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도깨비 연출과 기술 분석
<쓸쓸하고 찬란하神 도깨비> 첫 회를 보고 난 사람들의 감상평은 한마디로 "영화 같다!"였다. 기존의 드라마가 갖고 있던 현실 속 이야기라는 한계에서 벗어나, 웅장한 전쟁 씬이 빛나는, 사연 많은 고려시대와 너무나 핍박받는 현실을 대변하는 현재의 시간을 오가며, 신화적 해석코드까지 더해졌으니, 이국적인 것을 넘어, 이색적인 세계를, 아름답고 섬세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드라마 <도깨비>는 내러티브가 가진 매력도 강력하지만 아름다운 화면과 섬세한 연출, 다양한 사운드를 활용하는 기술적인 완성도가 더해지면서, 어마무시한 매력을 어필하고 있다.
가장 먼저 살펴볼 것은 전체적인 연출과 편집의 섬세함이다.
이미 <태양의 후예>의 성공으로 인정받고 있던 이응복 PD는 이 작품에서 섬세한 감정선과 재기 발랄한 대사에 어울리는 연출 기법으로 드라마 대본 속 인물의 성격과 정서를 120% 전달하는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연출의 힘이 돋보이는 장면 중 하나는, 술 취한 김신이 저승사자를 앞에 앉혀두고 문을 들락거리며 은탁이 어딨는지 찾으려 노력하는 장면이다. 3회에 나오는 이 장면은 자칫 지루하고 긴장감이 떨어질 수 있는 부분인데, 앞 씬의 LS(long shot)과 대비되는, MS(medium shot)과 CU(close up)의 빠른 화면과 강약 조절의 호흡으로 김신이 은탁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인상적으로 연출하고 있다. 그 앞 씬은 김신과 저승사자가 전생을 이야기하며 식탁 양쪽 끝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으로, 넓은 화각의 LS으로 전체 공간을 보여주고, 똑같은 화면에 빈 공간을 OL(over lap) 시켜 시간의 경과를 한 샷 안에서 길게 보여준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빠르고 다양한 컷들...
문을 여닫는 다양한 화면을, 1초 전후의 짧은 컷들로 점점 빠르게 편집해 가면서도, 조심럽게 문고리에 집중하는 김신의 신중함을 표현할 때는, 2초 이상 시간을 줌으로써 빠른 편집 속에서도 정서적 느낌을 포착해 내는 섬세함을 보인다. "그 아이 하나를 못 찾겠다! 내가 가진 게 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네..." 하며 문에 기대어 선채 실망하는 김신의 CU(close up) 샷은 꽤나 길게(약 10초) 줌으로써 씬 전체의 핵심 정서를 강조하고 있다.
이응복 PD는 장면의 지루함은 재기 발랄한 컷들로 극복해 내고, 드라마적 정서는 느낌 있게 살려내며, 작가가 의도한 씬의 핵심을 정확히 짚어 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편집은 장르 드라마에 강한 tvN 베테랑 편집자의 능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훌륭한 편집은 단연코 연출의 힘을 바탕으로 한다. 왜냐하면, 촬영 현장에서 어떤 화면을 어떤 사이즈의 샷으로 찍을지 결정하고, 인물이 어떤 동선을 가지고 어떤 속도로 움직여야 할지를 계획하고 만들어 내는 것은, 오로지 현장을 지휘하는 연출자의 선택에 달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편집자가 유려하고 속도감 있게 컷들을 붙이려 해도, 연출이 촬영해 놓지 않으면 컷 수가 부족할 수 있고, 샷 사이즈가 애매할 수 있으며, 인물 행동의 속도감이 맞지 않아, 컷을 이어 붙여도 편집의 효과를 살릴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오로지 연출자의 머리 속에 편집에 대한 감각과 계산이 있을 때, 그런 효과적인 장면을 찍어내고 편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드라마의 핵심 인물의 관계를 씬 배치를 통해 암시하는 편집도 극의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이제는 거의 밝혀졌지만, 저승사자와 써니가, 김신을 죽인 왕과, 화살을 맞고 죽어간 왕비라는 점을, 3회에서 이미 편집으로 알려주고 있다.
김신은 한 번 더 보고 싶은 은탁을 만나고 온 후, 먼 여행을 떠날 짐을 꾸리게 된다. 그리고 소중히 간직한 족자 하나를 손에 집어 든다. 그 뒤 바로 이어지는 장면이, 저승사자와 써니가 옥가락지로 만나게 되는 육교 씬이다. 써니의 얼굴로 마무리되는 육교 씬이 끝난 바로 다음 컷이, 김신 손에 펼쳐지는 족자 속 왕비의 얼굴이다. "멈추지 말고 폐하께 가세요! 장군!"이라고 말해주는 왕비를 회상하며 슬퍼하는 김신의 장면이 이어진다.
