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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재 Oct 06. 2020

'청춘'이 행복하길 바라는 나는 <꼰대>

<꼰대>는 사전적인 의미, 학생들의 은어로‘선생’을 이르는 말이다. 자신이 싫어하는 어른들에게 사용, 대개 선생님들, 상사에게 많이 사용, <꼰대>라는 단어는 본래 아버지, 주부, 교사 등 나이가 많은 남성분을 가리키면서 학생들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 최근 직장 상사나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좋지 않은 사고방식을 강요할 때 <꼰대>라는 단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교직에 있지는 않지만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고, 주부고, 아버지는 아니지만 엄마다. 젊은 사람에게는 <꼰대>라고 하지 않는다. 사고방식이 <꼰대>같다고 한다. 딸이 예전 직장 다닐 때, 중국에 회사 일 때문에 갔는데 파견근무하시는 상사가 ‘꼰대’인데 '대접을 너무 잘 해주더라고 고맙더라'라고 했다. 그때 내가 한 말이 ‘꼰대’가 더 대접 잘해’ 너는  ‘꼰대’가 안 될 줄 아니~~? 


내가 생각하는 <꼰대>는 앞, 뒤 생각이 꽉 막힌 사람을 의미하는 것 같다. 융통성이 없는 사람, 그러나 요즘 사람들이 꼰대라면 비웃는, 비난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아 언짢다. '라떼'라는 말로 많이 희석이 된 <꼰대>다.


요즘 젊은이들은 <워라밸>을 부르짖는다. 사는 의미가 ‘저녁이 있는 삶’이어야 살아있는 느낌을 갖는가!. 퇴근 후 집에 가서 회사에서 지친 몸으로 쉬기만 하는 것으로는 만족을 느낄 수는 없겠지. . 꼭 일찍 끝나 '저녁'이 있어야만 하는가.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에 대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래도 '행복'해하지는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


<라떼>인 나는  다행히 는 야근을 하면 150%를 받을 수 있고, 주말에 근무하면 200% 주는 곳에 근무를  했었다 (실험실). 지금은 일주일에 52시간 근무를 초과하면 안 되는 세상이니, 그 시절을 상상하기가 어려울수있다. 야근해도 초과수당을 안 주는 회사도 있었고, 전태일 열사가 생겨났던 불행했던 시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워라밸>을 해도 행복한 얼굴이 아닌 젊은이들을 보면 속상하다. 불평만 있고, 효율적으로 시간을 쓰면서도, 자유로우면서도 왜 행복하지 않을까. ('워라밸'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은  제외)


감사가 없다. 불평, 비난, 불만이 너무 많다. '불만은 불행의 시작이고, 감사는 행복의 시작이다'.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는 청춘들이 마치 그 불행을 다 꼰대들이 준 것 같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꼰대인 나의 ‘자격지심’인가. 고된 시집살이했던 시어머니 같은 마음인지 모르겠다.

 

행복한 젊은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가장 아름다운 청춘일 때. 꾸미지 않고 화장하지 않아도 이쁠 때, 표정이 밝으면 얼마나 주위 사람이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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