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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재 Jul 15. 2021

'예스맨' 으로 살만한 나이

'괜찮습니다' 살아보니.

내가 '예스맨'으로 처음부터 산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열정적이셨던 분이니 나도 열정이 많았을 것이고, 엄마 또한 눈 반짝이던 분이셨으니 내 눈 또한 반짝였을 것이다. 


그러나 첫 시련이었던 중학교 입학시험에서 낙방을 하고 재수를 하면서, 나는 비 내리는 길을 우산 받고 걸으면서 최희준의 '하숙생'을 소리 내어 크게 부르며 빗소리를 이용할 줄도 알았다.


중학교 1학년 때 첫인상이, 지금도 친구인 TI가, 비 내리는 창밖을 보며 내가 '하숙생'을 흥얼거리기에 불량학생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때가 사춘기 시작이었겠지. 그 후로도 나는 오랫동안 '하숙생'을 불렀다. 특히 비 오는 날 빗소리에 내 목소리가 안 들릴 줄 알고. '꿩이 숨을 때 머리만 박는다나. 머리만 숨기면 안 들킬 줄 알고' 나도 그랬다. 비가 쏟아질수록.


한 번의 시련이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면서 나는 '예스맨'으로 되어가고 이제는 우수한? 예스맨으로 눈동자는 빛나지 않고 그러나 예전의 12년 개근으로 다져진 성실함과 책임감으로 버텨내고 있다.


눈을 반짝이고 떠봤자 예전의 내 모습은 겉과 속이 다 바래고 없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도 남아있지 않다. 

보고 싶은 사람도 없고, 좋은 사람도 없고, 미운 사람도 없고, 다시 가보고 싶은 장소의 주인공들은 지금 어디서 살고 있는지 연락 안 한 지 오래고...


20대 초중반 회사 다닐 때에 후배 4명과 함께 남이섬을 갔었다. 그 당시 남이섬은 1970년대니, 겨울연가가 없었던 시절, 사람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지만 아름답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역까지 걸어 나오면서 다리가 아프면서도 서로 호호 거리며 얼마나 밝게 웃었는지 지금 내 뇌리에는 그 웃는 싱그러운 얼굴만 남아있다. 

(남이섬 수목 식재 개시가 1965년이란다.)


오늘 상담사 등록을 위해 생년월일을 알려 달라고 전화가 왔다. 나도 깜짝 놀랄 나의 나이가' 이렇게 종이가 아닌 소리로 전달될 때 나는 지은 죄 없이 움칫하게 된다. 세월 간 게 내 탓인가 싶기도. 


80세 넘으신 교수님이 '처음 늙어보니 .....'라는 말을 10년 가까이하시더니 '안병욱 교수님'을 세미나에서 만나고 너무 반가워하셨다. 이제 100세가 넘으신 교수님을 뵈면 몇 년 전 그 모습이 떠오른다. 


세월에 겸손해진 게 아니라, 기력이 떨어져 저절로 숙여지고, 구부러지는 게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 버렸다

'괜찮습니다' 살아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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