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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재 Feb 23. 2022

인연 (因緣)

같이 늙어 가는 중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서로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이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우화의 강/마종기) 

    

대학입시 면접 때 교수가 ‘이 나이에 무엇하러 대학 왔나?’ 당시 29세. 질문에 당황했지만 ‘지금이 가장 젊은 나이라서요’ 교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대학입시를 위해 고등학교 졸업 후 10년이 된 선, 후배들이 체력장 시험을 위해 짧은 체육복을 입고 시험장에서 만났다. 그중에 처음 만난 두 명이 40년 된 지금도 연(緣)을 이어왔다. 참석하고도 기본점수밖에 못 받아 1년 뒤 다시 체력장 시험을 봤으나 1점밖에 못 높였으니 체육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후배(1년 먼저 학교 입학)를 만나 추천받은 곳이 교회 영어 성경반. 영문과였기에 ‘영어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리라’하는 마음에 갔는데 영어예배는 너무 어려워 앉았다가 오는 정도였고 예배 후 조별로 영어 성경을 읽고 돌아가며 해석하는 것은 재미있었다.  미리 예습을 해서 가야 하는데 못해가는 경우는 옆 사람의 도움을 받아 해석을 하곤 했다. 그때 단어를 알려주며 도움 주었던 사람이 지금의 남편이다. 지방 건설현장에서 전날 올라와 예배 참석하고, 조별 모임 끝나고 다시 지방으로 갔다. 몇 달 지나서 근무하던 회사로 찾아와 점심 사달라며 와서 영어성경책(NIV)을 주고 갔다.  

    

그 후 일주일마다 올라와서 점심식사를 후배랑 셋이 명동에서 섞어찌개를 먹고, 남산도 가며 지냈는데 후배가 '좋은 사람 같다'고 하니까 마음이 동요되었다. 후배가 교회로 인도하고, 영어 성경반에서 남편을 만나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훗날 딸이 ‘영어 성경반’에 갈까 하는데 어떠냐고 물어서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당시는 인연을 만날까 봐 두려워서였는데 그때 갔더라면 영어를 잘하는 딸이 되어있지 않았을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새해 들어 후배가 수요예배 같이 가자고 연락이 와서 예배에 참석하니, 지난 40여 년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머리 허연 남자분들이 드문드문 앉아계시는데, 예전 나도 늙으면 부부가 같이 예배드려야지 하던 게 떠올라서 마음이 울컥해진다. 

     

맛이 예전과 달라진 명동칼국수를 먹고 오면서, 세월에 겉이 바래진 서로의 얼굴을 보니 열심히 살아온 흔적에 마음은 짠하지만 풍요로왔던 추억에 마음이 훈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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