데기는 가라>를 개작하는 일이지요.

우선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아이들과 껍데기와 껍질 그리고 알맹이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껍데기라면 겉과 속이 다른 거지요.

껍질도 겉이기는 하지만 알맹이와 비슷해 보이는 면이 많지요. 그러나 얄팍합니다.

아무튼 껍데기든 껍질이든 알맹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은 맞는 말이지요?

알맹이를 담기 위해 껍데기도 필요하기는 하지만,

새는 날기 위해서 알을 깨고 나와야 하며

프라이를 해도 껍데기는 깨져야 먹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오늘  아이들에게 사람에게 있어서 껍데기라고 할 만한 것이 무엇일까 하고 물었습니다.

아이들은 빠르게 껍데기들을 늘어놓습니다.

옷, 직장, 대학, 가문의 영광, 자동차, 거짓, 돈, 공주병 등등... 까르륵 웃으며 참 많이도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다시 물었습니다. ‘너희들은 어떤 알맹이를 가지고 있지?’

아이들은 오랫동안 대답 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대답을 들을 필요는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오랫동안 대답하지 못했던 알맹이에 대해서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삶의 껍데기와 한평생을 싸우며 알맹이를 찾아 나서게 될 것입니다.


L


 당신과 나의 껍데기는 무엇입니까. 당신과 나의 알맹이는 무엇입니까.

사람들의 시선과 명예와 자존심이 당신과 나의 껍데기는 아닌지요.

구도자인척하는 자세가 우리의 껍데기는 아닌지요. 선생이란 이름은 어떤가요.

사랑과 덕망은 눈가림이 되어 또 다른 신종 껍데기는 아닐까요?


나는 무섭습니다. 어느 날 나의 알맹이는 썩고 쭈그러진 채

겉모습만 단단한 껍데기처럼 덜렁덜렁 소리를 내게 되는 것은 아닌지요.

신은 누구의 편에 서있는가? 하고 껍데기를 묻는 동안

내가 지금  물어야 할 알맹이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L


창밖에 검은 바람이 부는군요.

껍질을 벗어야 하는 새벽의 발걸음이 무겁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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