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두려움을 뒤집는 용기
두려움은 모든 사람의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그 두려움은 평소엔 모르다가도, 어떤 일을 할 때 종종 튀어나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뺏어간다.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이 두려움이 날 방해하곤 했다. 먼저 반갑게 말을 걸어 대화를 시작해보고 싶은 생각이 천 번, 만 번도 더 들었지만 그 때마다 나의 발목을 잡은 건 '두려움'이었다. '내 말이 자연스럽지 않으면 어쩌지?', '이렇게 말하면 틀리려나?', '내가 말 거는 걸 별로 안 반가워하면 어떻게 반응해야하지?' 말도 걸지 않고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만 하다가 좋은 기회를 날려버리곤 했었다. 그 순간엔 내 두려움이 자신감보다 더 컸기 때문이다. 두려움은 내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매번 집어삼켜버렸다.
미국에서 처음 다녔던 공립 고등학교는 전교생이 2천명이 넘는 큰 학교였다. 보통은 동네마다 공립학교가 있고 사립학교까지 많아 학교당 학생 수가 그리 많지 않다. 천 명이 넘어가면 굉장히 큰 축에 속한다. 현지 사람들도 학생이 2천 명 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큰 학교라고 놀라곤 한다. 우리 학교는 학생 수 만큼이나 인종도 다양했는데, 신기하게도 모든 인종이 비슷한 비율로 섞여 있었다. 아시아인도 예상외로 많았지만 대부분이 교포나 이민자 2세였다. 그러니까 그들은 미국인이나 다름없었다. 모두들 이미 자신만의 무리가 있었고 새로운 멤버를 받아들이는데 관심이 없었다. 인종이나 피부색 상관없이 새로운 사람이 보이면 ‘원래 있었지만 내가 모르는 학생’ 정도로만 생각했다. 학교가 규모도 크고 워낙 학생들이 많았기에 굳이 자신들의 관계를 넓히려 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말이 서툰 한국인에게 관심을 줄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교환학생을 준비하면서 먼저 간 교환학생들의 일기를 재미있게 읽으며 내 미래를 상상했고 거기에 맞춰 준비를 했었다. 그 때 읽었던 다른 사람들의 글 속에는 작은 학교에 온 한국인을 신기해하며 전교생이 관심을 가져준다는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그런 글을 많이 읽다 보니 당연히 나에게도 먼저 관심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서러울 정도의 무관심한 반응에 첫날부터 당황했다. 낯선 곳에서 사람들의 관심도 받지 못하니 모든 일에 점점 자신감이 없어졌다. 학생들에게 말을 거는 건 물론이고, 선생님께 질문을 하는 것도, 하는 일마다 두려움이 앞섰다. 나는 소심해지는 내 자신의 모습에 더욱 의기소침해졌다. 스쿨버스 창밖을 바라보며 ‘내가 여기 왜 와서 이러고 있을까, 한국으로 돌아갈까’ 라는 생각을 수 천, 수 만 번도 더했다. 남들은 작은 학교에 유일한 아시아인이라고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친구도 쉽게 사귀고 즐겁게 생활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그 사실에 속이 상했다.
그렇게 나라는 존재가 있는 듯 없는 듯 생활한지 1주일 정도가 지났다. 수업시간에는 말없이 앉아 있다 보면 어쨌든 시간은 갔다. 하지만 체육시간은 혼자 있는게 참 괴로웠다. 그 곳에도 이미 자기들끼리 형성된 무리가 있었지만, 그 중 유일하게 혼자 있는 친구가 보여 용기 내어 말을 걸었다. 이 친구는 친한 친구들과 시간표가 엇갈리는 바람에 혼자였다. 말을 어렵게 걸어 친구가 되었고, 한 학기 동안 나를 잘 챙겨준 고마운 친구다. 나중에 그 친구의 친구도 알게 되면서 나도 ‘친구’를 만들어갔다.
첫 달에 친구 만들기가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하지만 친구를 만들기만 하면 끝이 아니었다. 언어의 장벽을 넘지 못해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지 못했다. 2주 정도 지나니 귀가 뚫려 친구들의 수다를 알아듣기는 했다. 그래도 아직까진 완벽하지 못한 영어가 걱정돼,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집어 삼키기를 반복 하고 있었다. 하루는 친구가 나한테 이렇게 말했다.
“한나는 굉장히 조용한 성격인가보네."
순간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모른다. 어릴 때부터 말하는 걸 좋아해 항상 ‘말하는 역할’은 내 담당이었는데, 그런 내가 조용하다는 말을 듣다니!
“아직 영어에 적응 중이라서 그래. 조금만 기다려봐! 나 엄청 수다쟁이야. 하하하”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나는 친구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러다간 정말 내 자신을 잃어버릴 것 같았다. 그날도 여전히 스쿨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집에 오는데 친구의 말이 귓가에서 떠나질 않았다.
‘조용한 성격인가보네'
그 날 부로 나는 용기를 내기로 했다. 우선 나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바꾸기로 했다.
‘저 친구들에게 영어는 나에게 한국말이 아니던가! 게다가 이 친구들은 한국말을 하나도 할 줄 모른다. 그러니까 영어가 서툴다고 해서 내가 부족한 게 아니라, 그들의 언어를 알아듣고 말할 줄 아는 내가 훨씬 똑똑한 거네!'
이렇게 생각을 바꾸고 나니 친구들의 유창한 영어를 보고 부러워했던 내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내가 그들과 비교 하는 건 외국인이 내 한국어 실력을 자신의 실력과 비교하는 것과 다를 게 없는 것이다. 참 말도 안 되는 비교를 해서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로 조금씩 용기를 내서 수다에 끼어들기를 시도했다. 그랬더니 내가 걱정했던 것과는 반대로 친구들은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었다. 오히려 내가 말이 막혀서 민망해 할 때면, 괜찮으니 천천히 생각하라고 웃으며 기다려주었다. 나는 점점 자신감이 붙었고, 자신감이 붙으니 말도 늘게 되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기 전부터 지레 겁먹는 이유는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 것이 얼마나 만만한 일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기한건, 사람은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 그 감정을 활용하면 오히려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일 앞에서는 누구나 두렵다. 새로움에 대한 설렘이 두려움에 잠식당할 것 같을 때면 한 번 더 고개를 꼿꼿이 들고 상황을 정면으로 마주해야한다. 그러면 어느 순간 두려웠던 약한 마음은 잊혀지고, 상상도 못했던 강한 용기가 생긴다. 신기하게도 두려움을 이겨내는 가장 쉬운 방법은 두려움을 내 것으로 만드는 거라고 한다. 지금 느끼는 이 두려움이라는 강력한 감정을 내 편으로 만들면 강한 용기가 된다. 결국 나에게 필요했던 건 그 순간의 두려움을 뒤집는 용기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