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 과업을 이루지 못했을 때의 후유증
속도는 달라도 방향만 같으면 된다니까.
에릭슨의 인생 전반에 걸친 자아의 발달을 배웠을 때, 개인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다고 배웠어도 '그렇지, 속도는 달라도 방향만 같으면 된다니까.'라고 생각했었다.
20대 대학을 입학하고, 50대에 대학 편입과 대학원을 입학하고 졸업하면서 난 내가 왜 계속 놓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나이가 들었어도 마음이 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뒤돌아 생각해보니 젊은 것이 아니고 나는 20세에 멈춰 있었던 것이다. 대학을 진학하고 배움을 계속했어야 하는데 대학 불합격한 후 그냥 거기서 직장으로 방향 턴!했던 나였다. 이후 대학 낙방에 대한 좌절감을 가진 고졸의 스무 살의 마음으로 30, 40, 50대를 살아왔다. 그때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을] 읽으며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때는 일상생활도 나이와 상관없이 현실적인 생활방식이 서툴고 어설픈 생각, 성숙하지 못했다. 그런데 50대가 되어 상담을 공부하고 자기분석을 하면서 내가 늘 어설프고, 침착하지 못했고, 불안했던 정신연령이 20세에 멈춰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처음 시도하는 것이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야가 넓지 않아 대처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맏이로서 내가 모든 걸 처음 겪어야 했기에 더욱 서툴렀던 게 아닐까.
실패는 없고 학습만 있다.
TV에서 어느 교수님이 처음 늙어보니까 모르는 게 너무 많고, 서툴고 당황스럽다고 한 것에 공감이 됐다. 에릭슨의 발달이론 8단계에서 통합성 vs 절망감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인생의 마지막에 통합성을 느낄 것이냐, 절망감을 느낄 것이냐. 통합성은 모든 인생을 통합해서 봤을 때 자신의 삶을 생산적이고 가치있게 받아들여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고 절망감은 통합에 실패했을 때 즉,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희망을 잃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나는 이제 통합성에 가까워지려 한다. 나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고 자신의 삶을 생산적이고 가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조금씩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살아있으니까 한 잔하는 거지
오늘 새벽 일찍 정신 차리고자 찐한 커피 한 잔을 하는데 교육평가, 결과에 신경 쓰면서 살아온 지난 10여 년이 아스라이 떠오르며 지난 시간들이 지나간다. 요즘의 나는 지금 이 나이에도 뭔가 시작하려고 한다. 발달과업 이루지 못한 그 후유증일지 모르겠다. 나의 먼 훗날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요즘은 마음이 가볍다. 내 인생의 끝은 어떨까~ 20대 혹은 30대에서 대학 진학을 꿈꾸고 있는 남녀들이 있으면 지금 시작했으면 권유하고 싶다. 20대 후반 뒤늦게 가려고 한 대학 면접 시 교수는 왜 이 나이에 대학을 오려 하느냐 물었다. 나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지금이 제일 빠른 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