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텨낸 만큼 반짝이는 인생
어릴 적 내가 가장 좋아한 과목은 영어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영어학원을 다니며 가장 높은 반에서 공부를 했고, 수업 중에서도 원어민과의 회화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영어 교사였던 엄마의 수업자료를 풀면서 팝송을 익혔고 방학 때면 엄마와 영어 소설을 읽으며 공부를 했다. 학교에서 시험을 보면 영어는 대부분 100점을 받았다. 그러니 영어 하나만큼은 자신감이 넘쳤다.
미국 생활이 시작된 첫 집에 도착해서 새로운 식구와 함께 식사를 할 때였다. 그런데 사람들의 말이 너무 빨랐다. 빠른 것 같지 않은데도 순식간에 지나가버려 아무 것도 들을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 내가 봐온 원어민들의 속도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건데 그 땐 그게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말하기’였다. 내가 입을 떼지를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이 머리에서 계속 나오고 있는데 그걸 영어로 바꿔 입 밖으로 꺼내지를 못했다. 정말 답답했다. 분명 수업시간엔 이렇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설명하기가 어려운건지…. 이 것이 바로 ‘언어의 장벽’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속 안에 쌓였음에도 그 장벽에 부딪혀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다.
정말 크게 절망했던 날은 내가 ‘yes'와 ’no'도 바로바로 말하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였다. 질문을 듣고 이해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인지, 한국말에서 영어로 뇌의 스위치를 바꾸는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인지, 간단한 대답조차도 시간이 필요했다.
첫 주엔 매일이 좌절의 연속이었다. 나 스스로가 답답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머릿속 생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고 대화가 끝나도 내가 하고자 했던 말을 반도 못 해냈다는 사실이 나를 굉장히 의기소침해지게 만들었다.
호스트 맘은 우리나라 문화에 대해 알고 싶어 했다. 그래서 매일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탁에 앉아 한 가지의 주제를 잡고 이야기를 나눴다. 물론 내 영어를 연습시켜주기 위한 이유도 있었다. 그 때마다 나는 전자사전을 준비해 필요한 단어를 바로바로 찾았다.
열심히 이야기를 하고 방으로 들어오면 내 자신감은 바닥을 쳤다. 영어 하나만큼은 정말 자신이 있었고 잘한다고 믿었었다. 하지만 미국생활에 가장 기본인 영어가 가장 어렵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어눌한 내 영어실력이 부끄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근처에 사는 친구네 집에 놀러 가게 되었다. 그 친구는 나와 같은 교환학생인데 호스트가족이 아줌마 아저씨뿐 이어서 친딸처럼 잘해주셨다. 그 모습이 많이 부럽기도 했다. 친구도 아줌마 아저씨를 ‘엄마’, ‘아빠’라고 부르며 잘 따랐다. 부족한 영어실력이었지만 먼저 다가가 대화를 시도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그 친구보다 영어를 잘했다. 더 잘 알아들었고 말도 더 잘했다. 하지만 부족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자존심과 체면을 버리지 않고 늘 말을 아꼈다. 반면에 친구는 자신의 실력을 인정하듯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배우려는 자세로 먼저 이야기를 이끌어갔다.
그렇게 밝게 웃으며 이야기 하던 친구가 방에 들어오더니 표정이 굳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영어가 늘지 않는 것 같다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 친구도 속으론 많이 힘들었던 것이다. 자신의 실력이 부족한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하루하루 버텨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내심 걱정이 되었다. ‘Yes' ’no'도 제대로 못하는 내 코가 석자였지만, 나보다 더 힘들 것 같은 이 친구가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많이 되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같이 갔던 학생들 중 가장 성공적인 유학생활을 한 사람으로 이 친구를 꼽는다. 몇 개월이 지나도 영어가 늘지 않는 듯해 포기하게 되진 않을까 걱정했었다. 그러나 걱정과는 다르게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교를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병행했고, 지금은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교내 연구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장학금도 받고 있다.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얼마나 기특한지 모르겠다. 그 때 힘들어하던 친구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까지 오는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짐작이 된다. 얼마나 많은 날들을 눈물로 버텨냈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실패와 좌절을 맛보았어야 했을지 알 것 같아 지금 이뤄낸 것들이 더 대단해 보인다.
친구는 남들이 힘들어 도망치는 곳에서 혼자 버텼다.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하고 어린 소녀 같아 보였지만 사실은 가장 깡이 세고 쉽게 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성장해가는 친구의 모습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스스로 하나하나 이뤄가는 것이 그렇게 멋질 수가 없다.
친구를 보면서 버텨내는 사람은 결국 승리할 수밖에 없다는 걸 느꼈다. 아무리 힘든 순간도 깡으로, 안되면 악으로라도 버티면 무엇이든 다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버팀 끝에는 감격에 벅차 눈물이 흐를 만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
나도 처음에는 말이 생각처럼 빨리 늘지 않아 고민도 걱정도 많았다. 그래도 자존심을 잠시 버리고 배우려고 노력하니 점점 느는 게 보였다. 어눌한 영어로라도 친구들과 어울리려고 먼저 다가갔다. 숙제를 할 땐 단어 찾는 시간이 더 걸렸지만 밤을 새서라도 해갔다. 발표가 가장 긴장되었지만 점점 영어로 발표하는 게 익숙해졌다.
1년 후, 나는 전교 임원이 되었고 학교 행사나 조회시간에 단상에서 사회를 맡았다. 수업시간에 앞에서 수학문제 하나 설명하는 게 어려워 벌벌 떨었던 내가 전교생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도 떨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그 순간을 즐겼다.
영국에서는 전공 관련 PT가 있었는데 내가 유일하게 만점을 받았다. 다른 친구들이 ‘부럽다’고 말했지만 나는 ‘yes', 'no'도 제대로 못했던 10년 전 내 모습이 생각났다. 그 당시 나는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며 버텨냈다. 그랬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걸 잘 알기 친구들의 부러움에 말없이 웃었다.
살다보면 잠시 스쳐가는 시련을 만나기도 하고, 이를 악물고 버텨야하는 정말 힘든 시기를 겪기도 한다. 시련의 크기가 어떻든 그 시간을 꾹 참고 버티면 그 끝에는 빛나는 순간이 기다리고 있기 마련이다. 친구들이 버텨냈기에 결국 원하는 바를 이뤄낼 수 있었던 것처럼 나도 힘든 순간이 오면 나에게 다가올 찬란한 그 순간을 생각한다. 더욱 반짝일 내 삶을 생각하며 힘든 그 순간을 견뎌낸다.
내가 하는 일이 잘 안 돼 우울해 할 때 아빠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더 많이 움츠려야 더 높이 뛸 수 있어.
지금 너는 더 높이 뛰어오르기 위해 움츠리고 있는 거야.”
이유 없는 시련은 없고 이겨내지 못할 어려움은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최선을 다해 버텨내길. 청춘에겐 그래야 할 의무가 있고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다. 버텨낸 만큼 인생은 더욱 반짝일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