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나는 나사에 미쳐 있었어
모든 공작기계, 자동차, 선박, 항공기 등은
수많은 부품으로 구성 조립되어 있고
이들을 조립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결합 요소가 사용되는데
이때 사용되는 나사를 생각해 봐
분해와 결합이 자유자재의 오묘한 나선,
그 앙증한 힘
수컷과 암컷의 외골수적 진행에 대한 나사의 체결력에 푹 빠져 있었지
나는 이름 외우기를 좋아했는데
미터나사, 미니츄어나사, 유니파이 나사,
미터 사다리꼴나사, 관용 테이퍼 나사, 사다리꼴나사,
관용 평행 나사, 자동차용 타이어 밸브 나사 등 특수용까지
아마 나사의 종류와 규격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 놀라게 될 거야
나사의 생명은 정밀도라고 할 수 있어
정밀도에 따라 등급이 표시되거든
나사의 작은 산들을 더듬으며 거대한 것들을 상상하곤 했는데
예를 들면 우주선과 잠수함을 그려보고
수많은 나사 구멍들을 생각해 봤지
그러다가 내 갈비뼈에 어느 한 점으로 꼭 박혀 있는
나사 하나쯤 있지 않을까
상상하기도 했어
나사 하나 풀어내면 이내 쉽게 무너져 내려서 곧게 걷지도 못할
어느 한 점
한 획, 볼트와 너트의 단단한 조임 말이야
온전함이며 믿음이며 희망이었을
정밀한 내공에 의심을 불어넣고 싶지 않았지,
지금 나는 마당에서 녹슨 나사못 하나를 주워 들었어
어느 자리에서 퉁겨 나왔는지
날렵한 나사산은 마모가 되고 고단한 머리가 일그러져 있었지
그러나 아직도 왼쪽으로 왼쪽으로 몸을 뒤척이는
왼나사 그대로 있잖아
죽어도 변하지 않을 왼나사이거든
아무 데나 박았다가 뽑아내는 못들과는 족보가 다르지,
사랑을 하려거든 나사처럼 해 봐,
볼트가 너트를 만날 때 깊이를 생각해 봐
비로소 완성이 되는 빨간 스포츠카를 생각해 봐
멋지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