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년 반 동안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많이 지쳐있던 나는 한동안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방학 때마다 몇 주 후면 떠나야 되는 시한부 같은 생활 말고, 정말 같이 산다는 그 느낌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그러던 와중에 여러 가지 안 좋은 일이 겹쳤고, 그 중 하나로 함께 살던 호스트가 이사를 가게 되었다. 이제 나는 누구랑 살아야 하나 걱정을 하는데, 학교 교장선생님 부부가 같이 살 사람이 없으면 자신들과 살면 된다고 하셨다. 제의는 감사했지만, 솔직히 우리 유학생들에게 그다지 살갑지 않았던, 오히려 서운할 정도로 빡빡하게 대했던 그 분들과는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 제안이 집을 못 구해도 갈 곳이 있다는 안도감 보다는, 갈 곳이 없으면 그 곳으로 가야한다는 불안함과 걱정을 더 많이 안겨 주었다.
결국엔 새로운 집을 구하는 대신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처음 유학을 갔을 때 내가 계획했던 대로 일이 흘러가진 않았다. 오히려 내가 계획한 길이 막혀버렸지만 또 다른 길이 나에게 열렸다. 한국으로 돌아와 내 가족과 우리 집에서 행복한 대학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지나고 나니 내가 갈 곳 없게 만들어준 그 호스트에게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다.
처음 학교를 바꿀 때도 방학 중에 내가 요구했던 전학처리가 잘 되지 않아 나는 소속된 곳 없이 공중에 떠버렸다. 방학의 마지막 3주를 마음 편히 즐기지 못하고 학교를 못 구하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며 지냈다. 그 지역 학교들은 이미 개학을 해서 등록이 되지 않았고, 다니고 있던 공립학교는 등록을 취소했던 상태라 다시 등록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근처에 내가 갈 수 있는 학교는 없었다. 매일 매일 내일은 어딘가에서 연락이 오길 간절히 바라며 기도를 했다.
신기하게도 예상치 못한 다른 지역에서 입학 허가를 받았고, 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물론 그 곳에서의 생활도 순탄하게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다른 주에서도 살아볼 기회가 생겼던 것이다. 나는 꼭 이 도시에서만 해결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보지 못했던 곳에서 또 다른 길이 열린 것이다.
겨우겨우 관계를 다져놓은 호스트와 헤어져야 해서 아쉬웠고, 새로운 가족을 만나는 과정에서도 힘든 일이 많았지만, 새 학교에서의 생활은 나에게 많은걸 남겨주었다. 진심으로 서로를 생각해주는 친구들, 그리고 그 친구들과 나눌 수 있었던 행복한 시간들과 내가 진짜로 즐길 수 있었던 학교생활과 추억까지 얻을 수 있었다.
언젠가부터 날 힘들게 하는 일이 있으면 오히려 앞을 기대하게 되었다. 아직 모든 일을 아무 걱정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련이라면 시련인 여러 사건들을 혼자서 해쳐가면서 느낀 것은, 잘 안 되는 일이 있으면 그 다음엔 그보다 더 좋은 일이 뒤따라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앞서 일어난 일을 잊게 해 줄 정도의 훨씬 좋은 일들이 생긴다.
내 앞의 문이 갑자기 닫혀 계획했던 길로 가지 못하더라도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문이 열리고 나를 예상치 못한 길로 인도해줄 것이다. 그 곳에서 만나는 일들은 내 계획엔 없던 일일지 몰라도, 오히려 색다른 경험과 기회를 줄 수도 있다. 그러니 닫힌 문을 바라만 보며 고민하는 대신에 어디서 어떤 문이 열리나 설레는 마음으로 둘러보고 새로운 길로 들어설 준비를 해야 한다. 분명 더 좋은 문이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