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아 Sep 29. 2016

오늘은 내일의 디딤돌이다

오늘의 힘을 믿는다

                                                                                                           

  처음 해외유학생활을 시작한 해로부터 만 10년이 넘었다. 당시에는 하루하루 살아남느라 정신이 없어 내 생활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했지만 지금 돌아보니, 시간이 지나며 나도 성장해갔다. 3년간의 미국생활 초반엔 정말 힘들었고, 조금 지나니 힘들어도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었으며, 마지막은 힘들어도 문제없이 잘 살아갈 수 있었다. 누군가 뭐가 그렇게 힘들었냐고 물으면 기억에 강하게 남은 몇 가지 사건들만 말해줘도 금방 감정 이입이 된다. 아직도 가끔 그 곳에서 지내며 내가 겪은 감정이 생생하게 기억날 정도이다.
     
  얼마 전, 내 경험을 되짚어 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예전에 쓰던 내 다이어리가 생각났다. 말로 하지 못했던 일들을 써놓은 일기를 보면 그 당시 감정이 되살아난다. 영국에서 대학원 생활을 할 때도 힘든 시기에는 꼬박꼬박 일기를 쓰며 내 감정을 글로 풀어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보통 때는 잘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슬프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일기를 더 많이 썼다. 행복했던 순간도 글로 남겨두었으면 좋았을걸. 그러지 못해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오랜만에 펼친 그 다이어리는 중학교 3학년 유학을 준비하던 시절부터 써왔던 것이다. 가기 전에 준비하던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과 설렘이 담긴 이야기들, 친구들과 함께 한 즐거운 날들의 기록과 미국으로 넘어간 후의 이야기가 모두 담겨있다. 
  5~6년 만에 처음으로 들쳐본 내 다이어리 뒷부분은 고등학교 때 쓴 것이 맞나 싶어 고개를 갸우뚱 할 정도로 글씨가 삐뚤빼뚤 하다. 정말 억울하고 화난 상태에서 쓴 게 많아 그런가보다. 말투에서도 느껴지는 그 당시 나의 기분이 글씨체에도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내가 기억하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더 자세하게 다시 읽어보았다. 글만 보아도 그 당시의 복받치는 설움이 느껴진다. 어떻게 매일 매일이 화나고 답답한 일들뿐인지…. 내 기억 속의 일이나 사람들은 그 정도 까진 아니었는데 다이어리를 보니 신기하게도 나는 좋은 것만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 영어수업이 1학년에게 필수과목이었다. 그리고 2학년 때는 수업 외에 영어회화 시간을 채워야 하는 제도가 있었다. 제도의 특성상 영어로 말할 일이 많았는데, 그 때마다 친구들이 자주 했던 말은 “부럽다.”였다.

살다 와서 좋겠다회화는 엄청 쉽겠네부럽다.”
   
  처음에는 ‘너 영어 잘 하는구나’라는 말로 들렸기에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영어권 살다 왔으니 그 정돈 당연히 해야지?’라는 식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쉽게 얻었고 그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하루는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그 친구는 외국에서 살았던 경험은 없었지만 내가 들려준 이야기들을 절대 흘려듣지 않았고, 그래서 내 경험이 결코 쉽고 재밌지만은 않았다는 걸 알아주었다. 그 친구에게 “사람들이 ‘살다왔으니 영어는 잘 하겠네’라고 말하는 게 듣기 좋진 않다”고 말하자,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들은 네가 거기서 겪은걸 몰라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치열하게 버텼는지지금의 영어실력을 얻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노력해야 했는지그 과정이 어땠는지 몰라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나 네 실력이 과소평가 되는 건 아니야사람들은 모르기 때문에 쉽게 말을 하지만 나는 알아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네가 있는 거라는 걸언젠가는 꼭 그 덕을 볼 것이고 누군가는 그 진가를 알아 볼 거야.”
   
  친구는 항상 나에게 따뜻하고 현명한 대답을 해주었다. 그 후로 나는 내가 겪은 힘든 일들 보다는 그 경험들로부터 얻어낸 결과물에 더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우린 너무 쉽게 오늘의 소중함을 잊어버리기 쉽다. 일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고 뜻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을 때, 그 하루의 가치를 모르고 지나친다. 하지만 오늘 어떤 일이 있었든지, 오늘이라는 소중한 하루는 내일을 더 완성된 나로서 살아가는데 또 하나의 디딤돌이 된다.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순간이 쌓여 우리는 점점 더 강하고 현명한 사람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러니 어떤 일이 이었더라도 ‘오늘’의 힘을 믿어야 한다. 이 하루는 내일의 디딤돌이 되어 우리를 더 놓은 곳으로 올려줄 것이다. 힘든 하루였다면, 조금 흔들리는 모난 돌이었을 뿐이다. 이 돌도 딛고 올라서면 내일의 나는 더 멀리, 더 많이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전 07화 내가 변하면 변하는 것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