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 하세요?”라는 질문 앞에서

by Ben Frost

“무슨 일 하세요?”라는 질문에 얼버무리게 된 건 코로나 시국이 조금 지난 후부터였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만 해도 ‘학생’이라는 직업으로 너무 오래 살아가고 있어서인지 빨리 다른 직업을 가지고 싶었고, 대학생 때는 성인이 된 이후인 데다가 전공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라 좀 더 특별한 신분으로 여겨졌던 것 같은데, 분명 사회생활 초반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던 내가 왜 그리 바뀌었을까 싶다.


결혼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일을 그만두고 미국에 건너가서 1년 정도의 시간을 살고 왔다. 그리고 그 1년여의 시간 중반부에 한국에서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되었고, 체류 기간을 고민하던 나는 시간을 더 늘리지 않고 딱 볼일이 끝난 시일 즈음해서 한국에 돌아왔다. 2주간의 자가격리를 마치고 면접을 보고 부동산을 돌아다니면서 일자리를 구하고 집을 구한 후, 나는 연고라고는 친한 동생과 친한 언니가 있을 뿐인 도시에 자리 잡았고 그곳에서 지낸 지도 햇수로 꽤 되었다.


코로나 사태가 채 진정되기 전에 아이를 갖고 낳게 되었기에 아이를 낳고 3일이 될 때까지도 신생아실에 간 아이를 볼 수 없었고, 퇴원하기 전 딱 한 번 본 아이를 데리고 갔던 조리원에서는 마스크를 쓴 채 복도를 돌아다닐 수 없었기에 흔히 말하는 조동(조리원 동기)도 없었고, 인간관계의 새로운 시작은 그보다도 더 늦어졌다. 그렇게 또 1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흐른 후 하나둘 만나게 된 새로운 인연 속에서 받는 질문에 내가 얼버무리게 된 것이다.


사실 나는 거짓말을 하는 것에 약간 결벽일 정도로 학을 뗀다. 어렸을 때는 거짓말을 너무 자주 해서 아빠에게 혼이 나다 못해 ‘다시는 거짓말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문장이 빽빽이 적힌 노트가 세 권이나 있을 정도로 많이 혼났는데, 그 시절 덕분일까 지금의 나는 거짓말을 하면 알레르기가 일어날 정도의 역함을 스스로 느끼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직업적인 측면도 있다. 근거를 제시해서 최대한 사실에 입각해 말을 해야 하는 직업을 가져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저 질문에 얼버무리며 거짓은 아니지만 사실을 다 반영하지 못한 대답으로 끝내고 나면, 상대방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매우 찝찝한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럼에도 그리 살아간 지도 벌써 3년 정도가 되었다.


지난 추석, 친정에 명절을 쇠러 갔다가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이런 나의 고민에 대해 아빠에게 털어놓았다. 생각해 보니 아빠도 언젠가부터 스스로를 소개할 때 직업을 명확히 밝히지 않고 에둘러 말씀하신다 했던 이야기가 떠올라서였다. 그래서 아빠에게 지혜를 구하면서 아빠의 ‘에둘러 표현하는 말’처럼 저의 직업을 소개한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하고 물으니, 아빠가 잠시 생각하시더니 주신 답에 나는 무릎을 탁 치며 깔깔 웃었다. 아빠가 주신 답은 “건강한 사회를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라는 대답이었다. 그리고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이렇게 대답해도 더 묻는 사람, 그리고 오래 볼 사람에게는 사실대로 얘기해 주긴 해야지라고. 하지만 이미 구축된 관계에, 이미 문답이 이뤄진 이후의 관계에서 다시 정정하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나는 여전히 아주 솔직하진 못한 채로 살아가고 있다.


분명 어느 시점까지는 내 직업이 나의 모든 것을 다 말해 주는 것 같아서 홀가분하기도, 다행이기도 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왜 이렇게 바뀐 것일까.


일을 내려놓고 미국에서 1년을 지내는 동안 초반 6개월간은 어학연수를 받았었다. 이미 서른이 넘은 나이에 유학 온 다양한 나라의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는데 그들의 나이는 아무리 많아도 스물 초반이었고, 몇 번의 발표 수업 때 내 직업에 대한 부분을 나누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머지 6개월의 시간 동안에는 별다른 일 없이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고, 그때의 나는 대학 생활을 포함해 꽤 오랜 시간을 한 곳을 향해 가다가 멈춰 선 순간을 제대로 느꼈던 것 같다. 더 이상 직업이 나를 규정해 주지 못하고, 나를 설명해 줄 수 있는 겉껍질이 없기에 진짜 나를 설명해야 하는 시간을. 그리하여 짧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 이후에 다시 돌아와 일을 이어가는 나와 이전의 나는 같을 수 없게 된 듯싶다.


직업을 밝히면 으레 뒤따르게 되는 고정관념들이 있다. 그것이 다 동일한 개념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고정관념이 ‘있다’라는 것은 동일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주저하게 된 부분은 바로 그 ‘있다’라는 부분인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은 물론 직업을 가지고 있기에 그 직업이 나를 설명해 줄 수 있지만, 사실 나는 나여서 직업과 동등한 개념이 아닌데 직업이 앞장서서 나를 규정하는 게 싫다는 생각이 강해진 것이다. 그리하여 남편은 얼마 전에 나에게 “국정원 직원은 아니지?”라고 얘기하기까지 이른 것이다.


한편으로는 직업만큼 그 사람을 빠르게 인식할 수 있는 개념이 또 있을까 싶긴 하다. 그리하여 나에게 직업을 묻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 질문 자체에 대한 옳고 그름을 따지진 않는다. 그저 내가 아직은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떠하다라고 이름 붙이는 개념에서 자유할 수 없기에 유보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사람이 사람에게 묻고 싶은 건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일 텐데, 내가 나를 아직 다 정리하지 못한 탓도 있으리라. 그리고 좀 더 쿨하게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내 직업에 대해 밝히고 가면 그뿐인데, 나는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밝히지 못했다는 찜찜함의 돌덩이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시간이 좀 더 필요하겠고, 나는 나를 위해 그 시간을 좀 더 가져보려고 한다. 한동안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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