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이기고 순간의 용기를 끌어내야 했다
어릴 적 나는 소심하고 겁이 많았다. 초등학생 때는 문방구 주인아저씨께 “00 어디 있어요?” 라고 묻는 것조차도 용기가 나지 않아 엄마의 팔을 잡아끌었었다. 지금 내 성격을 아는 친구들이 들으면 절대 믿지 않고 펄쩍 뛸 일이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수줍음 때문에 궁금한 것도 자주 참고 넘어갔었다.
미국에서 수업을 들을 때,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 중 하나가 '질문하는 문화'이다. 수업 중에 선생님의 설명이 이해가 안 되거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누구든 망설임 없이 손을 번적 든다. '화장실 다녀와도 되요?'와 같은 질문도 서슴지 않는다. 더욱 놀라운 것은 모든 질문에 성심껏 대답하는 선생님의 태도였다. 그래서인지 질문하는 것이 너무 쉬워 보였다. 나에게 이건 엄청난 문화충격이었다. 질문은커녕 “발표해볼 사람 손들어보라”는 말에도 눈치를 보는 우리나라의 수업시간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질문하는 것에 놀랐던 진짜 이유는 질문의 대부분이 너무나도 당연하거나 쉬운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단순하고 기본적인 질문을 함에도 한 치의 망설임이 없었다. 만약 나라면 ‘그것도 모르냐’고 혼날까봐 물을 엄두도 못 냈을 건데 말이다. '저런 질문을 하면 수업에 방해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한두 번 든 게 아닐 정도로 어떤 질문이든 자유로웠다.
우리나라 교육 제도 안에서는 수업 중 선생님의 이야기를 끊고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무례한 행동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이미 설명한 내용' 이거나 '이전에 배워서 알고 있어야 하는 내용'을 물어볼 때는 집중을 안했다는 이유로 죄인 취급을 당한다. 그런 탓에 안 그래도 소심한 나는 질문을 하는 것 자체에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미국이라는 낯선 곳에 처음 갔으니 궁금한 것이 너무나도 많았지만 하나하나 물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나를 움츠러들게 한 더 큰 이유는 스스로가 당당하지 못했던 나의 영어실력이었다. 외국인이라 못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말을 틀리게 하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을까 겁을 냈다. 빠르게 말하지 못해 더듬거리며 질문을 하면 듣는 이들이 답답해하지 않을까 미리 걱정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은 나만의 걱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영어가 서툰 교환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선생님들은 나에게 모든 것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다. 그러곤 항상 설명 끝에 “모르겠으면 언제든지 물어봐” 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그 것이 절대 빈말이 아니라는 걸 수업 분위기에서 느꼈다. 정말로 누구든지 모르는 건 바로바로 질문을 했다. 궁금하면 적어두었다가 집에 가서 혼자 고민하여 해결하려는 나와는 다르게 모두들 문제가 생기는 즉시 해결을 했다.
수업내용 뿐만 아니라 나에게는 생활이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문화도 낯설고 학교생활도 낯설었다. 하지만 나는 '질문하는 두려움'을 깨지 못해 한동안 '이미 아는 척'을 하면서 살아야 했다. 속으론 항상 긴장하면서도 겉으로는 여유로운 척 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학교에 있는 내내 긴장을 하고 있었는지라, 집에 오는 스쿨버스 안에서는 다리에 힘이 풀려 멍하게 창밖만 보곤 했다.
시간이 가면서 모든 게 적응되고 자연스러워질 거라고 믿었다. 하루하루 ‘지금 이 순간도 곧 지나갈 거야’라는 말을 되뇌었다. 이 순간이 지나가기 위해선 나 스스로 변화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했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두려움을 깨고 관심을 갖고 계속해서 질문을 하며 사람들과 어울리려는 노력을 해야만 했다. 문화가 다르니 당연히 생활방식, 교육, 음식 등 모든 면에서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미국에서 사는 것이 처음이니 모르는 게 당연하고 모르면 물어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건데 나는 수줍음에 그 당연한 과정을 건너뛰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루는 친구들과 하키경기를 보고난 후 저녁을 먹기 위해 직접 음식을 주문하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서브웨이’라는 샌드위치 집을 처음 방문한 나는 처음 보는 주문 시스템에 어리둥절했다. ‘우와, 이건 어떻게 하는 거야? 이거랑 저거의 차이는 뭐야? 어떤 메뉴가 맛있어?’ 라고 묻고 싶었지만 나는 또 꾹 다문 입을 떼지 못하고 서있었다.
