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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테나 Jan 09. 2017

조. 단역 배우들의 열연 <쓸쓸하고 찬란하神 도깨비>

베테랑 배우들의 내공의 힘

2017년 우리는 드라마 <도깨비>에 나오는 공유와 이동욱의 마술에 걸려 있다. 최근 드라마의 흐름상, 초반에는 공유의 아이러니한 사연에 가슴 아파했고, 이제는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운명에 걸려든 이동욱의 사연에 가슴 아파하며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는 중이다. 거기에 깜찍 발랄하면서도 따뜻한 연기를 하는 김고은과 자신의 색깔이 더해진 통통 튀는 유인나의 연기가 더해져, 드라마 속 배우들에 대한 애정이 그 어느 때 보다 높아져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은, 그들이 아니다.

물론, 드라마의 몰입도를 높이는 주연배우들의 연기 분석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나, 지금 여기서 하고 싶은 것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 뛰어난, 조단역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드라마 <도깨비>에는 유난히 많은 조단역 배우들이 나온다. 고려시대와 현대를 오가는 이야기 흐름과, 각각 인물 특징과 사연이 다양하게 설정되어 있어서 더욱  배우들의 출연이 많아진 듯하다. 그런데, <도깨비>는 그 어떤 드라마보다 조단역 배우들의 연기의 완성도가 높은 데다, 아역들까지 훌륭한 연기를 해 내면서 드라마가 시작되는 초반부터, 그 배우들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선 조연들부터 살펴보자!

드라마 <도깨비>의 시작이 어떤 인물에서 시작했는지 기억하는가?

 하얀 메밀꽃이 핀, 들판에 피 묻은 도깨비 칼이 꽂혀있고, 그 주위를 흰나비와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아름다운 장면 위로,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삼신할미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삼신할미의 반백의 머리카락을 비추며 기묘하게 늙은 삼신할미의 심각한 정면 얼굴로 연결된다.(난 할머니 머리카락에서 시작된 이 커트에 의미가 뭘까 조금 신경 쓰인다.) 그리고 알듯 말듯한 그 목소리... 분명 내가 아는 배우 같은데... 아! 누구지? 그리고 왜 젊은 배우를 할머니 분장을 해서 이 역할을 하게 했을까? 물론, 의혹은 드라마 중간에 풀렸다.

배우, 이엘이었다!

 빨간 정장을 위아래로 빼 입고, 붉은 입술로 육성재와 육교 위를 지나면서 변신하는 모습은 매우 강렬하게 삼신할머니의 매력을 돋보이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녀의 연기는 할머니 씬에서 더욱 빛나고 있다. 목소리 톤도 평상시 보다 두세 톤쯤 낮추어 할머니의 걸걸한 소리를 갖추고, 유난히 쪼글쪼글한 특수분장에, 반백의 머리, 걸을 때 약간씩 진동이 느껴지는 치머리 흔드는 모습과 팔자걸음이 영락없는 옛날 시골 할머니 모습이었다. 거기다 특수분장으로, 얼굴 표정 짓기가 매우 힘들었을 텐데도, 저승사자를 쫓을 때의 화내는 표정과 어린 은탁을 바라보는 측은해하는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는 눈빛 연기는 매우 따뜻했다.

배우의 연구와 노력이 빛을 발하는 캐릭터 연기였다.

내가 매우 좋아했던 드라마 <화이트 크리스마스/2011/KBS>에서 매우 독특한 이미지를 보여주었던 그녀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신인 때라, 연기가 무르익지 않았을 때였는데도, 존재감 만은 확실히 각인시켜주는 묘한 매력의 배우였다. 여기서 삼신할미로서 그녀가 갖는 존재감 또한 이러한 배우의 매력이 더해져서 더욱 강렬해지고 있다.


두 번째 눈에 띄는 조연은 이모 역할의 염혜란 배우다.

그녀는 얼마 전, <디어 마이 프렌즈/tvN/2016>에서  나문희 씨의 매 맞는 딸 순영 역할을 했던 배우이다. 이번에 알아보니, 연극계에서 상도 여러 번 수상하고, 영화 출연작도 8편이나 되는 베테랑 배우였다. 특히 이창동 감독의 <밀양>이나,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강제규 감독의 <장수 상회> 등 훌륭한 감독들과 작업한 이력들이 눈에 띈다. 아마도 그녀의 평범한 마스크에 탄탄한 연기력에 대한 소문이 영화계에서는 일찍부터 있었나 보다.

