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노먼의 디자인과 인간 심리
온라인 서비스 기획자로 5년여를 일했다. ‘사용자 중심의~’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산다. 결과는 빠듯한 일정과 내외부 클라이언트 중심의 기획서가 되지만 기획자로서 어떻게든 자존심을 지키려 나 자신을 위로하는 주문이다.
이 책은 내가 그동안 수없이 반복했던 ‘사용자 중심의~’라는 말이 얼마나 무책임했는가를 지적한다. 방문 통계 데이터를 통해 사용자가 많이 찾은 화면과 그렇지 않은 화면으로 디자인의 성패를 단정할 뿐 나의 의도와 메시지가 사용자에게 명확하게 전달되었는지, 사용자가 결과까지 얼마만큼의 실수를 반복했는지는 꼼꼼하게 따지지 못했다.
문을 열고 닫기 등 매일 수없이 행하는 동작과 흔하게 마주하는 일상을 통해 인간이 디자인과 얼마나 밀접되어 있는지를 디자이너에게 분명하게 가르친다. 심미적인 디자인이 아닌 행위, 기표, 개념으로써의 디자인을 말한다.
이 책을 읽고 이케아의 디자인이 많이 떠올랐다. 실제 집처럼 꾸며진 쇼룸에서 물건을 경험하고, DIY 제품을 별다른 공구도 필요 없이, 심지어 텍스트 없이 직관적인 라인 드로잉만 그려진 설명서로 멋진 가구를 만들 수 있는 것이 노먼이 말하는 잘 된 인간 중심 디자인에 가까워 보인다.
처음에는 어려운 말들과 낡은 스타일의 책에 흥미를 갖지 못했는데 출간된 지 20년이 넘은 이 책이 왜 지금도 의미가 있는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디자인 트렌드도 매해 바뀌지만 ‘인간’에게 ‘즐거운 경험’이라는 불가결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기획자로서 디자인은 나와 별개의 영역이라고 애써 구분했던 것에 반성하게 한다. 이 책이 좋은 기획자가 될 수 있도록 나를 디자인해주고 있다. 책을 꼼꼼하게 다시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