점원은 계속해서 ‘이거는 어떻게 할까? 저거는 어떻게 해줄까?’하며 질문세례를 퍼부었다. 샌드위치가 완성될 때까지 하나하나 질문해 맞춤으로 만들어 주는 게 결코 반갑지는 않았다. 말도 너무 빠르고 못 알아듣는 용어도 많아 나는 멍하니 서있었다. 지금 같으면 말이 서툴러도 점원에게 바로 되물었겠지만 그때는 또 ‘이 사람이 나 이상하게 보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처음이라 내가 헷갈려 할 거라 생각한 친구는 한 마디 한 마디를 천천히 반복해서 나에게 이야기 해줬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나중에는 나에게 한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 자꾸 되묻는 게 미안해서 “그냥 너랑 똑같은 걸로 해줘”라고 했다. 그날 나는 또 한 번 먼저 묻지 못한 스스로에게 실망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질문하는 것 자체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내가 ‘몰라서’ 물어본다는 사실에 아직까지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어릴 때부터 승부욕이 강했다. 어디서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제일 잘 해보이고 싶었고, 서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처음인데 실수라도 하면 그 모습이 나의 이미지로 굳혀질까봐 매순간 조심스러웠다. 좋은 모습만 보는 사람들은 잘한다고 칭찬을 했고, 나는 그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서툰 내 모습을 숨기려고 하다 보니 당연히 나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순간도 있었고, 실수로 인해 배울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잃었다. 실수가 배움의 기회이자 상대에게 내가 모른다는 걸 알리는 것이라는 걸 모른 채, 단지 그 순간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만 애를 썼다. 누군가에게서 얻을 수 있는 배움의 기회를 내가 스스로 날려버리고 있었다는 걸 몰랐던 것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걸 알고 태어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내 직업이나 관심사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고 시작하지 않는다. 누구든 무엇이든 시작할 땐 다 배워야 한다. 처음 시작하면 당연히 서툴다. 우리가 걷고 뛰기 전에 기는 방법부터 익혔듯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고 시작이 있다. 모든 일을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고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배우지 않은 일을 시작하면 서툰 것이 당연하고 정상적인 사실이라는 걸 인정하는 순간 스스로에게 관대할 수 있고 더 많은 배움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부족한 내 자신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기 시작한 이후로 더 많은 도움의 손길을 받았다. 모르면 물어보았고 아무도 질문을 귀찮아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내가 뭔가를 모른다는 사실로 날 평가하지 않았다. 바로바로 물어보고 답을 찾아가니 오히려 혼자 고민하고 헤매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고 시행착오를 덜 겪을 수 있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열심히 했다는 과정적 사실보다는 결과에 기반을 둔 평가를 받고 완벽함을 요구받아 왔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실패하고 부딪히며 불완전한 모습으로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결과가 말해준다'라는 문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사회는 결과를 중요시한다. 사회는 냉정하다. 그래도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한 뼘의 여유정돈 남겨두어도 괜찮지 않을까.
실수와 시행착오가 허용되는 것은 초보의 특권이다. 더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사람일수록 더 크게 발전할 수 있다. 내가 초보이면 모르고 실수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그렇기에 실수를 해도 당황하지 않고 당당하게 ‘모르겠으니 가르쳐달라’고 하면 된다. 모든 일에 완벽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내가 미완의 존재로 발버둥 치며 배운 것은, ‘완벽하기를 포기한다고 해서 실패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더 많은 배움의 기회를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혼자 해결해 보겠다고 끙끙대며 찾은 답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가장 빠르고 확실한 ‘질문’이라는 방법이 있는데 왜 멀리 돌아갔을까.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워가는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질문이다. 잘못 배운 것은 나중에 고치기만 힘들다.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상태에서 제대로 된 밑그림을 그려 넣어야 한다. ‘~ 것이야’라는 나의 추측으로 일을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두려움을 이기고 순간의 용기를 끌어내 반드시 전문가, 혹은 경험자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그래야 모르는 부분을 처음부터 정확하게 배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