<도깨비>에서도 그녀의 소박한 악녀역은 빛을 발하고 있다. 어설프고, 욕심 많은 팥쥐 엄마 같은 이모 캐릭터를 무척 다양한 표정과 안정된 대사로 재미나게 소화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드라마에서 한 번 정도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싶은 데, 또 어떤 연기로 우리의 마음을 훔칠 씬스틸러가 될지 기대된다.


세 번째는 김비서 역할의 조우진 배우다!

많은 분들이 <도깨비>에서 김비서를 매우 인상 깊게 보셨을 것이다. 덕화를 따라다니며 전혀 기죽지 않고, 깐죽깐죽 할 말 다하는 김비서의 독특한 말투와 리듬감! 작가가 아무리 잘 써준 대사라 해도, 그것을 연기하는 배우가 소화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대사의 재미가 오롯이 살아 표현되기 힘들다. 작가가 리듬감 있게 써준 대사에 조우진이라는 배우의 개성이 더해져 독특한 캐릭터 하나가 만들어진 것이다. 힘 줄 때와 뺄 때를 알고, 진지한 표정과 행동에서 나오는 정확한 시선 처리의 묘미가 살아 있어 그의 등장이 새로운 기대감을 만든다.

마지막 화면 속 김비서의 눈물 고인 눈이 보이는가? 평상시에 덕화 군을 놀리던 김비서는 이날도 비슷한 듯, 아닌 듯 한 말투로 말한다. "덕화군! 같이 가셔야겠습니다. 옷은 준비했으니, 차 안에서 갈아입으시고요!"  "무슨 옷이요?"하고 이상하다는 듯이 묻는 덕화의 말에, 촉촉이 젖은 눈으로 말없이 서 있는 모습 만으로, 김비서 캐릭터에 꼭 맞는 정서를 담아내고 있다. 알고 보니, 드라마와 영화를 종횡무진하며 30여 편의 작품에 출연한 베테랑 배우였다. 이미지가 낯설어 누군가 싶었는데, 역시 하늘에서 뚝! 떨어진 배우란 없다! 그의 내공은 수십 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거치면서 다져진 탄탄한 것이었다. 아마도 <도깨비>는 그에게 조금 더 개성 있는 조연으로 발전하는 전환점이 되리라 생각한다. 조연으로서 이름을 알리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좀 더 크게 성장하리라 기대가 된다.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실제 성격이나 말투와 김비서의 매치되는 비율이 어느 정도 인지가 매우 궁금하다.


 네 번째는 고려 간신 역할의 김병철 배우다.

와우~ 11회의 충격적인 등장, 이어진 <도깨비> 12회의 주연은 단연, 그였다. 많은 기사가 쏟아져 나왔듯이 수많은 영화와 연극, 드라마를 거쳐온 그였지만, 이번만큼 강렬한 인상을 각인시킨 적은 없었다. 주로 웃음을 주는 캐릭터를 연기했던 그는, 나름 진지한 역할도 많이 해온 베테랑이다. 특히 머리 스타일에 따라 다양한 코믹매력을 발산했던 모습들이 간간히 떠오른다. 최근 작품인, <태양의 후예/KBS>에서 송중기에 상관이자 소심하게 전전긍긍하는 태백 부대 대대장 역할이 그랬고, <쇼핑왕 루이/MBC>에서 능력 없는 만년 과장 역할이 그런 코믹한 역할이었다. 상대적으로 소리의 역할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드라마에서는 아마도 얇은 목소리가 코믹한 캐릭터에 더 잘 어울렸던 것 같다.

그런데, <도깨비>에서는 완전 달랐다. 느릿느릿한 말투 속에 힘의 강약 조절이 살아 있고, 얇은 목소리이면서도, 오랜 연극 활동으로 다져진 복식 발성에 힘이 있어, 고려 회상씬에서 왕비를 독대해서 겁박하는 장면은 박중헌의 섬뜩함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조근조근한 말 투에서 성깔을 드러내며 "네 이년! 낳기는 선황이 낳았으나 내가 키워냈으니, 내가 여의 아버지가 아닐 것이 없다."라고 소리 지르는 장면은 일품이다. 움찔하는 어린 왕비에게 이를 갈듯이 꾹꾹 눌러하는 대사 톤과 분노에서 싸늘한 냉정을 되찾는 엷은 미소의 표정까지 씬 전체의 분위기를 압도적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현재, 도깨비의 칼날에도 없어지지 않는 악귀라, 앞으로 어떻게 사라지게 될지, 남아 있는 4부 동안 펼쳐질 그의 활약이 기대된다.