이는 씬 배치상, 김신이 소중히 간직해온 족자를 보며, 왕과 왕비와의 과거를 회상하는 씬 가운데를, 저승사자와 써니의 육교 씬이 비집고 들어간 구성이 된다. 써니가 왕비이고, 저승사자가 왕임을 연출적으로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재미 하나! 저승사자가 일할 때 입는 정장에는 왕관 장식이 달려있다) 또한 6회의 앞부분에 김신이 은탁에게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하며 검을 뽑아달라고 하는 눈물씬에서도, 고려를 회상하던 장면 중에, 저승사자와 써니가 만나는 현재의 카페 장면이 들어가며, 다시 한번 저승사자와 써니가 왕과 왕비라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두 번째로 살펴볼 것은, 드라마 미장센의 중심을 굳건히 만들어 주는 섬세한 촬영이다.
캐나다 화면의 아름다운 색감이나, 놀랄 만큼 자연스러운 CG도 멋지지만, 입체감을 살려내는 도깨비 집 공간의 미장센과 망원렌즈의 사용이 매우 특별하다. 특히, 드라마의 몰입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이, 주인공들의 정서적 대화 씬에서 보이는 망원렌즈의 사용이다. 망원렌즈를 사용하여 주인공의 얼굴과 표정에 포커스를 맞추고, 뒷 배경은 흐릿하게 보임으로써, 대화의 내용과 정서에 더욱 집중시키는 효과를 주고 있다. 거기에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이 더해져, 급격한 분위기 변화도 섬세하게 표현되면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정서적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망원렌즈는 표준렌즈에 비해 인물에서 조금 더 떨어져 촬영하기 때문에 배우의 연기 몰입도를 지켜주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다만, 촬영감독 입장에서는 힘든 것이, 인물이 조금만 움직이더라도 망원렌즈는 초점이 나가기 쉽기 때문에, 촬영 시 매우 민감하게 촬영해야 된다. 간혹, 주인공 얼굴에서도 오른쪽 얼굴엔 포커스가 맞지만, 왼쪽 얼굴에 포커스는 맞지 않는 현상이 가끔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망원렌즈 장면은 아래쪽 김신과 은탁의 눈물씬 장면 참고)
또, 이 드라마에선, 두 인물이 나란히 앉아 정면을 보고 이야기하는 샷이 많은 편인데, 자칫 평면적으로 보일 수 있는 화면을 조명과 각종 소품장식들로 미장센 구축에 신경을 쓰면서 배경의 깊이감을 주고, 정면이 아닌 측면 샷을 잡을 때 깊이감을 부각하는 카메라 앵글로 단조로운 느낌을 피하고 있다. 이는 촬영감독과 조명감독에게는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인데, 화면 구성을 아름답고, 입체감 있게 표현하기 위한 노력이라 할 수 있다.
또, 기존 드라마에서는 많이 사용하지 않는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아름다운 배경 속 주인공을 보여주는 ELS(extreme long shot) 촬영도 인상적이다. 최근 들어 대부분의 가정에 텔레비전 사이즈가 커지면서 종종 나타나는 샷으로, 거리두기 효과를 줄 수 있고, 빠른 컷과 씬 전개 사이에, 드라마적 호흡을 조율하며, 정서적 여운을 주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또한 적재적소에 사용되는, 현실과 괴리되는 느낌을 표현하는 Zoom in Track out 기법이나, 억눌리거나 무기력한 느낌을 주는 직부감의 샷들, 현재의 주인공이 생각하는 모습과 회상 속 인물을 한 화면에 길게 Dissolve 시키는 기법 들은 주로 영화에서 많이 사용되는 기술로, 화면 속 인물의 심리적 상황을 더욱 풍성하게 전달해 주고 있다.
Zoom in Track out : 카메라 이동으로 인물 사이즈는 같지만, 배경이 더 가까워지고 흐려지는 변화가 생김.
< 도깨비 >는 다른 드라마에 비해 감정선이 풍성하고, 슬픔과 유머를 오가는 정서의 변화가 한 씬에서 이루어질 정도로 급격해서, 그 변화무쌍한 흐름을 조절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다. 이러한 흐름을 섬세한 화면과 감각적인 편집, 유려한 사운드 기법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며 우리를 가상의 세계에 몰입시키고 있는 것이다.
섬세한 촬영 못지않게 드라마 몰입도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음악과 효과로 대변되는 사운드이다. 특히 <도깨비>의 싸운드 활용은 매우 눈여겨 볼만하다.
죽음을 결심한 김신이,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하며 검을 뽑아 달라고 은탁에게 부탁하는 6회 거실 장면은, 깊은 슬픔과 유머를 오가는 정서적으로 매우 어려운 씬이다. 이 씬을 중심으로 앞뒤의 씬들이 하나의 시퀜스를 이루는데, 전체적으로 침묵과 효과음, 음악을 이용한 사운드의 활용이 매우 훌륭하다.
