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좀 골라봐, 내가 고른 줄은 늘 진행이 더뎌서."
남편과 함께 장을 보러 코스트코에 가면 열려있는 8-9개의 계산대의 길게 늘어선 줄 중에서 어떤 줄 뒤로 카트를 대고 설 것인지를 고르는 것을 떠넘긴다. 하지만 이틀 전인 토요일 저녁엔 나 혼자 장을 보러 간 터라 눈으로 쓰윽 훑고 한 줄을 골라 그 뒤에 섰다. 그리고 잠시 후 캐셔인 직원이 손을 높이 들어 책임자를 애타게 불렀고 잠시 뒤 온 책임자는 바쁘게 손님과 소통하고 150만 원 정도 되는 5만 원짜리 현금다발을 꺼내는 손님에게 총금액을 연신 확인하고 금고에 현금을 보관하고.. 를 하는 동안 내 앞에 섰던 어떤 모자(母子)는 다른 줄을 힐끔거리다가 빠져나갔고 나는 여전히 그 뒤에 서 있었다. 현금 계산을 마친 손님 뒤로 한 명만 더 있었을 뿐인데, 이 중년여자분은 계산을 세 번에 나눠서 하는데 카드를 달리 해서 2개월 할부요, 이건 이거로요 하면서 계산하는 품목도 많았지만 혼자서 계산대의 컨베이어 벨트를 다 쓰고 있는 참이라 그 바로 뒤에 선 나는 계산대 위에 물건을 올려놓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가까스로 그 손님이 계산을 마치고 있는 사이 다른 캐셔인 직원이 와서 교대를 했다. 교대를 하기 직전 원래 직원이 "죄송해요, 제가 지금 교대를 해야 해서.."라며 나에게 양해를 구하는 동안 다른 직원이 "얼른 하면 되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하고 둘은 서둘러 인수인계를 했다. 계산대에 남아있는 현금들의 지폐 수부터 10원짜리 동전들의 개수를 하나씩 다 세고 있는 동안 나는 그 모습을 조금은 포기한 채로 지켜보고 있었다.
장을 혼자 봐 온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반복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이런 것이다. 마트에서 내가 서는 줄은 꼭 이상한 일이 발생한다. 줄의 진행이 더딜 만한 크고 작은 에피소드가. 코스트코처럼 큰 마트에, 다음 날이 휴일이라 더 붐비는 주말 저녁에, 길게 늘어선 많은 계산대 중에서도, 늘 내가 고른 계산대에선 이런 일이 발생한다. 성격이 급하고, 진행이 더딤을 잘 지켜보지 못하는 나에게 이런 사건은 매번 겪을 때마다 고역이다.
그리고 어제는 오랜만에 올라오신 시부모님과 아이, 남편과 함께 최근 봐뒀던 브런치카페를 갔다. 팔로우하는 맛집 인플루언서가 소개한 영상에 보인 곳으로 남편의 컨펌까지 받고 괜찮다 싶어 갔는데, 낯선 동네에 차를 끌고 간 것까진 좋았는데, 주차를 하고 카페가 있는 2층에 올라가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아?" 하는 탄성이 먼저 터져 나왔다. 호수뷰가 근사하다 하여 간 곳인데 오전 11시가 좀 되기 전인 그 시간에 햇빛이 강하고 호수에서 그 빛들이 그대로 반사되어 카페에 들어오는 것처럼 눈부심이 심해 창가에 있는 손님들은 죄다 뷰를 포기하고 커튼을 치고 있었다. 거기서 돌아 나왔어야 했는데, 이미 가족들을 다 끌고 갔던 터라 그러지 못하고 결국 창가 자리에 앉았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눈부심이 심했기에 커튼을 친 상태에서도 호수를 바라보는 쪽 의자에는 못 앉겠어서 등을 질 수 있는 자리로 바꿔 안고는 시킨 메뉴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카페는 컸지만 직원 두 명이 처리하고 있는 건 딱 우리 테이블 메뉴뿐이었다. 계란 샐러드 양파수프가 들어 있는 접시 두 개가 나오기까지 10분, 나머지 두 접시와 커피를 받은 건 20분쯤후였다. 그리고 더 나올 것으로 기대했던 빵은 주문한 지 30분이 다 되도록 기약이 없었고 결국 남편이 일어나서 카운터에 가서 빵 이야기를 하니 직원 한 명이 아차 하는 표정과 함께 하겠노라 대답했다고 한다. 그 사이 시어머니와 이야기하면서도 계속 직원들을 바라보고 있던 나의 안색은 실시간으로 안 좋아지고 있었다. 마침 헐레벌떡 들어오는 남녀 한 쌍이 있었는데 그들이 카페의 주인들로 짐작이 되었고 들어오자마자 정면에 있는 나와 눈이 마주쳤었다.
