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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아 Feb 20. 2019

[임신일기 #5] 6주차 - 입덧 시작

고기쟁이가 고기 냄새만 맡아도 죽을 것 같다니!

임신 후 몸의 변화 1



나는 비위가 강한 편이다. 생선, 굴, 해조류, 갑각류 등 조금만 잘못 조리해도 비린내가 나는 음식도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고기? 고기 냄새를 왜 그렇게 제거하려고 애를 쓰지? 고기 냄새가 나 줘야 진짜 고기지! 냄새가 풀풀 나도 아무렇지 않게 잘 먹었다. 그에 반해 신랑은 냄새에 민감하다. 비린 냄새가 조금만 심하면 잘 먹지 못한다. 요리하느라 온 집안에 냄새가 풍기면 종종 두통에 시달리곤 한다. 굴국밥, 꼼장어, 회 이런 것은 나와 연애를 한 이후부터 맛을 알아가는 중이라 했다.


먹덧이 뭐야?

공복시에 속이 울렁거리다가 속이 채워지고나면 좀 나아지는 입덧. 


일반적인 입덧은 온라인 상에서 '토덧'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음식 냄새만 맡아도 속이 울렁거려 잘 먹지 못하고 심지어 물조차 잘 마시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심한 경우 자주 토악질을 한다고 토덧이라는 별칭이 붙은 듯하다.


입덧의 원인

출처 : https://ko.wikipedia.org/wiki/%EC%9E%85%EB%8D%A7




2018.12.17


6주차에 접어들고 나서 냄새에 민감해졌다. 그리고 배가 조금만 고파도 속이 울렁울렁.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이 것이 바로 먹덧이란다. 그런데 내게는 먹덧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배가 고프면 울렁거리고 어지러우니 먹덧이 맞는데, 뭔가를 먹으려고 음식을 하면 냄새 때문에 구역질이 난다. 순대가 먹고 싶어 샀는데 살 때만 해도 좋던 냄새가 집에 와서 까니 우엑. 심지어 치약 냄새도 싫어. 온갖 자극적인 냄새가 다 싫어서 입맛도 없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고프면 울렁거리고 또 구역질이 나니 뭔가 먹기는 먹어야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떤 날은 입덧이 언제 있었냐는 듯 아무렇지 않을 때도 있다. 이 때가 뭔가 신나게 먹어 재끼는 날이다.


임신 확정 진단을 받은 날부터 엽산을 먹기 시작했는데, 이 엽산이 입덧 증상을 악화시키기도 한다고. 엽산이 빨리 체내에 흡수되면 울렁거리는 증상이 없다고 하는데, 내 경우에는 저녁을 먹고 엽산을 먹으면 속이 많이 울렁거렸다. 그래서 아침 먹고 바로 엽산을 먹었다. 아침에 먹는 것을 잊어버려서 점심 먹고 난 후에 엽산을 먹은 날은 조금 울렁 거림이 있었다. 아침에 엽산을 먹는 것이 훨씬 몸이 가뿐했다. 낮 시간에 활동을 하다보니 뭔가 몸에 빨리 흡수되는 것 같은 느낌? 


맵고 단 음식이 많이 당긴다. 새콤하고 시원한 음식도 당긴다. 비빔국수, 동치미 국수, 냉면 이런 것들. 주로 새콤 달콤한 음식을 만들어서 먹으며 입덧을 견뎠다. 그리고 왜 인지 이 겨울에 수박이 당겼다. 결국 집 앞 마트에 가서 비싼 수박을 한 덩이 사오고 말았다. 

겨울 하우스 수박. 당도 선별 수박이라고 했으나 수박인 척 하고 있을 뿐.. 맛은 조금 단 오이


수박이 수박 맛이 아니라 단 오이 맛이었기에, 이후부터는 냉장고에 오이를 쟁여두었다. 시원한 수박 맛이 당기면 오이를 썰어서 와구와구 먹었다.



고기쟁이에게 찾아온 시련


어느 날은 고기가 너무 당겨서 삼겹살과 항정살을 잔뜩 사서 집에서 구웠다. 둘이 배부르게 먹자며 한 4~500g 정도 구웠으려나. 다 굽고 먹으려고 자리에 앉았는데 냄새 때문에 먹지를 못하겠는 것이다. 원래 먹던 양에 반도 못 먹은 것 같다. 그리고는 그 고기 냄새 때문에 한 3일을 두통으로 고생했다. 환기를 시켜도 겨울이라 바람이 시원치 않아 공기 순환이 잘 되지 않았던 탓도 있지만, 이 놈의 코가 어찌나 민감해졌는지 그 탓이 가장 컸다. 냄새 때문에 두통이 이렇게 심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처음 느끼고 난 후, 더 이상 고기를 사지 않았다. 괜찮아 질 때까지 고기는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코에서 생선구이와 알탕 냄새가 솔솔 나는 듯 하여, 집 근처 생선구이 집에 갔다. 평소 좋아하던 고등어 구이와 알탕을 시켜 신나게 먹었다. "오! 자기야, 나 입덧 괜찮아 졌나봐!" 신나하며 집으로 돌아왔는데, 왠 걸. 몸 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고등어가 살아 숨쉬는 듯 강한 비린내가 치고 올라왔다. 냄새 때문에 정신이 혼미하고 두통이 시작되었다. 결국.. 고등어 덕분에 장렬히 전사한 나는 하루 종일 드러누워있었다. 


엄마 - "뭐 해?"
나 - "드러 누워있어."
엄마 - "왜? 어디 아파?"
나 - "고등어 구이 먹었더니 비려서 죽을 것 같아."
엄마 - "입덧하면서 고등어를 왜 먹었어. 제일 냄새 심한 생선을."


엄마는 역시 다 알고 있다. 어쩐지 엄마 집에 가서 먹는 음식은 입덧 중에도 다 맛있게 잘 먹었다. 엄마가 입덧하는 내가 잘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골라서 해준 것이었구나. 눈물. 8주차 쯤 되었을 때는 달걀후라이 냄새도 맡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아침에 달걀 후라이나 스크램블을 해서 빵에 척척 얹어 먹곤 했는데, 달걀도 바이바이다. 



귤아, 도대체 뭘 먹어야 만족하겠니. 엄마가 뭘 좀 먹어야 너도 살지!



입덧은 호르몬이나 소화기관, 영양 상태가 원인이라고 밝힌 연구들이 있는데 각 산모가 겪는 입덧의 정확한 원인은 잘 파악되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이는 모체에 새로운 생명이 안전하게 자리잡기 위해 생기는 것이라고 한다. 태아는 임신 초기 3개월 동안이 발달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데, 아직 태반이 완전하게 형성되지 않아서 외부의 물질들을 걸러내는 능력이 부족한 시기이기 때문에 엄마가 먹는 것을 주의하라고 입덧 증상이 생긴 것이라고. 어떤 이는 모체가 태아를 공격 대상으로 보고 방어하느라 생긴 증상이라고도 한다. 


대략 10주 정도가 지나니 입덧 증상이 완화되었다. 양념된 상태라면 고기도 먹을 수 있었고, 생선 구이도 집에서 먹지만 않으면 먹을 수 있었다. 입덧은 통상적으로 6주 정도에 시작해서 12주 정도에 끝난다고 한다. 나는 딱 13주차 접어들 때 쯤 입덧이 멈췄다. 신기하다, 인체의 신비. 임신 했는지 잘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입덧으로 인해 우리 아이가 내 몸에서 자라고 있음을 확실히 느꼈던 기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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