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머리

by 쵯수진

날이 더워질수록 더위를 타는 나에게 헤어스타일의 변화란 있기 힘들다. 어중간하게 길기 시작한 머리라면 다닥다닥 핀을 꽂아서라도 묶어야 만한다. 다행히 머리는 여유 있게 자라서 고무줄만으로도 쪽진 머리는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뜨거워지는 5월부터 내내 머리를 묶고만 다닐 생각을 하니 멋 좀 부려보고 싶은 마음이 나를 단골 미용실 의자에 찐 자줏빛 가운으로 목을 조이며 동그란 얼굴이 동동 뜬 채로 앉아있게 하였다.

원장님께 사진 한 장을 보여드리며

"이런 머리로 해 주세요. 계속 묶고만 다니려니 너무 지겨워요."

원장님 하시는 말씀이 여기는 학부모님들이 많아서 무난한 스타일을 즐겨하는데 수진 씨는 파격을 즐긴 다면서 쿠킹 포일 여섯 장을 자르시며 즐겁게 준비하신다.

"수진 씨! 앞머리 쪽은 탈색하고 뒷 머리랑 위 쪽은 어떻게 할까요?"

"뒤쪽이랑 위쪽은 브리지 몇 가닥씩 넣어주세요!"

이렇게 작업은 시작되었다. 나름 파격은 파격인 것이 요리저리 많은 스타일에 도전은 해 보았으나 탈색을 하면서까지 스타일의 변화를 준 적은 처음이다.

1차 탈색 후 색이 덜 빠져 2차 탈색을 거치니 기존 염색한 부분도 있고 머리카락 상태에 따라 탈색된 정도가 다르긴 하였으나 그만으로도 엄청난 파격이기에 더 이상의 색 빼기는 포기하였다.

원장님이 정성스레 만들어 주신 스타일링 받고 집에 가는 길, 새로운 모습에 들뜨기도 하지만 이제부터는 나의 파격을 반겨 줄 자와 그렇지 못할 자들을 대면해야 하는 넘어야 할 산이 존재한다.

일단 하교 후, 집에 먼저 도착해 있는 딸의 반응이다. 이미 며칠 전 통보를 해 놔서 그리 놀라지 않을 것은 알고 있었으나 의외로 너무 좋아한다. 그 이상으로 자기도 당장 하고 싶다며 부러워한다. 더해서, 이런 머리를 누구의 제약도 받지 않고 할 수 있는 엄마의 자유로운 위치에 대한 부러움이다.

이젠, 남편의 반응이다. 역시 퇴근 시간은 늦을 것이고, 미리 떡 밥 하나 던진다.

<깨똑> 여보 늦어요?

<깨똑> 그럴 거 같은데, 무슨 일 있어?

<깨똑> 놀라지 말아요.

- 사진 첨부 -

<깨똑> ㅋ

ㅋㅋ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하다. 남편의 반응은 <아놔, 아놔..> 뭐 이런, 즉 환영하지는 아니한다는 뜻이다. 예상한 반응이다. 퇴근 후, 나를 보고 태연한 척 애쓰지만 그의 작은 눈 빛에는 당황스러움이 가득 담겼다. 남편은 나의 남다른 파격을 조금 버거워하는 것도 사실이다.

탈색 후 바로 카톡 프로필 사진을 수정하고 싶었으나 고향에서 조용하게 살고 계시는 부모님 놀라실까 참고 있었다. 저번 고향 방문 때 일부러 거꾸로 입고 간 셔츠를 보시고 내 등짝에 살짝 압력을 가하시며

"옷 좀 평범하게 입지 그러냐. 시댁 갈 때는 오늘처럼 입고 다님 안 된다" 엄마는 한 마디를 하셨다.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르릉>

-아빠!! 별일 없으시지? 어디 아프신 데는 없고?

-응, 없지! 너도 별일 없지?

-잉, 나도 별 일은 없는데 아빠, 엄마 놀라지 말라고 전화는 드렸어.

-왜, 왜, 무슨 일 있어?

-나, 머리 노오랗게 했어. 혹시 카톡 보내시다가 사진 보시고 놀라지 말라고.

-에엥? 이잉? 얼라.머리를 노랗게 했다고?

-잉, 곧 오십인데 그때는 더 못 할거 같어서, 엄마는 옆에 있어?

-그랴, 바꿔줄게 ( 머리 노랗게 하고 놀래지 말라고 전화했댜 - 다 들리게 소곤거리시며 엄마를 바꿔준다.)

-여보세요, 머리를 노랗게 했다고? 얌전하게 다니라니까

-더 늙기 전에 한 번 해 봤어

에휴를 반복하시면서도 더 늙기 전에 한 번 해봤다니까 막 웃으시며 늙기 전에 해 보고 싶은 거 다 해 보라신다.

이렇게 엄마, 아빠까지 안심시켜드린 후 나는 프로필 사진을 수정했다. 그랬더니 이제 올케에게 연락이 왔다.

-어머, 언니, 제니예요?

-응, 최제니, 옥죄니, 수지니다!!!

-어머, 언니, ( 한 참을 웃더니 ) 저도 해 보고 싶은데

-율이 엄마야,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허락해 주시려나?

-그쵸, 언니, 참 인자하신 분들인데 노랑머리는 허락 안 하시 것 주?

-잉, 나도 다음 내려갈 땐 깜장 머리로 하고 오래.

-실제로 보고 싶은데.....


<놀면 뭐하니>에 출연한 리헤이가 영감을 주고 더운 날씨가 행동하게 하여 만들어진 나의 스타일에 제니냐는 소리까지 듣고도 여전히 파격을 원하는 나는 언제까지 자유롭고 싶은 걸까? 그럼에도 파격에 따라오는 부모님의 잔소리는 여전하다니 내가 못 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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