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은 어디에나 있다. 1006
공자는 ‘세 사람이 글을 가면 그중 한 명은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고 했다. 살아가면서 스승인 줄 모르고 그냥 지나친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욕심이 많아지면, 앞만 보게 되고, 나만 보게 되고 그 범위는 내 시선이 갈 수 있는 범위로 줄어든다.
한동안 내 스승? 은 책 속에만 있었다. ‘책을 많이 봤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보다 더 가깝게 지냈다는 의미다. TV 속에서 보이는 좋은 것들은 눈에서 멀어지면 같이 사라져버렸다. 좋은 말도, 좋은 풍경도 다 순간에서 순간으로 사라졌다.
최근 10년에 내게 영향을 크게 끼친 분은 47년생으로 64세에 대학원에 입학하여 69세에 은퇴하신 분이다. 대학원 동기로 만나 지금까지 보여준 삶은 ‘빈틈없는 열정적 삶’라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대학원 박사과정은 남편분이 원서를 대신 제출하였는데 탈락 후 그때 공부를 계속하지 못한 것에 대해 감사한다.
이미 노인 관련 기관 근무, 건강가정 지원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시면서 대학원 진학하셨다. 졸업 후 노인 상담기관에서 근무하셨는데 기관이 없어지면서 타의에 의한 은퇴가 되셨다. 남편분이 연세가 드셔서 더 이상 상담 일은 그만해야겠다. 이제 남은 시간을 ‘남편과 같이 있어야겠다’면서 과감하게 중단하셨다. 나 같으면 늦은 나이에 공부를 다시 시작했으면 활동할 수 있을 때까지 할 터인데, 과감하게 접는 것에 나도 ‘나 중심이 아닌 가족’을 돌아볼 기회가 되었다.
‘나를 사랑하라’는 말로 ‘나 중심으로 되어가는 사회’에 나에게 사랑을 주었던 남편에게 ‘더 이상 혼자 있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 가슴에 남았다. 내가 남편을 다시 돌아 보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흰머리, 쭈글해진 피부, 소심해진 성격, 남자도 살림해야 한다는 딸들의 말에 따라가기 버거워하는 남편이~
그리고 최근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이 10여 명(20~70대) 정도 된다. ‘노인이 한 명 죽으면 도서관이 하나 사라진다’(아프리카 속담) 가 아니더라도 그들이 써내는 글에 ‘삶이 도서관이 되는 것’을 보고 놀랐다.
20대의 삶에서 30~40대가 느껴지고, 오히려 30~50대가 결정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것이 오히려 생각이 많아져서인가 멈칫 머뭇거리는 것이 새로웠다.
20대는 감정에 솔직할 수 있는 것인가. 나이 들수록 감춰지는 것이 많아 내가 나를 모르게 되는 것인가. 모두가 분야별로 스승이었고 그들의 삶은 내가 살아온 20~50대가 아니었다. 너무 달라진 세상이었다. 70대는 내가 살아보지 않은 길이었고.
쌀쌀해진 날씨에 움츠러드는 몸처럼, 겸손해지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