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리 2>
<시골빈집>
정보지에 박힌 깨알 같은 글자가 한눈에 들어왔다. 일용직 사무실에 있는 우대리에게 정보지에 나온 마을이 어딘지 물었다.
“아지매, 여긴 낙동강 건너, 산을 넘어서 가야 하는 깡촌이라예. 시골 빈집이라카는 것도 가보면 사람이 살 데는 아닐 거라예.”
한참 지도를 보던 그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벌써 시골빈집으로 가고 있었다. 일이 없는 일요일 반나절을 빈집만 생각했다.
“비어있는 시골집이래.”
사십만에게 말했다. 폐가라도 상관없어. 그 말은 하려다 삼켰다. 햇살이 따뜻하게 사십만 안으로 스며들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마지막으로 본 텅 빈 공장이 떠올랐다. 함께 일하던 직원들은 각자 자리를 잘 찾아갔을까. 퐁샤의 손가락은 제대로 움직이게 되었을까. 손과장은…… 여전히 괜찮을까.
남쪽으로 내려오기 전, S금융 대출을 담당했던 손과장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는 내가 했는데 침묵 끝에 손과장이 먼저 말했다. “어디를 가든 죽지만 마세요. 살아있으면 다 해결됩니다.” 나는 목이 메어 뭐라 대꾸할 수 없었다. "전 괜찮습니다. 고작해야 시말서 정도입니다." 손과장은 정말 괜찮은 것처럼 말했다.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나는 작게 흐느끼다 전화를 끊었다. 7월 들어 비가 연일 거세게 내렸다.
생각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너 차례 내 뺨을 내가 쳤다. 동아줄을 내 목에 걸어주는 이가 없어서 나는 외로웠다.
시동을 걸었다.
“사십만, 곡리로 가자.”
내려올 때는 볼 수 없던 낙동강의 풍경이 눈부시게 다가왔다. 잠시 사십만을 도로 옆에 세우고 강가에 펼쳐진 하얀 모래톱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강허리 맞은편에 미루나무들이 평화롭게 줄지어 있었고, 오후로 접어든 온화한 햇살이 강물 위를 걸어오는 듯했다. 예감이 좋았다.
곡리 표지석은 있지만, 마을은 보이지 않았다. 산을 따라 좁은 시멘트 길이 이어져 있을 뿐이었다. 길을 따라 조금 걷자 오래된 느티나무가 나타났다. 느티나무 아래 정자가 있었고 정자에 앉아있는 사람이 보였다. 사십만을 멀리 세워놓고 천천히 정자로 걸어갔다.
“안녕하세요?”
모자를 안 쓴 노인은 대답 대신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정보지를 꺼내 커다랗게 동그라미 친 부분을 보여주었다.
“여기에 실린 이 집을 찾아왔어요.”
진정성이 넘치는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대 왔능교?”
다소 편안한 목소리로 모자 쓴 노인이 물었다.
“이 마을에 빈집이 있다고 해서 찾아왔어요. 여기가 곡리 맞아요?”
정보지에는 마을 이름까지만 있고 자세한 주소는 적혀있지 않았다. 전화번호가 있었지만, 국제전화번호였다. 전화번호가 잘못 기재된 것이라 생각하고 직접 찾아온 것이다.
“여가 곡리지 곡리가 어대 딴 곳에 있능가?”
모자 안 쓴 노인은 괜스레 인상을 쓰며 가래를 모아 땅에 뱉었다. 나는 놀라 한걸음 물러섰다.
“저어, 곡리에 빈집이 있다고 해서 찾아왔어요.”
다시 한번 천천히 말했다.
“와?”
모자 안 쓴 노인이 무섭게 되받아쳤다. 도무지 대화가 이어지지 않고 되돌아 원점으로 갔다.
“집이 비어있으면 제가 살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요.”
"시골집은 사서 뭐할라고?"
“사려는 것이 아니고요, 그냥 지낼 수……”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더는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노인의 반응을 보면 설사 빈집이 있다고 해도 이 동네에서 지내기는 만만치 않아 보였다. 멀리 서 있는 사십만을 돌아보았다. 사십만은 산그늘 밑에서 한가로워 보였다. 동네가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사실 동네만 본다면 나도 마음에 들었다. 쑥부쟁이 꽃만 바라보다 해가 저물어도 참 좋겠다 싶은 곳이었다.
“제가 찾던 곳이 아닌가 봐요. 고맙습니다.”
나는 인사를 꾸벅하고 무겁게 돌아섰다. 바람이 불어 시멘트 먼지가 훅 올라왔다. 조금 전까지 집이 생기면 산자락에 피어있는 들국화를 마당에 옮겨심고, 지천으로 널려있는 돌을 모아 담을 쌓아도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부풀었던 기대가 꺼진 탓인지 신발까지 삐꺽거려 발목이 아팠다.
“새댁!”
노인이 뒤에서 소리쳤다. 나를 부르는 소리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새댁이라니.
“샥시!”
이번엔 색시라고 소리쳤다. 색시는 더욱 아니지만 무심결에 돌아보았다. 모자 쓴 노인이 나를 향해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모자 안 쓴 노인도 빨리 오라고 거칠게 손을 내저었다. 내키지않았지만 다시 정자로 갔다. 발목이 시큰거렸다.
“읍에 있는 향다방 샥시 맞나?”
모자 안 쓴 노인이 다짜고짜 물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향다방이라니.
“아이라니께. 행님도 참.”
모자 쓴 노인이 모자 안 쓴 노인을 타박했다. 모자 안 쓴 노인은 계속해서 내 얼굴을 뚫어져라 보았다.
“당최, 젊은것들은 모두 비슷해가지고.”
모자 안 쓴 노인은 못마땅한 듯 혀를 찼다.
“저는 마산에서 왔어요.”
볼멘소리로 대꾸했다.
“마산 다방?”
이번에는 울컥하여 입을 꾹 다물었다. 또 무슨 소리가 나올까 싶어 빨리 도망가고 싶을 뿐이었다. 사십만이 쏜살같이 달려와 나를 태우고 날아가 주면 좋으련만. 모자 안 쓴 노인은 계속해서 “남지댁이 벼르고 있으니 조심혀”라며 빈정거렸다.
“아이라니까. 행님! 여기 새댁은 거기 샥시가 아이라니까!”
모자 쓴 노인이 벌떡 일어서며 소리치는 바람에 모자 안 쓴 노인이 팽하니 돌아앉았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슬그머니 돌아서려는데, 모자 쓴 노인이 뭔가 생각난 듯 말을 꺼냈다.
“대숲집이 빈집이여.”
“대숲집이 비었지.”
모자 안 쓴 노인이 떨떠름하게 맞장구를 쳤다.
“거거 살던 할매가 죽고 아들은 미국에 살어.”
"이장이 신문에 그 집 내놨다 카더라. 미국서 전화 왔다 안 하드나."
"가볼껴?"
모자 쓴 노인이 앞장을 섰다. 두 노인이 주고받는 말을 종합해 보면 내가 찾던 집이 맞는 것 같았다. 나는 엉겁결에 따라나섰다. 길 오른쪽으로 벼들이 짙은 금빛으로 누웠고, 왼쪽으로 메밀꽃이 간들거리고 있었다. 대숲집. 이름부터 좋았다.
마을 입구 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