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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재 Jun 22. 2024

< 이처럼 사소한 것들> 읽고

‘ 클레어 키건 소설 에 내가 붙인 [존재의 이유와 용기]’


‘10월에 나무가 누레지고,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돌렸고 11월의 바람이 나무를 벌거벗겼다.’

책 첫 줄에 성큼 다가온 단어는 부드러운 듯하나 느낌은 쎄하게 느껴지는 것이 책 전반의 흐름을 암시해준다.

펄롱은 덩치 크고 뚱뚱한 산타를 보고 겁먹은 듯 울음을 터뜨리는 딸이, 다른 아이들이 반기는 것을 겁내는 자기 아이를 보고, 마음 아파하고 용감하게 세상에 맞서 살아갈 수 있을까?     

 

펄롱은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이 자기를 두고 어떤 말을 하는지, 뭐라고 부르는지를 생각했고 그런 취급을 받는 이유가 자신의 근본인 아버지에 대해 모르기 때문이라고 숙제로 품고 살아왔다. 맞춤법 대회에서 1등을 하고 부상 받았을 때 미세스 윌슨에게 받은 ‘칭찬’이 자기도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어 살아가는 버팀목이 되었으리라!     


외국으로 입양된 사람들이 부모가 누구인지를 찾기 위해 한국에 온다. ‘버림받았다’는 서러움보다 자기가 누구인지 더 궁금하며, ‘존재의 의미’가 더 크다. 자신이 살인자의 피가 흐른다던가, 부모가 사형수였다던가 하는 사연이,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를 꾸며 내는 것이 아닌, 있을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현실이 더 잔인하기도 상상 불허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거기 있는 애들은 세상에 돌봐줄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그런 거야’

‘이렇게 고요한데 왜 평화로운 느낌이 들지 않는 걸까’

‘텅 빈 식탁에 앉은 아이를 작은 카디건 아래에서 젖이 새서 블라우스에 얼룩이 지는 채로 내버려 두고 나와 위선자처럼 미사를 보러 갔다는 사실 ’   

  

그 당시 16세에 ‘펄렁’을 낳은 엄마는 미세스 윌슨이 없었다면, 그 아이같이 자신의 아기가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 없게 되는, 엄마의 상황과 겹쳐져서 끈을 놓지 못한다. 아버지의 존재!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펄롱이 가장 궁금했던 아버지의 존재가 '닮아서 친척이구나'로 전해지는 그 순간! 거울로 ‘네드’의 모습을 자기 얼굴에서 찾아본다.  

    

헛껍데기 같이 허한 마음은 ‘나도 아버지 존재가 가까이에서 바라보고 지켜보고 있었구나’라는 확신이 서면서, 불편한 마음의 근원을 느꼈을 것이다.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는 펄롱을 보며 부모의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아내와 다섯 딸 들이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도 있는, 무언가 맞닥뜨릴 것이 분명한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이 치솟아도 펄롱은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을 택했다.  

     

‘이 길은 어디든 자네가 원하는 데로 갈 수 있다네’

‘선택에 대한 책임을 혼자 감당하는 것은 아닐 텐데 무모하게도 느껴진다. 회피인가. 난!    

 

‘발전하는 것 같지 않은 나날 속에서, 시간은 아무리 흘러도 느려지질 않는다’는 펄롱은

각자에게 나날의 기회가 주어지고 지나가면 돌이킬 수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을 정리한다.


내 일이 아닌 타인의 일에 발을 담근다는 것,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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