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음식으로 전하는

by 쵯수진

17년 전에도 지금 성격 그대로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은 가장 긴장된 만남이 있던 날이다.

짧은 연애를 하면서 결혼에 대한 확신이 생기고 양가 어른들께 인사드리는 날은 잡혔다. 3남 1녀의 늦둥이 막내인 신랑인지라 다른 형제들은 진작 결혼들 하셔서 조카가 된 아이들 중 막내 조카가 나와는 14살 차이가 난다. 그런 막둥이가 드디어 사귀는 사람을 데려와 인사를 한다니 그날 나는 특급 연예인 버금가는 관심의 대상이었다.

나는 한 곳에서 이사 없이 모든 유년을 보냈다. 시골 읍내에서 자랐으나 엄마, 아빠는 세련된 분이셨다. 엄마는 손님을 초대하면 제일 아끼던 일제 그릇을 세트로 꺼내시고 푸짐하지만 넘치지 않게 세팅을 하셨다. 그렇게 난 엄마의 상차림이 익숙했다.

하지만 시댁의 상차림은 너무 달랐다. 우리 어머님의 음식 철학은 늘 넘치게다. 푸짐 그 이상이다. 국그릇, 밥그릇은 친정의 1.5배 크기다. 그런 철학이 있으신 분이 귀한 막둥이가 여자 친구를 데리고 온다니 얼마나 융숭한 대접을 해 주시고 싶으셨을까. 상 위 내 자리에는 가장 푸짐하게 푸신 국과 밥이 올라와 있었다. 갖가지 나물과 구이 요리, 고기 요리 등 상다리가 잘 버티는 게 용할 정도로 푸짐했고 나의 젓가락이 멈추는 곳에 우리 어머님의 눈길도 멈췄다. " 얘야 많이 먹어라. 얘야 맛은 별로 쟈? 야갸 이건 잘 안 좋아하는구나. " 한 젓가락 한 젓가락 그렇게 유심히 보신 것이다. 연세가 많으신 우리 어머니에게 먹는다라는 것은 단순히 식사 그 이상의 의미인 것이다. 그때도 지금도.

그날, 어머님의 음식 중에서 내 젓가락이 유독 많이 가던 반찬이 있었다. 미나리와 도라지를 넣고 새빨갛게 무쳐주신 새콤 달콤한 홍어회 무침이었다. 친정 엄마도 요리 솜씨가 좋아서 안 먹어 본 맛이 없었는데 이 홍어회만큼은 엄마표 무침의 열 배는 맛이 났다. 자꾸만 젓가락이 무침으로 가니 " 야가 회가 맛나나 보다. 큰 애야 더 갖다 줘봐라. 얘야 이게 맛나냐". " 예, 너무 맛있어요."

그날 사실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그 새빨간 홍어회와 내 옆에 앉아서 계속 :"맛나냐,맛나냐:;를 연발하시던 어머님의 모습이다.

그렇게 인사드리고 자연스레 좋은 날을 잡아 결혼하고 지금까지 어머님은 여전히 식구들이 모이는 날이 되면 그 홍어회만큼은 직접 하신다. 17년이 지나고 어머님은 나이가 드시면서 손맛도 입맛도 많이 변하셨다. 그래서 요즘의 홍어회는 어머님이 무치시긴 하지만 큰 형님이 몰래 수정하신다.

하지만, 어머님의 음식 철학은 변하지 않았다. 늘 밥은 먹고 다니냐의 밥심과 나가 멀리 사는 자식들은 잘 못 먹고살 것 같은 불안이 있으시다. 바삐 살다 보니 공식적인 명절과 생신 때만 뵙게 되고 어머니의 철학은 택배사가 담당하게 되었고, 우리가 내려가 찾아뵙는 것보다

택배 상자에 담겨서 올라오는 횟수가 3배 이상은 될 것 같다. 막둥이 사랑 넘치시는 어머님의 모든 음식은 아들을 위한 음식이다. " 어머님, 택배 잘 받았어요. 이번에도 뭘 이렇게 많이 보내셨어요." " 애비 잘 먹고는 다니냐? 먹을게 읍지? 애비 줘라잉" 늘 이렇게 말씀하시고 통화는 끝난다. 물론 음식 중에 한 번도 홍어회 무침이 빠진 적은 거의 없다. 그리고 통화의 내용도 변함없다. 음식은 늘 애비를 위한 것이었다.

또한, 내 섭섭함도 변함없었다. 늘 애비 챙겨줘라라는 말만 남기시고 뚝 끊어 버리시는 전화도 변함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던 그날의 홍어 무침은 그날 끝나버린 기분이었다. 그러다 올해 문득 어쩌면 홍어 무침만큼은 나를 위한 어머님의 음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머님께 섭섭한 감정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신기하게도 그리 마음먹고 다음 택배가 도착하고 감사 인사 전화를 드렸다. " 어머님 잘 먹겠습니다." " 그래라, 그리고 홍어 맛나냐? 너 먹으라고 한 건데 맛나냐?" 결혼하고 처음 듣는 말이었다. 홍어회는 너를 위한 음식이란다는 말을. 그리고 생각해 보니 늘 홍어회 간은 나에게 보라 하셨다. 다 무치시고 제일 통통한 홍어에 미나리를 양념 묻은 손으로 야무지게 집으셔셔 꼭 내 입에 넣어 주시며 " 다냐? 초는 더 안 넣어도 되냐?" 하셨다.

17년 동안 새빨간 홍어무침은 막내며느리를 위한 어머님의 음식이었던 거 같다.

내일 코로나로 못 뵈고 오랜만에 시댁에 내려간다. 내일도 어머님은 홍어를 무치시려나? 사실 이제는 힘들게 음식 안 하셨으면 하는 마음이 제일 크다.

17년 동안 나를 위해 무쳐 주신 홍어회는 그동안 첫맛과는 조금 달라졌지만 늘 마지막의 홍어회가 제일 맛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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