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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이맘 Aug 18. 2020

여행 (하나)


 지난 주말 우리 세 식구는 강원도로 여행을 떠났다. 요즘 같은 시국에 굳이 여행을 떠날 필요가 있을까 싶긴 하지만, 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우리는 몹시 '여행'이 고팠다. 집 안에서만 지내던 생활을 끝내고 별이는 유치원을 다니고 나도 동네 친구들과 커피 수다를 자주 즐겼지만 여행에 대한 그리움은 갈수록 커져갔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그렇게 여행을 자주 떠나는 사람들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행이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기도 한 것이었다, 누구나처럼.


 처음에는 얼마 전에 다녀왔다는 절친의 강력한 추천으로 바다 앞에 놓인 한 카라반을 꼬옥 가야겠다고 결심했었다. 사진 속 어여쁜 자매는 참으로 다정하고  행복해 보였고, 진정한 힐링을 느끼고 돌아왔다는 친구의 추천처럼 그곳에 가면 우리 세 식구 모두 행복해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인기가 많은 곳이어서 그런지 이미 가능한 날짜가 많지 않았고 그마저도 별이 아빠가 바쁘다고 한 주 평일에만 겨우 자리가 있었다. 또한 별이 유치원에서 타 지역 여행 시 일주일 간의 격리를 부탁한다는 공지가 자주 온 터라 별이의 방학 기간을 맞춰 일주일의 격리 기간까지 고려한다면 가능한 날짜는 더욱 없었다. 최대한 조심하고 예방하여 혹시나 발생할지 모르는 코로나 확산을 방지하자는 유치원의 취지를 충분히 이해하였고 동참하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휴가 계획은 8월 말쯤으로 윤곽을 잡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8월 말은 성질 급한 나에게 너무 먼 시간이었다. 나는 바다가 지나치게 보고 싶었다. 확 트인 그곳을 가기만 하면 그동안 겹겹이 쌓여 있는 내 모든 고통과 답답함이 한 번에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것은 아마도 매일같이 직장을 나가고 똑같은 업무를 보고 나의 잔소리에 좋아하는 친구들을 못 만나는 별이 아빠에게 더 간절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여름이면 크던 작던 물놀이를 즐겼던 7살 별이에게는 유난히 덥고 속상한 여름이기도 했을 것이다. 우리 셋(사실은 나)은 이대로 시간을 기다릴 수가 없었다. 새벽에 잠이 깬 나는 강원도 내 카라반을 검색하였고 바다 바로 앞의 카라반은 아니었지만 차로 3~4분 거리에 위치에 있는 후기가 좋고 이제 갓 숙소로 제공되기 시작한 따끈따끈한 카라반을 극성수기 주말에 결국 예약하였다. 여행 이후 쉬지도 못하고 일상을 복귀해야 할 신랑을 배려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우리의 예산을 훌쩍 넘는 숙박비용도, 4시간을 내리 달려야 겨우 도착하는 장거리 상황도 고려하지 않은 채, 나는 강원도, 바다, 카라반에 집착하여 숙소를 비교적 빠르게 찾았고 별이 아빠의 동의를 얻어 예약할 수 있었다. 주말 2일을 효율적으로 보내고자 새벽에 출발할 것 계획하고 있던 차에 신랑은 금요일 회사 리조트 예약을 할 수 있었고 금요일 반차를 사용하여 별이를 유치원에서 픽업한 후 바로 출발하는 것으로 우리의 계획은 조금씩 확장되고 구체화되었다. 바다를 보고 싶다는 나의 간절하지만 소소한 계획은 점점 원대해져 떠나기만 한다면 제대로 된 여름을 느낄 수만 있을 것 같았다.


 일기 예보상 비 소식이 계속되었지만 나는 당일까지도 크게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살짝 흐린 날씨가 더위에 유독 더 약한 별이와 별이 아빠가 바다 근처에서 놀기 더 좋을 것으로 생각되었고 비 오는 바닷가도 꽤 운치 있고 색다른 경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비가 적당히 왔을 때의 이야기였다. 여행 당일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는 비구름이 점점 걷혀가고 있었지만 강원도 쪽은 생각보다 강한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먹고 싶었던 물회와 편의점에서만 5만 원에 가까운 돈을 쓴 값비싼 저녁에도 기분 좋을 수 있었던 것은 설마 다음 날도 그렇게 폭우가 쏟아지리라 예상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여행 (둘)에 계속.


 여행 전 날 별이를 위해 서프라이즈(카라반)를 준비했다고 살짝  귀띔해주었다. 별이가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엄마 아빠는 별이를 위해 준비하였다고 우리의 마음을 슬며시 전하였다.

 별이는 항상 그랬듯이 캐리어에 본인의 물건을 잔뜩 챙기고는 절대 열어보지 말 것을 거듭 이야기하였다. 다음 날 별이의 패드를 넣기 위해 살짝 열어 본 캐리어에는 책이 들어있었지만 나는 모르는 척하였다, 별이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으므로. 

 첫 숙소로 온 날 별이는 엄마 아빠를 위한 서프라이즈라며 이 책들을 조심스레 꺼냈다.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엄마 아빠를 위해 좋아하는 책들을 가져왔다고... 눈물 날 만큼 기쁜 저녁이었다.

 별이는 줄곧 우리에게 기대 이상의 무언가를 주는 서프라이즈 같은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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