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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전원, 막 하면 안 돼요

by 다이아

2025년 1월 1일(수)


2025년 신년이 밝았다.

아빠와 엄마가 내 새해를 응원해 주기 위해

3일 만에 병원에 재방문해 줬다.


익숙하게 병원을 탈출해

도란도란 맛있는 점심을 먹고

카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아빠와 함께했던 마지막 1월 1일

다신 돌아오질 않을

엄마, 아빠와 함께했던 새해...


돌이켜 생각해 보니

투병 자체는 당연히 힘들었지만

남편과는 오히려 더 단단해질 수 있었고

엄마와도 병상에서 여러 추억을 함께 쌓았다.


그리고 아빠가 하늘로 떠나기 전

이 몹쓸 병 덕분에 아빠에게 실컷 응석도 부리며

응원, 격려, 사랑을 듬뿍듬뿍 받을 수 있었다.


투병을 하며

인생 사 새옹지마임을

느끼고, 또 느끼게 된다.




다시금 1월 1일의 대화로 돌아가보면

그날 우리가 제일 중요하게 다룬 이슈는

'병원 전원(Transfer)'이었다.


내 신경과 주치의가 2월 말로 퇴사한다.

그리고 그녀는 E 대학병원에서

내 질환을 다루는 유일한 의사이다.

추후 인력 채용이 이루어지긴 하겠지만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이러한 공백이 부담스럽기도 했고

나와 같은 희귀 질환일수록

한 교수님한테만 의존하면 안 된다는

아빠의 견해에 따라

우리는 자연스럽게 신경과 전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대학병원에 입원해야 할 정도로 아픈 환자가

병원 및 주치의를 변경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은 행위인데

그 이유를 설명해 보겠다.


1)

전원 희망 병원에서 안 받아줄 수 있다.

대학병원급 의료기관에선

병원 사정 혹은 환자의 현재 상태에 따라

진료 거부를 하는 경우가 제법 흔하다


중대한 질병이 있는 환자를

다른 의료진이 이미 치료를 진행해 둔 상태인데

그 치료 내용을 페이퍼로 인수인계받고

환자의 그 후를 온전히 책임진다?!

의료진 입장에서도 부담일 수밖에 없다.



2)

그리고... 현재 담당 교수님이 기분 나쁠 수 있다.

유치하지만 이 표현이 정확하게 맞다.


주치의 변경 및 전원은

당신을 못 믿겠어! 다른 교수님을 만날 테야!

와 같은 이별선언이다.


전원 희망 했던 병원에서 차이고

변경 요청했던 주치의에게 다시 돌아간다?

이별 후 재결합만큼 껄끄러운 과정이다.



3)

환자의 건강이 여의치 않은 경우도 많다.

나의 케이스는 '임신 및 재활'이 중요 포인트였다.


특히 대학병원급 의료기관에서 장기 입원으로

재활을 받아주는 경우는 많지 않다.


여기서 퇴원하는 순간

퀄리티가 낮은 요양원스러운 재활병원으로 쫓겨나

도움이 안 되는 재활을 반복할까 두려웠다.


물론, 재활로 유명한 병원을 찾아

입원 신청을 할 수도 있겠지만

대기가 어마무시했고

도심 외곽에 위치해

E 대학병원 대비 편의성이 현저히 떨어졌다.




이러한 이유로 미뤄두었던 '신경과 전원'이

교수님의 퇴사로 어찌어찌 추진력을 얻었다.


2)는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고

보행 수준이 올라와 3)도 이전만큼 두렵진 않았다.


전원을 하겠다 결정을 하고 나니

절차 자체는 생각보다 매끄럽게 진행됐다.


1)

전원 하고 싶은 병원을 찾는다.

내 경우에는 인터넷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내 병은 희귀병의 일종으로

앓고 있는 인구수가 많지 않다.


다행히 환우들이 모여있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있었고

그곳에서 교수님들의 정보를 찾는데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내 질병에 대해 제일 잘 아는

1짱 K 센터 H교수님

2짱 S 대학병원 K교수님

두 분을 수소문해 둔다.


가족들과 논의 하에

1짱 교수님에게 예약 시도를 해보기로 한다.


S 대학병원이 국내 최고급 의료기관이긴 하지만

그만큼 예약이 힘들고

대기시간도 악명이 높아

추후 통원치료가 힘들 수 있을 것 같았다.



2)

전원 희망 병원에 진료예약을 한다.

사실 요즘과 같은 의료 대란 속에서는

이게 제일 난이도가 높다.


다행히 K센터 H교수님은

학자이자 연구자 느낌의 교수님으로

환자 표본 확대에 적극적인 편이셨다.


담당 간호사님께 전화로

내 질환, 증상 등을 설명하자

가장 빠른 날짜인(아마 취소분인)

2025년 1월 23일 오전 9시로 예약을 잡혔다.



3)

현재 병원에서 필요 서류를 뽑는다.

- 전원을 요청하는 현재 주치의의 '소견서'

- 내 병의 진행상태 등을 담은 '진료기록지'

- MRI 등 주요 검사에 대한 '검사결과지'


나의 경우에는 위 세 가지를 뽑았다.

얼마 안 될 것 같지만 진료기록지만 200장을 넘었다.



4)

E 대학병원과 재활 스케줄을 맞춘다.

나의 경우 재활은 E 대학병원에서 받고 싶었기에

담당 교수님께 청해 일정을 맞추었다.


2025년 1월 17일 : 퇴원

2025년 1월 23일 : K센터 신경과 진료(전원)

설날은 집에서 보내고

2025년 2월 3일 : E 대학병원 재활의학과 재입원


E 대학병원은 한 달 이상 입원이 불가능해

1월 17일 날 무조건 퇴원을 해야 했다.

그리고 여기 재활의학과는 외출 불가가 원칙이라

아예 설날까지 집에서 생활해보고

2월 3일에 재입원하기로 협의한다.


이런저런 협의의 과정을 거쳐

최종 일정을 확정하니

가슴이 벌렁벌렁하다.


아아! 이번에는 내 병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을까?

퇴원과 전원이 너무나도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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