다섯 번째는 은탁 담임 역할의 김난희 배우다.

첫 등장에서부터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그 깐깐함이란... 경험하지 못했으나, 마치 기억 저편에 한 자락 경험을 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절대 만나고 싶지 않은 담임의 모습 딱! 그대로였다. 악역은 정말 나쁜 놈으로 느껴지게 하는 게 잘하는 것이고, 꼴도 보기 싫은 역할은 그 역할을 하는 배우가 꼴도 보기 싫게 하는 게, 가장 잘하는 것이니 그녀는 정말 연기를 잘했다. 학교생활에서 가장 싫은 선생님 유형인,  선입관에 가득 차, 자신에 이익을 위해서만 아이들을 예뻐하고, 차별하는 선생님 역할을 어찌 그리 잘 해 내는지, 목소리며, 표정 하나까지 어찌 그리 쫄깃하게 잘 표현하는지, 그 싫음에 전율이 일었다. 결정적으로, 11회에 있었던 졸업식 장면 눈물씬은 정말 압권이었다.

은탁의 졸업을 축하하러 온 빨간 옷에 삼신 미녀가, 사고무탁한 고아라고 은탁을 구박했던 담임에게 뚜벅뚜벅 다가가 이렇게 얘기한다! " 아가! 더 나은 스승일 순 없었니? 더 빛나는 스승일 순 없었어? " 이 말에 울음을 터뜨리는 담임! 너무나 서럽게, 가슴 아프게 우는 담임에 모습에서 우리는 시원한 감동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아마도 그동안 은탁에게 가해졌던 부당한 차별이, 삼신 미녀가 사람들 앞에, 담임의 실체를 속 시원하게 밝혀내서 깨달음의 벌을 주는 느낌을 받아서 일 것이다. 대부분의 기사는 삼신 미녀의 대사에 힘을 실어주고 있지만, 그 장면에서 느껴지는 카타르시스의 실체는 김난희라는 배우의 복받쳐 눈물 흘리는 에너지 때문이다. 아무리 삼신 미녀가 멋지게 대사를 하더라도 그 대사에 대한 반응, 즉 담임이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가슴 깊숙이 우러나는 죄스러운 깨달음을 표현해 내지 못했다면, 우리는 그런 진~한 여운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 대사를 살려내 우리 가슴에 심어준 배우는 그래서 이엘이 아니라 김난희 배우다!


또, 이 드라마에선 다양한 단역배우들의 연기도 매우 출중하다. 그중 기억에 남는 배우 형사 역을 하는 황인준 배우가 있다. 단역임에도 감정선의 흐름을 잡고, 호흡 조절과 내면연기를 한다.  또 11회 은탁이 죽을 뻔한, 고층 빌딩 비상구에서 부인 죽인 남편 역할의 이규형 배우는 시시각각 변하는 조명과 함께 오싹한 표정의 무서움을 그대로 전해주는 몰입을 선사한다. 또 아역배우들은 얼마나 깜찍하게 제 몫을 다 해주었는지... 은탁의 아역을 했던 한서진은 생일날 엄마의 죽음을 보며, 철철 눈물 흘리는 장면으로 시청자를 함께 울렸으며, 덕화의 어린 시절과 첫 가신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정지훈은 당돌한 역과, 속 깊은 애 늙은이 2가지 성격을 무리 없이 잘 소화했다.


이처럼 드라마 <도깨비>는 주연배우들 뿐 아니라 조단역들의 활약이 대단한 드라마이다. 솔직히 그들의 연기는, 잘 생긴 얼굴로 대사에 정서 전달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일일드라마의 어설픈 주연 급보다 훨씬 신뢰감을 준다.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로부터,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실제  일어나는 일인 것처럼 사실감을 부여해 주고, 믿음을 주는 것이 연기의 역할이라고 할 때, <도깨비> 속, 조. 단역 배우들은 수준 높은 연기로 이것을 완성해 내고 있다. 드라마 전체에서는 그들이 조연, 또는 단역이지만, 그 한 씬, 한 컷 안에서 그들은 분명, 주연이었다.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여준 수많은 조연 배우, 단역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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