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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이맘 Aug 18. 2020

여행 (둘)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난 나와 별이는 대책 없이 쏟아지는 비에 우울해지는 마음을 다잡고 이것저것 열심히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소원하던 여행을 왔는데 숙소에서만 시간을 보낼 수도 없었고 우리의 다음 숙소는 3시 입실이라 시간이 남아도 너무 남았다. 별이는 곤충박물관을 가고 싶어 했지만 옛 블로그 글에서 검색되던 곤충박물관은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도 없었다. 또 별이는 크랩을 머리에 이고 있는 아이 사진을 보며 크랩 카페에 관심을 보였다가 크랩 밖에 없다는 사실에 곧 실망하기도 하였다.  


 물놀이를 하게 해주고 싶었던 별이 아빠는 워터파크를 원했지만 나는 마스크를 쓰고 입장할 수 있는 키즈카페를 조금 '더' 원했고 늘 그렇듯이 나의 의견대로 우리는 키즈카페를 가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집 근처에 이미 많이 있고 예전에는 참 많이 다녔지만 지금은 결코 가지 않았던 그 키즈카페를 '굳이' 이 곳에서 가게 되었다. 나와 별이는 키즈카페를 진심 자주 항상 다녔었다. '집 밖' 어딘가로 가고 싶었던 나와 그저 '놀고' 싶었던 별이의 욕구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그곳을 우린 '둘 다' 참 많이 좋아했었고 그리워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간 키즈카페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밝고 깔끔했으며, 별이 역시 오랜만의 카페 놀이에 찌푸린 미간 사이로 말없이 놀이에 집중하기도 하고 때로는 예전처럼 엄마 아빠와의 시간을 오롯이 즐기고 있었다. 그건 비단 별이 뿐이 아니었다. 집 근처에 있는 키즈카페를 가려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내가 행복해하는 별이를 보며 마음 한 켠 밀려오는 미안함과 씁쓸함을 애써 누르고 별이와의 시간에 몰입하였고 별이 아빠 역시 혼자 놀이하는 별이 곁에 본인 만의 시간을 오롯이 즐기기도 하였다. 마지막은 역시 집에서 즐겨하던 숨바꼭질이긴 하였지만, 그런대로 우리는 꽤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냈었다. 


 집 '밖'이어서 가능했던 나의 소심하고도 대담한 일탈은 심각하게 두려워한 처음보다 '곧' 익숙해졌고 '상당히' 즐거웠다. 이것이 여행의 목적이었나 싶을 정도로. 우리는 예상보다 지나치게 번잡한 인파 속에 별이를 동반한 첫 외식을 감행(?) 하기도 하였는데, 벌벌 떠는 나와 다르게 별이와 별이 아빠는 생각보다 느긋하였다. 하필 내가 고른 곳이 5층이 넘는 건물이라니. 난 그저 바다를 보고 커피를 마시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림을 그리면서도 걱정하는 내게 사람들 간의 거리가 충분하니 걱정할 것 없다는 별이의 대수롭지 않은 위로는 내게 결코 의미 없지 않았다.  별이가 아빠를 많이 닮아서 참 다행이다.


별이는 한참이나 분홍색 공을 평범하지 않은 몸짓으로 이리저리 몰고 다녔다. 본인이 '소똥구리'같다며 꽤 만족해하는 것이었다. 


비는 계속 쉬지 않고 내렸다. 1시간 반을 걸려 겨우 도착한 곳은 작지만 예쁜 시골집 앞이었다. 마당 한쪽에 덩그러니 놓인 카라반은 기대보다 아담했다. 특히 별이가 좋아하는 비밀공간이 있을 거라 미리 잔뜩 기대하게 만든 터라 난 슬슬 걱정이 되었다. 카라반 안을 둘러보아도 내가 착각한 공간은 어디에도 없었고(아마도 여러 카라반을 둘러보다 심각하게 착각한 모양이다.) 선장님(사장님 남편분이신)께서 요트 체험을 해주신다고 하셨지만 날씨마저 우리의 여행을 도와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라반 안에는 정성이 묻어나는 물건들로 깔끔하고 따뜻하게 채워져 있었다. 별이는 어디서든 본인이 원하는 것을 기필코 찾아내는 특유의 예리한 시력으로 수납장 아래 본인 만의 공간을 굳이 찾아내었고 손수 챙겨 온 물건들을 그 안에 정성스레 정리하였다.


 주고받은 이야기 속 이미 짐작되었던 카라반 사장님의 따뜻한 인품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감동스러웠다. 사장님은 우리는 물론이거니와 특별히 별이를 더 반가워하시며 정겹게 손을 잡고 닭 구경을 시켜주시겠다며 먼저 다가와주셨고 이제 갓 꺼낸 달걀 3알을 별이 편에 보내 주셨다. 비가 와 선장님(사장님 남편분이신) 작업실 한편에 마련해 주신 바베큐 자리에 텃밭에서 직접 가꾸신 채소들과 장아찌 반찬까지 인심 좋게 내어 주셨다. 근처 정육점에서 사 온 고기도 우리의 감탄을 자아내며 우리의 여행을 맛깔나게 만들어 주었다. 보기에도 좋아 보이는 참숯에 두꺼운 돼지고기와의 환상적인 조합은 사진으로는 표현되지 않을 감동 그 이상이었다.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별이만 그 시간을 지루하게 보내다가 미로 놀이로 버티는가 싶더니 결국 사장님께서 가져다주신 생선을 처음엔 마다하다 아주 맛있게 먹었다. 이 곳에 와서 한 것은 그저 카라반에 도착하여 저녁을 먹은 것뿐이었는데 이상하게만치 마음이 따뜻하고 편안했다. 카라반 안에서 별이는 유튜브를 보았고 나는 책을 읽었으며(별이가 준비한) 아빠는 티비를 보며 술잔을 기울였다. 우리는 늘 했었지만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을 '각자' 또 '함께' 하고 있었다. 그렇게 카라반 안에서의 평범한 우리의 밤은 '특별히' 더 깊어져 갔다.


여행 (셋)에 계속.


 카라반 앞에는 별이를 닮은 작고 귀여운 머루 포도 덩굴이  있었다. 카라반에서 엄마 아빠의 동선이 서로 얽히는 순간을  마주한 별이가 대단히 놀랍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여기선 누가 기다려야 하네." 그리고 사실이 그러했다. 별이의 생각처럼 좁은 카라반 안에서 지내기 위해선 우리는 느긋해져야 했고 기다림에 익숙해져야 했다. 우리가 여행을 할 때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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