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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에 누워 연말을 보내며

by 다이아

2024년 겨울엔 눈이 특히 많이 내렸던 것 같다.


병실에 누워

창문 밖으로

송이송이 내리는 눈을 바라보면

그 눈 속에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마주하면

복합적인 감정이 마음속 피어오른다.


눈을 헤치고 질척한 바닥을 걸어가는 게

얼마나 지치고 짜증 나는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지만

평범할 땐 전혀 소중하지 않던 일상이

아프고 나니 그 무엇보다도 값지게 다가온다.


지난 10월에 처음 입원할 때는

내가 연말까지 병상에 누워있으리라

상상도 못 했었는데

어느새 재활치료실엔

크리스마스 트리가 들어섰고

캐럴이 울리기 시작했다.


병원도 나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며

환자와 보호자들도 연말 감성을 타기 시작한다.


올해도 고생했고

내년에도 힘내자는 으쌰으쌰 기운과

연말이니까 쉬고 싶다는 나른함이

동시에 재활치료실을 감돈다.


그리고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번 연말은 어쩔 수 없이 병원에서 지내지만

설날에는 꼭 집에 돌아가서

일상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내가 연말연시를 병원에서 보내는 것을

우울해하지 않도록

주변에서 참 많이 도와줬다.


엄마, 아빠, 남편, 언니, 형부, 남동생 등

가족들은 물론

주변 친구, 회사동료, 지인들까지


수많은 도움의 손길을 받으며 종종 생각했다.

아, 내가 인생을 헛살진 않았구나!




2024년 12월 25일(수)


남편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케이크를 사 왔다.

이름하여 스초생!


남편과 나는

둘 다 물욕이 크게는 없기 때문에

생일을 제외한 기념일에는

딱히 선물을 주고받지 않았다.

크리스마스도 마찬가지다.


다만 우리는 이렇게 케이크 등으로

기분을 내는 것을 아주아주 좋아했다.


내가 병상에서

우울해하지 않도록

언제가 곁에서 나를 든든히 지원해 주는 남편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느낀다.


병실에 앉아서 케이크와 커피를 먹고

남편과 도란도란 떠들며

나름 괜찮은 연말이구나 생각한다.


아픔이 휩쓸고 간 이후

밤에 남편 몰래 참 많이 울었는데

이즈음부터 혼자 훌쩍이는 시간이

조금씩 줄어었던 것 같다.


이겨내지 못할 것 같았던 아픔들도

결국 시간에 깎여나가는구나...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구나...




2024년 12월 28일(토)


오늘은 엄마, 아빠와

도전적인 식당에 가보기로 했다.


병원 근처에 내가 너무 좋아하는

프랜차이즈 소갈비 집이 있었는데

하필 그 가게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단독 건물 2~3층에 위치해 있었다.


투병 후 힘들어하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아빠가 가끔씩 포장으로 사줬었는데

현장에서 구워 먹는 것 대비 맛이 아쉬웠다.


내가 지팡이를 짚고 걷는 시늉을 시작하자

아빠는 소갈비로 나를 유혹하기 시작했다.


"다이아! 갈빗집 예약하려면 더 힘내야지!"


아빠의 기대에 부응하고!

소갈비를 먹기 위해서!


나는 치료사쌤들께 특훈을 요청했고

운동치료 말미에 계단 타기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특훈은 약 1주일간 지속됐고

그리하여 오늘!

드디어 특훈의 성과를 보여줄 시간이다.


남편의 부축을 받아서

계단을 조심조심 올라 가게에 도착한다.

땀이 흠뻑 난다.


가게에서 내 거동을 보고

최단거리 동선에 자리를 배석해 준다.


고기를 지글지글 굽는다.

아빠도, 엄마도, 나도, 남편도

모두 소갈비를 든든히 먹으며

하하 호호 웃는다.


아! 그래도 많이 나아지고 있다!

기쁨이 벅차오른다.


든든하게 식사를 하고

이번에도 남편의 도움을 받아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간다.

다행히도 안전하게 병원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참, 맛있었다!

그날의 소갈비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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