결국 바게트 빵 네 조각을 받은 건 주문하고 40분이 지난 후였다. 함께 먹게끔 먼저 나왔던 양파수프는 식은 지 오래, 결국 수프를 다시 데워달라고 하고 빵과 함께 먹으면서 한 소리를 하러 가는 나를 남편이 말렸다. "먹는 동안은 맘 편히 먹고 싶어. 다른 사람한테 한 소리하고서는 불편한 마음으로 먹어야 하잖아." 그런 남편을 설득시키는 동안 남자 사장님이 오셔서 오븐이 고장 나서 메뉴가 늦게 나와서 죄송하다면서 서비스로 뭘 더 드릴까요 물어서 바게트 빵만 조금 더 달라고 말했다. 그렇게 일단락되긴 했지만, 이 사건도 뭔가 대단히 특별한 상황이 아니다, 나의 일상엔.
요행을 바라면서 살고 있는가 물으면 나는 요행을 바라지만 나에겐 요행이 통하지 않는다,라고 답할 것이다. 흔히 말하는 '운'이란 노력과 수고를 기반으로 하지 않은 행운을 이야기한다면, 나에게 그 운은 없다. 그리하여 세상을 바라볼 때 조금 더 냉정하게 바라보게 되는 것이 있는데, 그 삐딱함 때문일까 이런 컴플레인을 할 만한 상황에 자주 노출되는 것은?
민원을 자주 다루는 직업을 가진 지인이 있다. 날이 좋을 때는 잘 없는 민원이 경보/주의보 수준의 날씨의 변화가 있으면 그날은 일을 처리하지 못할 정도로 민원 전화가 계속 와서 힘들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민원을 처리하는 삶을 처음으로 가까이 봐서였을까 그때 그 이야기가 한동안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또 한 번은 배스킨라빈스에서 배달시켰던 쿼터 1통에서 맛이 하나 다르게 와서 그에 대해 물으려고 매장에 전화했다가 "지금까지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라는 사장님의 말에 대해 다른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마 처음이 아닐 텐데, 전화를 받은 게 처음이지 않았을까?"라며 자신은 그런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컴플레인을 제기하지 않았다고 하여 나의 어리둥절함을 유발했던 적이 있다.
자로 잰 듯 반듯하게, 로봇이 하는 일들이 아니다. 대부분의 세상일이란. 앞으로 최소 5년, 그리고 10년 후의 미래는 그리 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아직까진 거진 사람의 일이다. 사람이 생각하고 사람이 행동하고 사람이 처리하는. 그 속에서 실수, 오류가 있는 것은 사실 없는 것보다 더 자연스러운 일일진대, 그것들에 하나씩 발끈하며 나아가는 내가 유난스러운 것일까. 아님 나에게 유독 이런 일이 많은 것일까. 이것을 통계낼 수 있는 방법도 비교할 수 있는 잣대도 없음을 안다. 그러나 이제 나도 슬슬 나이가 들어 그런지 반복되는 이러한 일들에 대한 나의 태도를 돌아보고 앞으로를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나마 최근 내가 조금 달리 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적어도 누군가의 밥벌이를 위태하게 만들진 말자, 정도이다. 나는 공익성을 위해서라도 내가 겪은 일을 알리는 것이 맞지 싶지만, 그것이 단순히 공익성을 띠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한 사람의 사업장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은 피해야지,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도 컴플레인을 제기받는 직업을 가지고 있기에 나의 일에서의 실수를 줄이는 것도 다짐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어젯밤, 나에게 그 식당을 안내했던 인플루언서의 팔로우를 끊었다.