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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아 Sep 28. 2016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기

관계의 시작은 '나'였다

                                                                                                      

 한국의 겸손 문화에 익숙한 나는 어떤 일에 임하든 겸손하려고 했다. 더욱이 새로운 친구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나의 말과 행동을 조심하려고 하다 보니 지나친 겸손이 습관이 되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겸손함 보다는 자신감 없는 사람으로 이미지가 굳어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잘 하는 것도 못한다고 말했고, 각자를 자랑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나는 항상 조용히 있었다. 
  겸손이 미덕인 한국이 아닌,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이런 내 행동은 아주 큰 실수였다. 점점 사람들은 내가 '잘 할 수 있는 게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기 시작했고, 나와 어울리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나는 아무 것도 잘하는 게 없는 사람으로 인식이 되면서 알게 모르게 무시당하는 일도 종종 생겼다.
  이방인이고 영어도 잘 못하는 새로운 멤버인 나에게 그들이 먼저 관심을 가져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내가 다가가지 않으면 그들은 굳이 나에게 먼저 관심을 보일 이유가 없었다. 어쩌다 얻은 관심마저도 내가 필사적으로 대화를 이어가지 않는 이상 거기서 끝나버리곤 했다. 

  한동안 새로운 무리에 잘 끼어들지 못했다. 하루는 그들과 나의 관계를 한 발 뒤에서 바라봤다. 나랑 안 놀아준다고 불안해하고 슬퍼하는 걸 멈추었다. 대신 나의 상황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일단 가장 큰 문제는 나 자신을 알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매력 없는 사람일 수밖에 없었고, 나에게 다가오려던 사람들조차도 내가 스스로 돌려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누가 묻기 전에 내가 먼저 ‘나 이거 할 줄 알아!’, ‘나는 이걸 잘 하는데!’ 하고 스스로 존재의 가치를 알려야 했었다. 누군가 친절하게 물어보는 그 순간에도 나는 ‘잘 못해요’, ‘할 줄 몰라요’를 습관적으로 내뱉고 있었다. 그것은 겸손이 아니었다. 나 자신을 ‘무능한 동양인’의 이미지로 만드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할 줄 아는 것인데도 나를 피해가고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처음엔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당연한 것이었다. 그들 눈에 나는 ‘할 줄 모르는 사람’이기에 굳이 시간낭비하며 물어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나에 대한 인식을 바꿔보려고 했다.   그러던 찰나에 인종차별이라는 걸 겪게 되었다. 주변 몇몇 학생들의 눈빛과 행동, 장난치는 듯 무시하는 말투에서 참을 수 없는 모멸감을 느꼈다. 처음엔 어떤 사람인가 살피다가 그들이 파악한 ‘별 볼일 없는 아시아인’이라는 내 이미지는 그들이 무시하기에 충분 했던 것이다. 
     
  나는 인종에 대한 편견이 없다. 모든 사람은 인종, 국적, 성별에 관계없이 그 존재만으로도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나 스스로도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에 감사하며 다른 인종도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한다. 흑인에 대한 편견을 많이 들었지만 내가 사귄 대부분의 친구들이 흑인이었기에, 그들의 진정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백인에게 무시를 당해 상처 받긴 했지만, 내 미국생활 초반에 많은 도움을 주고 날 챙겨주었던 친절한 친구들도 백인들이었다. 나는 그 어떤 경우에도 절대 어떤 인종을 묶어서 비난하거나 일반화하여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려고 하지 않았다. 
  나를 무시했던 사람들 앞에서 내가 더 당당해질 수 있는 방법은 나 스스로를 먼저 인정하는 것이었다. 당시의 나는 자존감이 낮았다.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했고 나를 작게만 바라보았다. 가진 것에 대한 자부심이 없었고, 갖지 못한 것과 부족한 점만 계속해서 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동양인이고, 체구가 작고, 영어도 그들만큼 못하고, 조용하며, 자신감도 부족했다. 미국인들 속의 나는 겨우 그 정도였던 것이다. 내가 새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알리지도, ‘나는 충분히 너희들 그룹에 낄 매력이 있다’고 알리지도 못했기에 더욱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 당시 나는 동양인이라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위축이 되어 있었다. 
  그 와중에 알게 된 베트남 친구 '마이(Mai)'가 있다. 마이는 부모님이 미국으로 이민을 오신 후에 태어나서 미국 국적을 가진 친구다. 마이는 체구도 작고, 뛰어난 외모를 갖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왠지 모르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 친구였다. 그녀의 주변엔 항상 사람이 넘쳤고 모든 사람들은 마이와 함께하는 걸 좋아했다. 그녀의 매력은 자신감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자신 없어 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동양인이어서? 체구가 작아서? 영어를 못해서? 오히려 나는 그들보다 언어를 한 개 더 할 줄 알고, 수학과 컴퓨터를 훨씬 잘하고 (그 당시에 수학과 컴퓨터 수업을 듣고 있었다), 그들이 모르는 동양세계에 대해서 더 잘 아는 사람이다. 그렇게 보니 나는 그들 앞에서 기죽을 필요가 없던 것이다.
  그 날 부터 나는 태도를 바꿨다. 내가 잘 하는 건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그 점들에 더욱 자신감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누가 뭐라고 하든지 신경 쓰지 않고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려고 했다. 신기하게도 마음가짐을 바꾼 이후로는 놀림을 받아도 창피하지도, 부끄럽지도 않았다.
     
  모든 자신감의 나에게로부터 나온다. 내가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지기도 하고 그 것이 대수롭지 않아지기도 한다. 자신감이란 높은 자존감에서 나오는 것이다. 스스로가 마인드트레이닝을 하지 않으면 자존감이 떨어지는 건 한 순간이다. 특히나 내가 타고난 요소, 그러니까 내 의지로 바꿀 수 없는 조건들에 대해 자격지심을 느끼기 시작하면 용기를 내는 게 더욱 어려워진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의식하지 않는 것, 그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결국 나를 사랑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었다. 이것이 어려운 이유는 다른 사람들에게 존중을 받아야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도 쉽게 생기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무가치한 존재라고 여기며 수많은 행복의 기회를 흘려보내는 게 너무나도 아쉬웠다. 모든 사람은 가치 있고 훌륭한 존재이다. 나라는 사람은 똑같은 사람이지만 스스로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고, 이룰 수 있는 것도 달라진다. 그에 따라 남들의 시선도 달라지며, 대우가 달라진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사랑해줄 것이며, 내가 스스로의 능력을 믿지 않는데 누가 나를 믿어줄 것인가. 
  나 자신을 계속해서 칭찬하고 존중하다보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러면 자신감이 생기고 내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알게 된다. 결국 나는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자신감 넘치는 멋진 삶을 살 수 있다는 것과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깨닫게 되었다. 내 장점을 인정하기 전까지 나는 수많은 기회를 놓치고 있었다. 내 자신을 사랑하고 인정하니, 더 많은 기회와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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