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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아 Sep 29. 2016

내가 변하면 변하는 것들

변화를 바라면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

                                                                                               

  미국에서 지낸 첫 집 아저씨는 오토바이 마니아였는데, 그 중 특히 할리데이비슨을 좋아하셨다. 그렇게 큰 오토바이는 처음 봤다. 오토바이에 시동만 걸었을 뿐인데 차고 위에 위치한 내 방이 덜덜덜 흔들렸다. 한국에선 위험하다고 기피하는 오토바이지만 이건 오토바이 그 이상이었다. 내가 처음 왔을 때 아저씨가 날 태우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았는데, 흔히 타는 오토바이와는 다르게 굉장히 안정적이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동네를 한 바퀴 도니, ‘내가 미국에 있긴 하구나!’ 실감이 났다. 
  학교에서 놀림을 받고 눈물이 터진 그 날, 내일이 오는 게 너무 싫었다. 밤새도록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지 다음 날 아침에 배가 아팠다. 나는 위장이 약해서 지금도 신경을 많이 쓰면 위가 아프다. 이 땐 아프고 싶기도 했던 것 같다. 아프다고 생각하니 정말 아팠다. 
   
한나일어나야지학교 갈 시간이야.” 
   
  분명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깼는데, 호스트 아줌마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이 날도 ‘내일은 집에서 깨게 해주세요.’ 기도하며 잠들어서 그랬나보다. 나는 배가 아파 오늘은 집에 있고 싶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아팠다는 보호자의 쪽지만 있으면 출석이 인정된다. 아줌마는 내가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아 한다는 걸 눈치 챈 듯 했지만 그렇게 하라고 했다.

오늘은 해방이다.’
   
  오늘만큼은 학교에서 느끼는 압박과 긴장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온 몸에 힘이 풀렸고 그대로 다시 잠이 들었다. 조금 자다가 일어나 일층으로 내려왔다. 파일럿이었던 호스트 아저씨가 그 날은 마침 근무가 없는 날이라 집에 계셨다. 날 보더니 점심 먹어야 하지 않겠냐며 샌드위치를 만들자고 하셨다.
  점심을 먹은 후, 아저씨가 볼일이 있어 오토바이를 타고 나가는데 같이 가자고 제안하셨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내 기분전환을 시켜주겠다며 동네 한 바퀴 도는 게 어떠냐고 재차 물었고 나는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니 좋다고 했다. 아저씨 뒤에 타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달리니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오토바이를 이런 맛에 타나보다. 
  학교 끝날 시간이 되어 아줌마와 앤지가 같이 돌아왔다. 아저씨는 인사를 하고 오늘 한나랑 오토바이를 타고 왔다고 신이 나서 자랑을 하셨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앤지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아저씨랑 오토바이 타는 것이 자기에겐 주말행사 같은 특별한 일인데 내가 오늘 평일에, 그것도 아파서 학교를 안간 사람이 했다니 단단히 질투가 났나보다. 
   
아프다는 사람이!”
   
  짜증을 확 내더니 서재로 들어가 우는 것이다. 당황한 나는 따라 들어가서 상황을 설명했고 아저씨 볼일 보는 김에 같이 갔던 거라고 말했다. 앤지를 진정시키고 내 방으로 들어간 나는 혼자 침대에 앉아 또 다시 무거운 마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하는 여기가 집이야!? 대체 어디까지 눈치를 봐야 돼.’
   
  잠시 후 아줌마가 시켰는지 앤지가 들어와 “나 괜찮아! 신경 쓰지 마. 그냥 나도 오토바이 타고 싶어서 그랬어.” 라고 말하고 갔다. 그날 앤지는 아줌마에게 불평불만을 엄청나게 했던 것 같다. 아줌마도 나에 대해 오해를 하기 시작한 것이 그 때부터였다. 우리 사이에 뭔가 미묘한 감정이 생겼고, 나를 진심으로 대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이젠 학교에서 집에 오는 시간이 학교로 가는 시간보다 싫어졌다. 괴로운 곳에서 더 괴로운 곳으로 이동하는 시간이었다. 집에선 숨이 턱턱 막혔고 내 방에서 뭐를 해도 그 시간이 온전히 내 시간이 아닌 듯 했다. 
  이 집은 거실의 천장이 2층 높이였고, 2층에 있는 내 방의 거실과 연결되는 부분이 창문처럼 뚫려있었다. 높이가 있어 보이진 않았지만 내가 내려다 볼 수도 있고 소리도 다 들리는 구조였다. 왜 그렇게 지었을까 이해가 안 되었다. 닫을 수 있는 창문도 없어 서로의 숨소리까지 다 들렸다. 뚫려있는 곳으로 나 또한 부엌과 거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다 들을 수 있었다. 
 하루는 잠에서 깨는 순간 아줌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교회 가는 날 아침에 일찍 일어난 아줌마 아저씨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줌마가 소리를 낮춰 말하긴 했지만 나에 대한 이야기라는 게 들렸다. 청년부 목사님의 한국 학생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주 내용이었다. 우리가 한국말로 떠들며 분위기를 흐린다는 이야기를 했다. 단 한 번도 우리에게 직접 주의를 주지 않아서 몰랐는데, 이렇게 뒤에서 들으니 당황스러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어울리지 못한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못했기 때문이다.
  아줌마의 목소리에 힘이 잔뜩 실려 있었고, 나에 대한 이미지도 좋지 않다는 걸 그 때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나는 잘 지내고 싶어서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모르는 부분과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에서 오해가 계속 생기는 게 너무 속상했다. 
  내가 둘의 대화를 다 듣고 1층으로 내려갔지만 그들은 나를 평소처럼 대했다. 그걸 보며 이제까지 내 뒤에서 얼마나 흉을 봤을까 하는 생각에 많이 속상해했던 기억이 난다. 교회에서 하루 종일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에 대한 생각밖에 없었다. 한 집에서 같이 사는 사람들이고, 무엇보다 나는 이 사람들이 좋았다. 나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을 뿐,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날 대하는 것을 보는 게 정말 불편했다. 그들의 진짜 속마음을 아는 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렇게 몇 주를 흘려보냈다. 