스물아홉 살의 은탁을 보게 된 김신은 자신의 방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 미동도 않고 생각하는 김신의 모습 위에, 은탁이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뒤 힘없이 멀어져 가는 슬리퍼 소리가 들린다. 뭔가를 결심한 듯, 뒤늦게 일어서서 나가는 김신! 드라마는 소리와 인물의 표정, 움직이는 타이밍만으로 그의 결심이 얼마나 고민스러운가를 보여주고 있다.
또, 방문을 열고 나가 은탁을 바라보고 은탁에게 다가가는 장면은, 이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빠른 컷들과는 달리, 바라보는 시선 속에 침묵을 느끼게 해주는 다소 긴 길이감으로 편집되어져 있다. 또한, 복도를 돌아서 은탁 가까이 가는 동안 인물이 움직이는 시간을 그대로 살려, 말없이 다가가는 인물의 모습과 슬리퍼 소리만으로, 무슨 일이 생길까 궁금해하는 호기심과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침묵 또한 훌륭한 사운드의 역할이다)
주저하며 침묵하던 김신. "검좀 뽑아줘! 지금!"이라는 대사와 함께, 몽환적이고 슬픈 음악이 시작된다. 김신의 아이러니한 운명적 슬픔을 강조하는 음악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인물의 감정에 우리를 동화시킨다. 지난날의 무신이었던 자신의 삶을 회상하는 김신의 얼굴 표정에 더해지는, 높은 음의 피아노 소리 같은 효과음악은 고려시대 장면으로 자연스럽게 회상을 연결시켜 준다. "살아남기 바쁜 생이었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안간힘을 썼으나 죽음조차 명예롭지 못했다!"는 김신의 내레이션 같은 대사들 사이로, 칼에 베이는 효과음들이 날카롭고, 풍부한 울림으로 전해지고, 높은 음의 선율들은 긴 울림으로 여운을 남기며 흘러나온다. 김신의 비통한 과거 이야기가 더욱 아련하고 가슴 아프게 전해지는 장면이다. 감정이 고조될수록 음악의 사운드가 커지고, 은탁이 김신의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는, 영롱한 종소리 같은 고음으로, 은탁과 김신이 서로를 진심으로 연민하고, 순순한 마음의 소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름답게 표현해 내고 있다.
"그럼 이제 나 예뻐지게 해주면 안 될까? " 묻는 김신에게 반전의 대답을 하는 은탁. " 네! 그건 안 되겠어요!" 그 순간, 울림의 여운은 침묵이 되어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놀라는 김신의 얼굴과 둘이 서 있는 모습을 LS으로 빠져 보여줌으로써, 인물들에게 감정 이입했던 우리를, 조금은 감정에서 빠져나오게 한다. 뒤이어 진행되는 슬픈 음악 없는 은탁의 눈물씬, "저도 불쌍해봐서 아는데요, 자고로 불쌍할 땐, 동정보다는 뭔가 확실한 게 더 좋거든요!"하는 현실적 대사들이 아이러니한 웃음을 짓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 장면에 확실한 정서적 반전 포인트를 찍어 주는 뻐꾸기시계 소리! 코믹하거나 어이없는 장면에 나오는, '매~' 하는 염소 울음 같은 효과를 보여주며 확실한 웃음 포인트가 된다. 또, 보석 가득한 집을 돈으로 사서 사랑을 담아 달라는 은탁과 가버리라며 소리치는 김신의 티격태격 코믹 상황에 나오는 재미난 음악은 슬픔의 씬을 유머러스한 씬으로 완벽하게 반전시키고 있다. 이 음악은 다음 씬으로 연결되어 김신이 본 은탁의 미래 속 대표님을 질투하고 삐치는 코믹한 장면까지 연결된다.
<도깨비>에서 사운드의 활용은 이 밖에도 다양하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삼신할머니의 선행되는 목소리로 자연스럽게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장면을 연결한다든가, 순간적인 정서적 몰입 장면에서는 현실음을 없애버리고 음악만을 사용하여 몰입을 유도하는 전략도 자주 볼 수 있다. 또, 컷과 컷 사이, 씬과 씬 사이에서 소리의 선행은 장면의 흐름을 더욱 부드럽게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도깨비>는, 치밀하게 디자인된 사운드, 아름답고 섬세한 촬영, 감각적이고 빠른 편집,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조화롭게 이끌어 내는 연출력이 더해져, 이야기는 효과적으로, 인물의 정서는 강렬하게 표현되고 있다.
아무리 대본이 좋더라도, 우리가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시청각적 기술 발전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마 드라마를 조금 덜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드라마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드라마의 다양한 기술의 아름다움을 조금 더 깊이 있게 느껴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