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과 칭찬이 필요해
결혼한 친구 집에 퇴근 후 놀러 갔더니 친구의 시어머니가 계셨다. 당시 내 나이 32세. 친구 시어머니께서 ‘결혼했냐’고 물어보시더니 ‘안 했다’고 하니까 밑도 끝도 없이 ‘결혼 안 하면 여자는 당구장의 공처럼 이놈 저놈이 건드린다’고 하시는데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그 덕분인지 그해 말에 결혼했다.
2년 후 딸이 생기고 그 딸이 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로서 얼마나 마음이 설레고 딸에 대한 기대가 컸는지 모른다. 학교에서 <동화 구연대회>를 하는데 딸이 ‘백설공주’를 준비했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 ‘백설공주’는 너무 쉬워서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을 것 같아 ‘소공녀’를 추천하고 연습을 시켰다. 내용이 좀 복잡하고 외우는데 서툴렀다. 발표하는 날 집에서 기대하고 기다렸는데 딸의 표정이 안 좋다. ‘하다가 중간에 기억이 안 나서 그만두고 내려왔다’는 것이다. 그때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 엄마인 내가 우겨서 완성할 수 있는 것을 도중하차하게 만든 것이다. 나 자신의 욕심이 딸의 ‘성취감’을 망가뜨린 것이다. 그때 미안함은 평생 간다. 그리고 나는 이제 딸의 뜻을 존중해 주리라. 그러나 크고 작은 나의 관여는 계속되었고 이제는 즉시 거부로 나타난다. 인정과 칭찬을 많이 해주지 못하고, 잘하는 것은 당연하고 못한 것은 더 비난했던 것을 그때는 몰랐다.
우리 어머니 세대 때는 자식이 이뻐도 어른들 앞에서 자식 이쁜 것을 표현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식들이 커서 엄마는 ‘왜 우리를 사랑하지 않았나요, 이뻐하지 않았나요’ 하면서 자신이 자랄 때 부모 사랑 못 받고 자라서, 자신이 지금 이렇게 눈치 보며 살고, 대인관계가 잘못되었다고 그래서 직장 생활이 어렵고 가정생활도 원만하지 않다고 원망을 한다.
작은 딸 친구들 엄마 중에 자신의 딸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으로 대놓고 칭찬을 많이 하는 게 너무 어색하고 인정할 수가 없었다. 특히 초등학교 때는 촌티도 나고, 키도 덜 크고 자신이 갖고 있는 잠재력과 세월의 흐름에 따른 본인의 노력이 다 나타나지 않을 때인데 그렇게 자랑을 했다. 나도 같이 질세라 자랑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상대방이 기가 죽을 것 같아 맞받아 자랑하기가 겸연쩍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경필 대회>가 있었는데 당시 그 딸 친구네 집에서 차 한잔하고 있었는데 딸이 큰 소리로 <경필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고 자랑을 하는 것이다. 마음은 ‘아이고! 잘했다’ 하고 싶었지만 ‘어~그래’ 하고 딸을 눈치 보듯이 데리고 나왔다. 그 후 작은 딸은 두고두고 엄마는 “왜 나를 칭찬 안 해 줘” 하며 섭섭함을 표시했다. 왜 그랬을까. 당시 딸의 외모도, 키도 여러모로 뛰어났다고 생각한 교만함이 상까지 받아왔다고 하니 괜히 혼자 미안했던 것이다. 사람들이 ‘제 자식은 다 천재인 줄 안다’는 말이 나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이게 살면서 마음속에 남아있는 미안함이다. 잘했을때 마음껏 칭찬해주지 못한것.
‘어머니 세대와 우리 세대는 다르다’라고 생각한 것이 우리 세대는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을 잘 표현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랑 표현이 아닌 ‘자녀를 나의 자랑거리’로 생각하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이게 벌써 35년 전이다. 지금 30대 엄마들은 어떨까. 너무나 반짝이고 똑똑한 엄마들이다. 나의 둔탁해지고 느린 행동과 비교되는 그들의 언행을 보면서 나는 당시 어떠했지? 마음과 행동이 다르게 표현되는 것은 엄마 세대와 같았고, 딱 부러지는 지금 세대의 엄마들처럼 나도 딱 부러지게 행동했겠지? 아니 그렇게 행동하려고 애썼을 것 같다.
30대인 두 딸들을 보면 나보고 꼰대라고 하는데 그들도 슬슬 20대에게 꼰대 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다. 아니라고 하고 싶겠지만.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 것 같은데 짝이 있었으면 좋겠다. 서로 소중히 생각하고 잘 어울려 지내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춥기 전에 나타나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