 결국 내 진심을 다 이야기 하겠다는 생각으로 하고 싶은 말을 써내려갔다. 종이에 쓰며 내 생각을 정리하고, 정말 중요한 말들은 영어표현을 정확히 익혔다. 또 다른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신경 썼다. 학교가 끝나고 한두 시간 정도 혼자 연습하고 연습했다. 아직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인사 한 번 제대로 건네지 못하는 나였지만 지금만큼은 내 모든 용기를 끌어냈다. 마지막으로 심호흡을 크게 하고 1층으로 내려갔다.
  마침 아저씨는 서재에, 아줌마는 거실에서 책을 읽고 계셨다. 내가 다가가자 아줌마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표정이 너무 차가워, 순간 용기를 잃을 뻔 했지만 다시 마음을 잡고 옆에 앉아 꾹꾹 눌러 담았던 말을 하나씩 해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느낀 것들, 생각한 것들, 내 행동에 대한 이유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우리사이의 오해들까지 다 이야기 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사과하고 싶다는 말과 함께 오해 없이 잘 지내고 싶다고, 나는 당신들이 너무 좋다는 이야기 까지 덧붙였다. 
  그 시간이 정말 길게 느껴졌다. 내 속마음을 입 밖으로 내는 것도 힘들었지만 그걸 영어로 한다는 것이 나에겐 큰일이었다. 결국 난 마지막에 또 눈물을 보였다. 이제까지 참아왔던 내 답답한 마음이 묻어난 눈물이었다. 하지만 후련했다. 다 털어놓고 나니 이젠 미움을 받아도 억울하지 않을 것 같았다. 
다  듣고 난 아줌마는 굉장히 놀란 표정으로 고맙다고 했다.
   
이렇게 말해주는 게 정말 쉽지 않은데먼저 다가와서 말해줘서 고맙구나그 것도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이렇게 마음을 털어놓는 것이 네겐 더 어려웠을 텐데 어린나이에 이런 용기를 갖고 말해주어 정말 고맙구나우리도 너를 많이 좋아한단다그리고 앞으로도 잘 지냈으면 좋겠구나고맙다.”
   
  아줌마의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 누르고 있던 나머지 눈물도 터져 나왔다. 내 진심이 전달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했고, 내가 해냈다는 사실에 스스로가 기특하기도 했다. 말을 꺼내기 까지도 어려웠지만, 이렇게 말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난 이것이 꼭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 관계는 내가 변하지 않는 이상 발전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후로 우리 사이는 더욱 돈독해졌고 아줌마 아저씨는 나를 친 딸처럼 아껴주셨다. 앤지도 점점 마음을 열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미국을 떠난 후로도 계속해서 연락을 했고 해마다 내가 그 집을 처음 갔던 날이 되면 SNS에 ‘10년 전 네가 우리 집에 처음 온 날이야’ 라는 메시지를 보내 나에게 감동을 주신다. 이 분들은 미국에 다시 가면 꼭 뵙고 싶은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을 보기 위해 꼭 그 동네에 다시 가고 싶게 하는 이들이다. 
  처음에 용기를 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한순간의 용기 덕분에 그 후엔 내 집 같이 편한 곳이 되었고 가족 같은 사람들이 되었다. 나는 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 풀어나갈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 하나의 작은 사건이었지만 이후 내 생활을 통째로 바꿔 놓은 일이었다. 결국 모든 것은 내가 변해야 시작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무언가 바뀌길 바라면 내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내가 변하면 생각보다 정말 많은 것들이 변한다. 그 것들은 내가 변하지 않고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먼저 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억울함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 나 자신에게도, 그리고 내 인생에도 발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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