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지고 있는 직장 내 명찰은 바코드 칩이 안에 있어서 직원들의 통로 옆에 찍으면 문이 열리고, 직원들만 사용하는 엘리베이터 옆에 찍으면 버튼의 활성화가 가능하다. 이런 부분이 참 매력적이라고 느꼈던 것은 바로 ‘직원들 외 접근 금지’와 같은 팻말이 있는 곳에서인데, 직원 외 사람들이 굳이 이용할 필요가 없거나, 아니면 안전상의 이유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부분적 폐쇄를 해놓은 곳에 명찰을 찍고 들어갈 수 있는 건 가끔 쾌감이 느껴지곤 한다.
우리가 흔히 ‘비하인드 스토리’라고 명칭이 붙는 이야기나 영상 등에 흥미를 가지게 되는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좋아하는 드라마의 비하인드 스토리라고 붙는 영상에는 이미 정갈하게 단정된 장면들 뒤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실제로 배우들이 어떻게 연기했고 그 연출을 위해 무엇이 덧대졌는지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고, 그건 말 그대로 채워지지 않는 어떤 부분이 채워지는 즐거움이 있다.
어렸을 적에는 전과가 딱 그 역할을 했던 것 같다. 교과서상에서는 밑줄, 빈칸, 괄호 등 그야말로 여백의 미가 뚝뚝 흐르는데, 분명 같은 장면을 담은 전과는 여백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글씨들로 문제의 의미, 출제자의 의도, 이 문제를 통해 꼭 알고 넘어가야 하는 개념 등, 그야말로 할 말이 너무 많아 넘쳐흐르는 느낌이었다.
요즘 내가 어쩌다가 맡게 된 직위가 있는데, 그로 인해 굳이 알지 않고 몰라도 살아갈 수 있었던 큰 환경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 중이다. 나도 이 직위가 아니었다면 수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일방적으로 묻고 답변을 기다리는 위치였을 텐데, 막상 직위를 맡아도 모르는 것 투성이인 데다가 알아도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 중간자적인 입장이 더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우리 직장엔 갑이 없어.”
라는 말을 언젠가 남편에게 한 적이 있었다. 거대한 회사의 부속품으로 지내다 보면 나의 생각이나 행동으로 회사의 사소한 그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 속에서 무력함을 느끼게 되는데, 을끼리 모여 있는 우리도 또 다른 사람에겐 갑처럼 보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그래서 역으로 하게 되는 요즘이다. 사실은 우리도 을인걸. 게다가 무언가를 더 안다고 해도 큰 흐름에서 바꿀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은, 결정권자가 아니기 때문이겠지만.
조직이 답답하지만 아직 조직을 벗어날 생각이 없는 내가 조직을 직접 꾸리게 된다면, 그건 진짜 소규모의 무언가가 아닐까라고 가끔 생각한다. 얼마 전 만난 고등학교 친구는 “현아, 언제 빵집 차릴 거야?”라고 물어봤는데, 빵집 사장이 꿈이었던 고등학교 때가 아직도 생각난다면서. 그 말에 나는 글쎄, 이제는 초기 자본금이 얼마쯤 들려나 하고 생각하며 웃고 넘겼었다. 결정권자가 되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겠지만, 조직의 구성원으로 그리고 비결정권자로 살아가는 지금의 삶에서의 깨달음들이 훗날 언젠가 결정권자가 될 때 다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때로는 나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해진다. 순간순간을 바쁘게 살면서는 제대로 만끽하며 살지 못하는 나의 삶을 뒤돌아보면, 그 장면 속에 아 맞다, 그런 것도 있었는데 할 때가 종종 있다. 살아가는 연수가 쌓여 갈수록 그런 장면들도 더 많아질 것을 생각하면 한 번씩 스스로 선물을 쌓아놓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다만 장면은 기억하되 생각은 사라질 수 있기에, 스러지는 생각을 잡기 위해서라도 이렇게 한 번씩 적어 놔야겠다, 싶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